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보조의 밥 푸는 이야기

면접

by 재해석


전기밥솥의 증기가 고압으로 솟구칠 때면 얼었던 마음마저 유순하게 녹이는 행복한 향기가 배어 나옵니다.


몇 해 전 초가을이었어요. 백반집 주방 보조 아르바이트 광고를 보고 면접을 보기로 했습니다.

주어진 업무는 설거지와 밥 하기였어요.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의 노동이라면 평소 가사 노동의 연장선이라 생각했고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면접 자리에 가을 햇살이 조명처럼 쏟아졌습니다.

일흔세 살의 여 사장님이 눈인사를 건네고 익숙하게 담뱃불을 붙이셨습니다.


“ 한 대 피울래요?”

“ 하하하~괜찮습니다 ”

담배 연기 길게 뿜으시더니

“이런 일 하기에 너무 고운데.”라고 하셨습니다.


물음표 없는 이 문장은 양날의 검이었습니다. 귀하게 자란 것 같다’는 품위에 대한 인정 같기도 했고 ‘힘든 일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겉보기와 달리 험하게 살아온 나로서 종종 듣는 말이었지만 여전히 어떤 변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불편함이 고개를 듭니다.

귀티 난다'는 말이 한때는 듣기 좋았으나, 삶이 고단할수록 나와 세상 사이의 간극을 넓히는 반어법이 되었습니다.


염색도 하지 않아 반백이 된 머리에 싸구려 셔츠와 청바지 하나 입었을 뿐인데 자연조명 덕분일 거라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커다란 압력솥으로 다섯 번의 밥을 안치고 점심 설거지를 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했던 일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라고 했지만 반신반의하는 기색이셨죠.


이곳은 가성비 좋은 백반집이라 저도 서너 번 식사도 하고 도시락 포장도 했던 곳입니다.

여 사장님 남편과 아들내외가 함께 운영하는 곳인데 좋은 인상을 주던 곳이었어요.


아들 내외에게 소개하셨습니다.

“실상은 아들이 사장이고 나는 주방장이에요. 이모라고 불러도 되고 언니라고 해도 돼요. 근데 참 곱다. ”

라고 하셔서,

“ 작년에 돌아가신 엄마보다 한 살 아래신데 건강해 보이셔서 부러워요. ”라고 했습니다.


“건강은 타고나는 것 같아요. 줄담배 피우고 매일 술 마시는데도 얼마 전 건강검진에 아무 이상이 없대. 하하하하”

사장님의 가식 없는 솔직함에 마음을 뺏겨 이모 대신 '언니'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스물한 살에 시집와 십 년의 시집살이를 견디고, 40년 넘게 식당 밥을 지어온 그녀의 거친 생애를 인내심 있게 경청하는 것, 그것이 제가 지녀야 할 주걱의 무게임을 직감했습니다.


“크게 힘든 일 없을 거예요. 내가 많이 도와줄 테니까 편하게 생각하고 오래 있어요. 근데 참 곱네. ”

또 곱다 하셨고,

“걱정 마세요. 제가 얼마나 험한 일을 많이 했는지 아시면 깜짝 놀라실 걸요. 다섯 시간은 껌이에요.”

라고 했습니다.

하도 곱다 곱다 하셔서 그 후로 하하하 웃지 않고 호호호 웃었습니다.


본격적인 밥 푸기가 시작된 다음 날, 밥을 예쁘게 담고 싶어 30분 일찍 출근했습니다. 예쁘게 푸려면 시간이 필요하니 서둘러야 합니다.

현장 일하시는 분들이 많이 오시니까 가득 눌러 담아야 하나 여쭸습니다. 밥 추가는 무료고 보온밥솥에 얼마든지 있으니 밥알을 살리라 하십니다. 다 된 밥도 주걱으로 섞지 말고 가볍게 떠 담으라 하셨어요. 뒤적이면 밥알이 뭉개지고 맛이 사라진다는 거죠.

밥공기 테두리에 빈 공간 없게 채우고 뚜껑에 눌리지 않게 평평하게 고슬고슬 담은 뒤 손님처럼 열어 보기도 합니다.

흐르는 물에 양파를 까면 눈이 맵지 않다는 것도 가르쳐주셨습니다.

주방 보조는 처음이라 배울 게 많았습니다.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쌓을 때도 같은 크기의 찬기끼리 줄 맞춰 넣고 꺼내기 좋은 방향으로 배치합니다. 그런 사소한 배려를 해 주면 일하는 사람들이 귀신같이 알아채고 내 몫의 일을 은근히 도와줍니다. 그릇이 쌓인 무거운 쟁반을 가까이 가져다주고 빈 쟁반도 가는 길에 치워줍니다.

밥 푸는 이야기가 대단한 서사는 아니지만, 사소한 것에 마음을 다하는 일은 고요한 감동을 남깁니다.

누군가는 누추하다고 짐작할 그 현장에서, 나는 뜨거운 밥김을 맞으며 비로소 삶의 허기를 채웠습니다.

글을 마칠 즈음, 집 안을 감돌던 밥 내음이 투명하게 흩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