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이안의 비밀, 그리고 사냥꾼들-1

by Cindy Hwang 황선연

15. 이안의 비밀, 그리고 사냥꾼들


칼날처럼 시린듯한 새벽 기운이 온 지상과 건어회동의 회동관을 둘러싸며 파랗게 물들어갔다. 곧 떠오를 아침해를 맞이하려는 듯 하늘은 자신의 색과 기운을 점점 옅게 변화시켜 갔다. 그것을 감상하는 건지 아닌지 모르지만 이안은 홀로 마루에 걸터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너져 내리고 있는 이 건물의 상태처럼 그의 마음 역시 무척이나 심란하여 툭 치면 쓰러질 듯 보였다. 어제 일이 자동적으로 그의 눈앞에 다시 회상되어 나타났다.


어제 아침에 수진이 열하로 떠난다는 문자를 접한 이안은 그녀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래서 샤를르 리가 밤이 되어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가 관에서 일어나자마자 바로 달려들었다. 그녀를 몰래 따라가도 되냐고 그의 의중을 물어보았지만 그는 개인행동은 금물이라며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 아직 그와 백작의 일이 연경에서 다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를 대기도 했다.


이안은 바로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불만을 반말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둘은 더 이상 서로에게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안이 일룸니아 왕국의 죽었다고 알려진 왕자라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던 터였다. 딥언더니아의 소금궁전의 서재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아봤었단다. 이안은 억울하다는 듯 그에게 분통을 터트렸다.


“도대체 백작과 네가 하는 일이 뭐야? 여기로 온 꿍꿍이는 대체 뭐냐고? 백작은 왜 데리고 온 거야?”


“이미 말하지 않았어? 고대문헌에 우리가 있는 지금 요 시절의 중국에서 ‘브라잇 동맹’의 ‘화이트드래곤’이 나타났었다는 설을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블랙수트마키아’에서 브라잇 동맹을 도운 신령스러운 존재인 화이트드래곤 말이야. 그래서 나랑 백작이 밤마다 연경 시내를 누비며 그것을 찾는 중이잖아? 백작만이 그것을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샤를르, 그건 전설이지 역사적 사실이라고 볼 수 없어. 그리고 지금 그것이 왜 필요한데? 현재 브라잇 동맹에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니잖아?”


“그냥 모험을 해보려는 거지, 친구야. 심심했는데 잘됐잖아? 재미도 있고.”


그깟 카더라통신 때문에 위험을 무릎 쓰고 과거의 중국으로 시간여행을 한다는 설명이 이안에겐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재미는 무슨. 게다가 그 일에서 자기만 쏙 빼놓고 지들끼리만 진행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성이 났는지도 모른다. 늘 씩씩거리며 반박할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기회는 이때다 싶어 이안은 다시 쏘아붙였다.


“내가 아무것도 모를 줄 알아? 너희들이 시내에서 용으로 보이는 온갖 기둥이나 장식품들을 꼼꼼히 살피고 있다는 거. 나도 다 안다고. 근데 그 신령스러운 화이트드래곤이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되겠어? 내가 보기엔 어디 동굴이나 호수 속 같은 데는 왜 살피지 않는지 정말 모르겠단 말이야. 동화책에서 용은 주로 그런 곳에 살잖아?”


샤를르 리는 피식 웃었다. 이안의 입술을 삐죽거리며 투덜대는 모습이 영락없는 그 또래의 16살 소년이었다. 아직 순수할 때였다. 용이 꼭 동화 속의 그런 곳에만 있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그런 그의 반응에 이안은 더욱 약이 올라 불같이 화를 냈다.


“네가 아무리 막아도 난 수진에게 갈 거야! 근데 정말 그 이유밖에 없는 거야? 어떻게 그녀가 우연히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거지? 분명 롤리마을에 있어야 하는데. 내 말은 샤를르, 뭔가 알고 있는데 나한테 숨기는 게 있는 거지? 그런 거지?”


“안타깝게도 나 역시 전혀 모르는 일이야. 나도 그녀를 보고 얼마나 놀랐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참 이상하긴 해. 그리고 너를 이리로 데려온 건 다른 이유였어.”


“다른 이유?”


“네가 거인의 피를 갖고 날 찾아온 이유 말이야. 어떻게 네가 뱀파이어로 깨어나게 되었는지, 네가 무척이나 궁금해하는 그 비밀.”


“그래, 난 네가 스스로 말할 때까지 참을 작정이었어. 좋아, 말이 나온 김에 그 이유 좀 들어보자. 어떻게 인간이었던 내가 화이트캐슬에서 뱀파이어로 깨어나게 된 거지? 내가 정신을 잃은 동안 아님 죽는 동안 그것에게 물린 건가? 어서 대답해!”


“말조심하게 친구, ‘그것’이라니? 이젠 같은 동족인데 서로 존경심이란 걸 좀 보이자고.”


“어서 말해!”


“그건... 네가 뱀파이어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이야.”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깊은 상처를 입은 동물이 뼈아픈 신음을 내뱉듯이 이안은 진저리를 쳤다. 그의 창백한 파란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어떻게 내가 뱀파이어의 피를 물려받을 수 있다는 거야? 난 일룸니아 왕국의 위대한 왕족의 피를 물려받은 왕자라고. 난 인간이었다고.


“날 놀리는 거야, 샤를르, 지금 장난해?”


“장난도 아니고 놀리는 것도 아니야. 이안, 네 피의 절반은 뱀파이어야. 내가 직접 그 일에 관여되어 있어 분명히 주장할 수 있어. 그리고 그건 네 부모와 나, 그리고 대마법사 와이즈맨만이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버지 메이슨 왕이... 사실은 뱀파이어였다고 말하려는 셈이야?”


샤를르 리가 힘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틀렸다는 표시였다. 그의 보라색 눈동자는 웬일인지 어떤 감정을 품은 듯 연민과 슬픔으로 살짝 번져있었다. 전에는 늘 냉정함을 유지하며 사태를 관망하는 차가운 눈빛이었는데, 그도 저런 눈을 할 수 있구나.


샤를르 리는 슬픈 시선을 돌리더니 방 한쪽에 무너져 내리는 기둥으로, 다음엔 자신이 잠에서 깨어난 검은 관으로 향하며 담담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네 어머니 이자벨은 뱀파이어였어. 그런데 일룸니아의 국민들은 그 사실을 몰랐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겠지. 브라잇 동맹의 수장국이자 마법왕국의 국모자리에 인간이 아닌,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가 들어앉았다는 걸 과연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래서 네 아버지인 메이슨 왕과 와이즈맨은 그 점을 철저히 비밀에 붙었어. 나 역시 처음 그녀를 봤을 땐 뱀파이어인지 몰랐으니까. 나중 알고 보니 와이즈맨이 고대마법까지 써가며 그녀를 그렇게 위장시킨 거였어.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지. 그녀는 왕자를 출산할 수 없었던 거야. 왕비의 가장 중요한 의무인 후계자를 낳을 수 없었던 거지. 그래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네 어머니는 날 몰래 찾아왔어. 난 그녀를 돕는 대가로 그녀와 거래를 했어.”


“거래라니?”


“‘뱀파니아’를 브라잇 동맹에 편입시켜 달라고 요구했지.”


이안은 다시 물어볼 필요조차 없었다. 그는 그녀를 잘 도운 셈이었다. 자신이 이렇게 태어나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거래는 성공적이었음을 의미했다. 한편으로 어떻게 뱀파이어 엄마에게 아기를 낳게 할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은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엄마가 어떤 고통과 희생을 치렀을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유일하게 아는 건 엄마가 자신을 낳자마자 바로 돌아가셨다는 것뿐이었다. 결국 그녀의 목숨과 자신의 생명을 맞바꾼 셈이었다. 이안의 눈에서 눈물이 뺨을 따라 또르르 굴러 떨어졌다. 그 모습에 샤를르 리가 경탄에 찬 눈초리로 중얼거렸다.


“정말로 아름다운 피조물이군. 인간처럼 울 수도 있고. 게다가 밝은 태양빛을 마음대로 받을 수 있는 뱀파이어라니.”


이안은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샤를르, 만약 내가 뱀파이어의 피를 받고 태어났다면 왜 아기였을 때부터 뱀파이어가 아니었지? 난 다른 인간들처럼 식사도 하고 초콜릿을 엄청 먹었었어.”


샤를르 리의 경탄 어린 눈빛이 다시 냉정을 되찾으며 원래의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는 딱딱한 어조로 대답했다.


“인간과의 혼혈이어서 그래. 더군다나 넌 고대왕족의 피를 이어받았으니 그 위대하고 고귀한 피가 뱀파이어의 욕망을 더 많이 죽여놓았겠지. 하지만 우린 다 알고 있었어. 만일 네가 죽는다면, 아니 죽음이 임박해 왔다면 다시 뱀파이어로 부활할 걸 말이야.”


“근데 그게 지금 여기 과거와 무슨 상관이야?”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네 어머니가 뱀파이어로 변한 시기가 대충 1780년으로 알고 있어. 그 당시 그녀는 여기 중국에 잠시 와 있었고. 그러니 너랑 전혀 관련이 없지도 않아.”


그때였다. 검은 그림자를 품은 안개가 옅은 바람과 함께 방문을 살짝 때리며 지나쳐갔다. 관에서 깨어난 드라큘라 백작이었다. 그의 부름에 샤를르 리가 답하자 그림자는 그대로 멈추어 섰다. 예상조차 못한 충격적인 사실로 인해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안의 곁을 샤를르 리가 지나치며 그의 어깨를 한번 토닥여주었다. 그의 타이르는 냉랭한 목소리 가운데에 상냥함이 조금 묻어 나왔다.


“이안, 넌 축복받은 뱀파이어야. 그러니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라고. 그렇게 경멸하며 못살게 굴지 좀 말고. 빨리 갔다 올 테니 푹 쉬고 있어. 기분전환으로 사냥이라도 좀 하던가.”


그는 문을 나서다 말고 멈추어 섰다. 아직 할 말이 더 남았는지 엉거주춤 뒤에 남은 이안에게 말했다.


“오늘까지 찾아보고 없으면 우리 다 같이 열하로 가는 게 어때? 거기에도 용 장식은 많이 있겠지.”


말을 마친 그가 백작처럼 검은 그림자 안개로 변신하더니 겹문 밖으로 재빨리 사라졌다.


이안은 자신의 나무관이 놓인 방으로 돌아왔다. 그 안에 누웠지만 잠이 오기는커녕 정신이 더욱 또렷해지기만 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잠이 들긴 틀린 것 같다. 그는 마당으로 나와 현관 마루에 걸터앉았다. 그렇게 생각에 잠기기 시작한 게 지금 이 새벽하늘이 되기까지 그대로 꼼짝없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샤를르 리와 백작이 회동관으로 돌아오는 시각은 밤을 지나 대충 이맘때쯤이었다. 이안은 그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아직도 샤를르 리에게 물어볼 것이 많이 남아있었다. 여기 앉아 혼자 생각에 잠겼던 사이에 떠오른 질문들이었다.


‘어서 돌아왔으면.’


그는 대문을 열심히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