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이도 많았던 설거지가 드디어 끝이 났다. 이것으로 수진이 오늘 할 일은 다 마친 셈이었다. 그새 밤이 깊어졌는지 집과 마당으로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돌아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담 너머 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적이 내려앉아 무척이나 고요하였다. 어느 집에선가 물웅덩이로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 소리까지 간간이 들려올 정도였다.
수진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과 별들이 구름 사이로 간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숨었다가 하는데 오늘따라 왠지 달라 보이는 것이었다. 음산하고 불길하였다. 평소에는 반짝거리며 그녀의 삶을 응원해 주던 아름다운 존재들이었는데 지금은 왜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
그녀는 자신의 발걸음 소리에 행여 다른 사람의 잠이 깰까 싶어 유난히 신경을 쓰면서 대문 옆에 자리한 행랑채 독방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이 방에 머무는 동안에는 대문을 열어주고 닫는 문지기 역할을 자동적으로 겸해야 하는 위치이긴 했다. 그러나 고단한 몸을 눕힐 수 있는 혼자만의 안식처가 생겼다는 사실에 내심 안심이 되는 그녀였다. 지금으로선 그 점이 제일로 중요했다. 어서 바닥에 드러눕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녀는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이불을 깔고 자리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나른하게 잠이 들려던 바로 그때였다.
“쾅, 쾅, 쾅. 쾅.”
아니, 조용한 밤중에 이 무슨 해괴한 소리인고? 한밤중에 올리는 전화벨이나 대문 두들기는 소리처럼 불길하고 기분 나쁜 전조는 아마 이 세상에 또 없을 것이다. 수진은 노곤한 몸을 겨우 일으켜 앉았다. 누군가가 대문을 때려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소리가 무척이나 둔탁하고 컸다. 그녀는 인상을 팍 쓴 채 주섬주섬 밖으로 나갔다. 입으로 짜증을 중얼거리고 눈은 거의 감긴 채 발이 저 스스로 대문으로 향했다.
“쾅!”
엄청난 소음과 함께 돌연 문이 안으로 퍽 밀려들어 왔다. 그리곤 가로로 걸어놓은 두 개의 쇠빗장에 막혀 파도처럼 뒤로 물러났다. 그것을 목격한 그녀가 깜짝 놀라 “에구머니나!” 비명을 지르며 뒤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냥 문을 두들기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부숴버리려고 온몸을 던져 때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창백한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었다.
그녀가 내지른 비명소리에 방 안에서 하나 둘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정사와 부사, 서장관은 잠옷 차림으로 마루 위에 서 있고 하인들과 마두들은 상체는 벌거벗은 체 마당으로 튀어나와 소리 나는 곳으로 달려왔다. 수진은 겨우 일어섰지만 쾅쾅 들어왔다가 물러나는 문을 쳐다보며 오들오들 떨었다. 어느새 박지원도 잠옷 차림으로 달려와 그녀 뒤에 섰다.
튼튼하고 단단해 보이는 대문인데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곧 부서질 것 같았다. 다들 한밤중의 소란에 어쩔 줄 몰라 문에 다가서지 못하였다. 지원이 가장 가까이 선 장복에게 어서 문을 열어보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는 달빛보다 더 허옇게 질린 얼굴로 그대로 털썩 제자리에 주저앉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저을 뿐이었다. 다행히 무장을 한 군관 둘이 씩씩하게 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이 썰물처럼 밀려나자 서둘러 빗장 지지대를 옆으로 뽑아 열어주었다.
“아니, 넌 창대가 아니냐?”
헤어졌던 자신의 마두를 먼저 알아본 지원이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가려다가 멈칫 섰다. 가장 가까이 있던 군관들조차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도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대문 밖에 걸린 초롱 밑으로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런데 그의 머리는 풀어헤쳐져 산발에다 이마 앞이 터져 얼굴을 타고 피가 줄줄 흘러내리었다. 앞이마로 문을 때린 것이 틀림없었다. 문에도 한바탕 피가 묻어있었다. 붉게 물든 그의 두 눈은 허기와 살기가 가득하여 한동안 굶주렸던 늑대가 식사거리를 노려보듯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의 피부는 거의 창백함을 넘어 보랏빛의 시체 같았고 옷은 여기저기 찢기고 피와 흙에 더럽혀졌다. 기괴한 표정을 지으며 그가 피로 물든 입을 활짝 벌리었다. 두 송곳니가 짐승의 것처럼 무척이나 크고 끝이 뾰족했다. 수진은 보자마자 그것이 무얼 뜻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그래서 공포의 외마디를 내질렀다.
“흡혈귀예욧, 어서 도망쳐요!”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창대가 두 손을 앞으로 착 쳐들더니 쿵쿵 뛰어 문지방을 넘은 후 바로 곁에 있던 군관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의 목을 물어뜯었다. 군관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튀어나와 뒤로 물러나 있던 다른 사람들의 얼굴과 몸으로 분사되었다.
순간 마당 안은 혼란의 아수라장이 되었다. 다들 걸음아 나 살려라 사방으로 도망치고 달음박질쳤다. 그중 진사 정각이 제일 민첩하게 창대 뒤로 슬그머니 도망치더니 대문을 박차고 거리로 달려 나갔다. 군관을 해치운 창대는 잠시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마루 위에 서 있던 정사를 발견하곤 그를 향해 쿵쿵 점프하였다.
지원은 자신의 마두가 정사까지 해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담벼락에 놓인 빗자루를 들고서 달려갔다. 그리고 빗자루로 있는 힘껏 창대를 내리쳤다. 등을 심하게 얻어맞은 그는 앞으로 기우뚱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실이라도 그의 등에 매달려 있는지 두 발이 바닥에 고정된 채 앞으로 넘어가던 몸이 오뚝이처럼 반동을 일으키며 똑바로 뒤로 일으켜지는 게 아닌가? 흡사 뒤에서 실이 잡아당겨지면서 무슨 허공에서 인형 곡예를 부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앞으로 들어 올린 두 손으로 지원의 목을 부여잡았다. 이빨을 드러낸 채 피로 물 들은 입이 지원의 목을 향해 덤벼들려고 하자 지원은 발로 그의 배를 뻥 찼다. 그런데 무슨 돌조각이라도 찬 듯 단단하여 오히려 때린 그의 발이 마비된 것처럼 얼얼하였다. 이리저리 그의 입을 피해 몸을 꼬고 고개를 비트는 등 별별 수를 다 쓰던 지원 앞으로 다른 군관이 달려오더니 그의 옆구리를 창으로 쿡 찔렀다. 그러자 그가 지원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아버렸다. 지원은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수진이 달려와 뒤로 잡아당겨 그를 피신시켰다.
창대가 이상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찌른 군관 쪽을 씨익 노려보았다. 그리고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는지 실실 비웃음을 쪼개며 몸속으로 파고 들어간 창을 쑥 뽑아 들어 옆으로 내던졌다. 그 장면을 목격한 이들의 등에 소름이 쫙 끼치고 입에선 충격과 경악의 비명들이 내질러졌다. 일이 이 지경이 되자 군관조차 벌벌 떨며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까 진사에 이어서 대문 밖으로 쏜살같이 도망쳐 버렸다.
창대가 다시 정사가 있는 쪽으로 두 팔을 앞으로 내민 채 쿵쿵 점프하기 시작했다. 다른 하인들과 부사가 얼른 정사를 방 안으로 피신시켰다. 그리고 다들 지팡이나 무기 같은 것을 들고서 그의 방문 앞을 몇 겹으로 둘러쌌다. 한밤중의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도대체 창대는 어쩌다 저런 괴물이 되었을까?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고 더더욱 지금은 그렇게 앞뒤를 재고 말고 할 겨를조차 없었다. 한 번은 여러 명이 솥뚜껑과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은 내밀며 그에게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괴력이 발휘되는지 그는 단번에 그들을 제압하여 바닥에 내동댕이치거나 물어뜯었다. 물어뜯긴 하인 한 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바닥으로 넘어진 하인 장복이는 어깨를 물려 뒷간으로 도망쳤다.
창대가 온몸을 부르르 떨며 일어나 고개를 돌리는데 별안간 급작스레 휘두른 쇠몽둥이 타격에 정수리 옆을 정확히 얻어맞고 말았다. 목뼈가 옆으로 푹 꺾이더니 부러졌는지 소리까지 났다. 그런데 그 꺾인 머리를 옆으로 달랑달랑 매단 채 몸을 틀어 방향을 잡더니 두 손을 앞으로 쑥 내미는 것이 아닌가? 꺾인 머리의 눈동자와 입이 옆으로 찢어지며 소름 끼치게 큭큭거렸다.
쇠몽둥이로 공격했던 박지원은 완전히 질리어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달랑거리는 머리의 불타오르는 두 눈동자가 방향을 바꿔 지원을 향해 쿵쿵 뛰어왔다. 뒤로 뒤로 밀리던 지원의 등에 딱딱한 뭔가가 느껴졌다. 담벼락이었다. 이미 다들 도망치고 사라졌는지 마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난 듯 황량하였다. 대문 뒤로 부들부들 떠는 수진의 살짝 내민 얼굴만이 보일 뿐이었다. 이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이다. 절망적인 심정이 든 지원은 몽둥이를 든 손에 힘을 잔뜩 주었다. 창대와의 거리는 채 2미터도 남기지 않았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호랑이를 만나도 물려가지 않는다는 옛 속담을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귀신같은 것을 은근히 무서워하였는데 오금이 저리고 덜덜 떨리는 몸을 겨우 지탱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저번 백호보다도 더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었으니까.
‘호랑이, 맞다. 그 푸른 돌.’
그러나 하필 그것은 자신의 방 안 봇짐 안에 고이 모셔둔 상태였다. 그 생각에 이르자 온몸의 힘이 쫙 빠지면서 전보다 더 후덜덜 떨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