그들은 서직문에 위치한 서편 천주당으로 발걸음을 옮기었다. 선무문의 남당보다 볼거리가 좋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천주당은 지금의 '성당'을 뜻한다. 동양거리에 서구식으로 지어진 가톨릭성당을 본 수진은 감흥이 좀 일긴 했지만 화들짝 놀라 멈춰 선 채 멍하니 넋을 잃은 지원만큼은 아니었다. 태어나서 서구의 유럽식 건물을 처음으로 접한 그였다. 지붕 머리가 종처럼 생기어 우뚝 솟은 것이 마치 위에서 통째로 쇠를 붓거나 흙을 구워서 만든 것처럼 보였다.
북경의 동서남북에 각각 천주당이 있다는데 지금 그들은 서편 천주당 앞이었다. 흥분한 지원이 강한 호기심과 충격에 휩싸인 채 말을 내뱉었다.
“여기가 조선인들이 가장 괴이하게 여긴다는 ‘천주당’이란다. 저기 외국 사람들은 색다른 방식으로 집을 짓는다던데 과연 그렇구나. 그들은 하나님을 밝게 섬기는 걸 최고로 삼고 충효와 자애를 평소의 의무로 지킨다는구나. 허물을 고치고 선을 실천하는 걸 덕목으로 삼으며, 사람이 죽고 사는 큰일에 대비하는 걸 최종목적으로 삼는단다. 근데 잘 들어보면 왠지 그 교리가 교묘하여 하늘을 빙자해 사람을 속이는 것만 같더구나. 하지만 홍대용이 그렇게나 칭찬한 풍금소리는 정말로 궁금하긴 하단다.”
‘홍대용’이란 이름을 국사 시간에 들은 것 같긴 한데 정확히 뭘 하시던 분인지 잘 떠오르진 않는 그녀였다. 그저 자신이 진짜 과거로 넘어왔다는 사실만 점점 확실해지고 있었다.
“파이프 오르간 말씀이세요? 저는 본 적이 있어요. 소리가 빽빽거려서 별로 좋진 않던데요.”
“아니, 넌 풍금을 본 적이 있단 말이냐?”
지원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그녀는 아차 싶었지만 뭐 이미 한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그냥 대충 얼버무렸다.
“꿈에서요.”
“농담도 참 싱겁구나. 허허.”
그는 여전히 앞으로 걸음을 옮기지 못한 채 다시 감상에 빠져들었다. 조선에서 기와집과 초가집만 보셨으니 오죽 신기할까 생각은 들었지만 한편으로 그의 반응이 영 촌스럽게 느껴지는 그녀였다. 그래서 그를 남겨두고 성당으로 먼저 걸음을 옮기었다. 미리 내부 구경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성당 정면 한가운데에 아치형 장식 아래 위치한 육중한 검은 문을 힘껏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현관을 지나자 큰 예배당이 나왔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었다. 좀 전에는 느끼지 못한 어떤 신비로운 종교적 경외감에 휩싸여 그녀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우뚝 멈추고 말았다. 아까 박지원처럼 그녀의 두 눈도 점차 커지고 입이 쫙 벌어졌다.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창들이 마치 오래된 명화가 걸린 것처럼 예배당의 양쪽 벽으로 길게 펼쳐져 있었다. 여름 햇살이 그것을 통과해 알록달록 다채로운 색으로 실내벽을 비추었다. 무지개처럼 은은하면서도 부드러운 색깔들의 향연이었다. 그것으로 인해 성당의 실내는 어디를 바라봐도 매우 아름답고 우아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잠시 후 그녀 옆에서 누군가의 숨넘어갈 듯 꼴깍거리는 침소리가 유난스레 들려왔다. 박지원이었다. 그는 갓의 앞 테를 바짝 들어 올린 채 몸통과 고개를 360도 돌려가며 벽에 걸린 서양화들과 창문들을 찬찬히 감상하였다. 가끔 벼락에 감전된 사람처럼 턱과 몸을 부르르 떨기도 했다. 그녀가 잔기침을 하여 주의를 주자 그는 겨우 정신을 차리었다. 그리고 그림에 그려진 성인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벅찬 감탄과 놀라움을 내뱉었다.
“마치 저들이 내 속을 꿰뚫어 보는 것 같고 내 귀에 뭐라 속삭이는 것 같기도 하고, 곧 내게 다가와 말을 걸 것만 같구나. 그림의 음양이 잘 조화되어 꼭 살아 꿈틀거리는 것 같지 않느냐? 허허, 참으로 신기하도다. 세상에나, 저건 또 뭐지? 분명 사람인데 등에 새 날개가 돋아있지 않느냐? 허허, 참으로 해괴망측하도다.”
그녀는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다 멈추어 버린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사들’이었다. 그녀에겐 교회에서 듣고 판타지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도 보아서 아주 친숙한 존재였지만 조선에서 온 지원에겐 매우 이상하게 보였으리라. 막상 설명을 하려니 처음부터 말문이 막히는 그녀였다. 그래서 겨우 머리를 굴려가며 느릿한 어조로 설명하였다.
“아마도 하나님을 돕는 신성한 일꾼들 같은데요. 그래서 우리 인간들과 달리 날 수 있는 거고요. ‘천사’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천사라, 천사...”
그는 절대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어 그의 고개가 바짝 들어 올려지더니 천장을 향하였다. 갓이 목 뒤로 넘어가려 하자 그의 두 손이 황급히 갓머리를 붙잡았다. 그러나 두 손은 힘없이 툭 떨어지고 갓은 목 뒤로 완전히 넘어가 갓끈에 달랑달랑 매달린 채 그의 목을 죄어왔다. 그러나 전혀 불편함을 못 느끼는 건지, 아님 딴 데 정신이 팔린 건지 천장을 향해 두 팔을 쭉 펴들고선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가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아이고 이런, 구름 위에서 포동포동한 아이들이 떨어지겠구나. 수진아, 뭐 하느냐? 밑에서 어서 받을 준비 안 하고? 어서!”
그가 그녀의 어깨를 툭 치며 자신을 따라 하라고 앞으로 펼친 두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녀의 고개가 올려졌다. 천국의 오색구름 사이를 뛰놀고 있는 아이들이 그려진 천장화였다. 아님, 아이 천사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의 음성이 좀 컸는가 보다. 주변 사람들이 시선을 돌려 그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멀리서 중국인 신부가 엄지손가락을 입 앞에 갖다 대며 “쉿.” 조용히 하라고 동작까지 취했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인 지원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천장만 바라보며 손을 앞으로 쭉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어서 따라 하라고 그녀를 자꾸 보채는 것이었다.
너무 부끄러워서 얼굴이 새빨개진 그녀는 그의 곁을 떠나 회중석으로 걸어갔다. 여기서 나갈 때까지 그와 거리를 두어야지 싶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예배당을 떠나고 그들과 아까 그 중국인 신부만 남았다. 그녀는 맨 앞으로 나가 금으로 만든 조각과 대리석 제단을 구경하고 성가대석을 지나 뒤편 구석도 대충 둘러보았다. 그렇게 구경을 마치고 지원 쪽을 바라보는데 아직도 여전히 그 자세 그대로였다. 그때 신부가 그에게 다가오더니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서로 말이 통하나 싶었지만 그녀는 별로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아 다시 예배당을 이리저리 어슬렁거렸다.
회중석의 중간쯤 되는 옆벽 사이에 숨겨진 문 하나가 살짝 열려 있었다. 호기심이 든 그녀는 몰래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자그마한 골방이었다. 짙은 코발트색의 고급 비단과 촛불로 장식된 작은 제단이 있고 나무 탁자 위로 가죽 장정에 금박으로 장식된 성경책이 놓여 있었다. 벽면에는 신부가 입는 성복들이 걸려 있고 들어온 문과 대칭으로 선 벽면 앞으로 전신거울이 놓여 있었다. 거울에는 방문이 그대로 투영되었다. 그런데 그 옆에 놓인 것이, 세상에나. 그녀는 그만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후 다시 그것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도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앗, 이건 황금잎블루베리 아니야?”
그랬다. 기억력이 좋은 독자 분은 바로 무릎을 딱 쳤겠지만 혹 작가처럼 그렇지 않은 분을 위해 살짝 언급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우리 수진이 일 년 반쯤 전 겨울에 롤리숲에서 발견했었던 그 황금잎블루베리 말이다. ‘하하호호히히’로 통하는 게이트를 표시해 주는 나무 말이다.
그것이 지금 정조 9년인 1780년 8월 3일 연경(지금의 북경)의 서편 천주당 안에, 그것도 수진의 바로 눈앞에, 거울 옆 바닥에 놓인 화분에 한가득 심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촛불로 어둠이 가실랑 마실랑 한 방 안에서 금빛 자태를 뽐내며 노랗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빛나는 황금잎 사이로 검은 블루베리열매들이 탐스럽게 매달려 있었다. 하나를 따 먹어보았다. 맛있었다. 진짜 씹히는 열매였다.
“게이트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어. 사실 게이트키퍼인 나조차 총 몇 개의 게이트가 있는지,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단다. 대부분 인적이 드문 곳에 있을 거라 예상은 하지만, 보통 자신이 이용했던 게이트를 다시 이용하니까 다른 곳은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들의 위치 또한 극비로 붙어져 알기가 쉽지 않고.
수진아, 넌 매우 특별한 아이야.
왜냐하면 황금잎블루베리를 알아봤으니까.
어디를 가든 이 사실은 꼭 기억해 두렴.
만약 그 나무를 다시 본다면 근처에 빅락 같은 게이트가 있다는 점을 말이야.”
예전에 초록갓아이스크림 가게의 지원아저씨가 해 준 말이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였다. 예전에 브라잇 동맹에서 롤리마을로 돌아온 이후 몇 번이나 롤리숲의 게이트를 찾아가 보았었다. 이 나무는 사시사철 빛나고 있어 찾기가 그리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매번 동굴 입구는 닫혀 있었다. 마치 자신을 거부한다는 듯이. 그런 일이 거듭되자 어느 순간 아예 그곳을 잊고 지내왔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우연히 또 다른 게이트를 만나다니. 정말 기절할 정도로 신기하고 한편으로 소름이 끼쳐오기까지 했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자신이 과거로 온 것은 우연이 아니라 뭔가 얽히고설킨 운명 같은 것이 불러들인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