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열하로 향하다 - 2

by Cindy Hwang 황선연


성첩보다 한길 정도 솟은 성 옆의 높은 축대는 연경의 관상대(觀象臺)였다. 그 아래로 계단이 놓여있었는데 밑으로 두 명의 병졸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었다. 관상대 위의 하늘은 해가 뉘엿뉘엿 지며 해가 물러난 자리를 붉은 노을이 점령해 들어오고 있었다. 곧 저녁 시간이어서 그런지 대(臺) 주변은 집으로 향하는 인파로 가득 찼다.


남색의 허름한 무명옷을 입은 한 남자가 홀로 그들을 헤치며 역방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노을빛을 그대로 반사시키는 그의 대머리가 주변을 아주 약간이나마 환하게 밝혀주었다. 그는 무척 급한 일이라도 있는 듯 인파를 뚫고 나오자 관상대 밑으로 쪼르르 달려오더니 바로 계단을 오르려 했다. 병졸들이 창으로 그의 앞을 재빨리 가로막았다. 그가 불끈 화를 내며 욕을 퍼부었지만 그들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때 대(臺) 위에 놓인 혼천의(渾天儀) 옆으로 파란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금발머리 신사가 나타나 힐끗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가 뭐라고 소리치자 길을 막은 창들이 후다닥 사라졌다. 무명옷의 남자는 빠른 속도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커다란 덩치에 더덕더덕 붙은 살덩이들이 무명옷 밑에서 철렁이자 그의 숨소리는 거칠어지고 힘겨워졌다.


관상대에 오르자 연경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그는 잔디밭에 놓인 구리로 만든 다양한 천문관측기구들 사이를 지나쳤다.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신사의 등을 향해 그는 조심스레 다가갔다. 한두 번 헛기침을 하자 신사가 뒤돌아보았다. 그 자신과 마찬가지로 서양인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조끼와 손수건까지 완벽하게 차려입은 영국신사였다. 멋쟁이 신사가 그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예정보다 하루 늦으셨군요.”


“이것도 겨우 도착한 거요. 중국은 어딜 가나 왜 이리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거요? 징그럽게 많아서 어깨를 부딪치는 건 예사더군.”


무명옷의 남자는 입을 삐죽 내밀어 쫑알거리면서 악수를 했다. 그 모습을 본 신사의 얼굴에 예의 바른 미소가 살며시 지어졌다. 겨우 숨을 돌려 안정을 취한 남자는 신사를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그래, 그놈은 어디 있소?”


“네? 뭐 말씀이십니까?”


“뱀파이어 말이오. 분명 당신을 만나면 어디 있는지 알려줄 거라 그분이 약속하셨단 말이오.”


‘뱀파이어’란 단어를 듣자 신사의 점잖은 얼굴이 순간 무시무시하게 일그러졌다. 이어 깊은 복수심에 찬 잔인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의 얼굴이 갑자기 변하자 무명옷의 남자는 순간 너무 놀라 소름이 끼치며 살이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그건 곧 알려드릴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입술을 잘근잘근 씹은 후 신사는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그분, 아니 주군께서 저의 뼛속 깊이 사무친 한을 여태껏 잊지 않고 계셨다니. 다시 한번 저에게 기회를 주신 셈이로군요. 게다가 당신 같은 동료도 붙여주시고. 참으로 고마운 분입니다.”


“또한 그분께서 당신에게 그곳으로 가라 전하셨소. 어딘지 알고 계시오?”


“미리 예상은 하고 있었소만.”


“언제까지 가야 하는지도 알고 있을 거라 하셨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어서 일을 끝내고 출발해야겠습니다.”


“일이라니?”


“사냥을 해야지요. 당신과 내가 그리도 원하던 일 말입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그 추악하고 더러운 오점들 말이오. 완전히 박멸해야 합니다. 동지가 한 명 더 오기로 되어 있는데... 아, 마침 저기 오는군요.”


대머리 남자의 등 뒤에서 터벅거리는 발돋움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신사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리더니 얼굴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는 신사가 미소 짓는 방향으로 뒤돌아섰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 그의 동공이 두 배로 확대되었다.


커다란 백호랑이가 그들을 향해 어슬렁어슬렁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저도 모르게 신사 옆에 바짝 붙어선 채 불안한 기색으로 떨었다. 호랑이는 그들 앞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제자리에 앉아 잡아먹을 듯이 푸른 눈알을 굴리며 무섭게 노려보았다. 그것의 이글거리는 눈동자 뒤로 새하얀 긴 꼬리가 가을바람에 춤을 추는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