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반성문 다음 장

by 재해석

검사용 일기 말고, 타인에게 건넨 최초의 글이 반성문이었다.


돌이켜보면 반성문만큼 정직한 글도 드물다.

이름은 반성이지만, 두려움과 변명과 체념과 호소가 함께 있다.

자기 잘못을 들여다보는 자체도 어렵고, 문장으로 적어 내민다는 건 더 힘든 일이다.

잘못 보다 상처를 먼저 숨기고 싶은 사춘기는 더 그렇다.


그때의 나는, 어딘가에 닿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선생님이 벌로 내준 반성문은 내게 벌일 수 없었다.
처음으로 내 앞에 놓인 소통의 문이었다.

누군가 내 말을 끝까지 읽어주겠다고 내민 종이로 받아들였다.

그날 연필을 쥔 손의 감각을 기억한다.
어디까지 솔직해야 할지 오래 망설였다.

아빠의 폭력을 쓰자니 두려웠다.
이웃집 아저씨 이야기를 쓰자니 더 겁이 났다.
사실을 쓰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그렇다고 거짓말만 쓰자니 금방 들킬 것 같았다.


진심과 거짓말을 섞는 법을 그때 배웠다.

살기 위해 서사를 편집했다.
다 털어놓지도 못하고, 완전히 숨기지도 못한 채, 들키지 않을 만큼만 진실을 흘려보냈다.

그게 내가 처음 익힌 글쓰기였는지도 모른다.

사실을 고백하는 법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을 만큼만 나를 꺼내 보이는 법.

그 얇고 위태로운 균형을, 나는 반성문 위에서 처음 배웠다.


그때 내가 쓴 것은 잘 보이기 위한 문장이 아니었다.
남의 감정을 흉내 낸 문장도 아니었다.


내 마음이 어디쯤 와 있는지,

나는 왜 자꾸 도망치고 싶은지,
하고 싶은 말은 왜 입으로 나오지 않는지,
무엇이 무섭고 무엇이 억울한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조차 모르는 채 그저 살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분명하다는 것을,
나는 서툰 문장으로 적었다.


입으로 하면 울음이 먼저 나오지만, 종이 앞에서는 순서를 정할 수 있었다.
글의 좋은 점을 그때 알았다.
글은 중간에 말을 가로채지 않는다.
누구도 내 표정을 보고 “됐어, 그만해”라고 하지 않는다.

내 말을 믿지 않는 사람 앞에서는 내가 틀린 사람이 되었지만, 종이는 언제나 중립이었다.
쓰는 동시에 읽는 나는, 내 편이자 나의 증인이 되었다.


세월이 한참 지난 뒤, 오선자 선생님이 내 반성문을 간직하고 계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제출한 것은 벌의 숙제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책상 서랍에서 살아남은, 한 아이의 구조 신호였다.

그 사실은 오래도록 나를 붙들었다.


지금껏 편집된 반성문 같은 방식으로 사람도 만났다.
솔직한 척했지만 솔직하지 않았고, 착한 사람인 척했고, 괜찮은 사람인 척했다.

읽지도 못할 만큼의 책을 사들였고, 어울리지도 않는 취향을 덧입었다.

버림받지 않으려 상대를 추앙했고, 눈치를 보느라 내 목소리를 잃었다.

내 뜻과 다르면 나를 부정한다 여겼다.


건강한 논쟁을 몰랐다.

말다툼은 언어폭력이 되거나, 싸대기로 번질 거라고 믿었다.

말을 삼키거나, 엉뚱한 데서 짖거나, 먼저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셰퍼드 앞에 선 소형견 같았다.

큰 개는 작은 개를 향해 먼저 짖지 않는다.
작은 개가 먼저 짖는다. 무서워서 짖는다.
우리 말티즈도 그랬다.

안아주면 더 크게 짖었다.

품이 안전하다는 걸 알수록 더 요란하게 떨었다.


나도 그랬다.

버려질까 두려울수록 더 부자연스러워졌고, 상처받기 싫을수록 먼저 관계를 망쳤다.

그렇게 짖다 보면 시끄러워서 다 떠나고 만다.

아니, 떠나기 전에 내가 먼저 떠났다.

오랫동안 내 삶의 방식이었다.


더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더는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먼저 문을 닫는 사람.


그날 감추지 않았던 반성문 같은 글을 쓰고 싶다.

잘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닌,

읽는 사람의 비위를 살피는 글이 아닌,
나를 포장하거나 숨기거나 유능해 보이려 애쓰는 글이 아닌,

읽어주는 단 한 사람이면 족한 글쓰기를 하고 싶다.


내 글에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다.
내 문장을 소중히 접어 어딘가에 꽂아두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끝까지 읽어주는 사람, 중간에 끊지 않는 사람, 오직 한 사람만 있어도 된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나는 아직 과정 속에 있다.
삶의 마침표를 찍기 전에는, 어떤 점선이 실선이 되고 어떤 곡선이 방향이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지울 수 없는 과거의 선들을 되짚다가, 연필 쥔 손을 바꿔 쥐기도 한다.

필통을 바꿀까도 생각한다.

과거의 선을 지울 수 없다면, 그 위에 다른 선을 덧그리면 된다.

상처를 없애지 못한다면, 상처 위에 문장을 얹으면 된다.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더라도, 무늬가 되게는 할 수 있다.


선생님이 내민 것은 벌이 아니라 허가였다.

말하지 못한 아이에게 써도 된다는 허가.
울음을 참는 아이가, 문장으로 살아남아도 된다는 허가.


반성문은 문제아의 증거가 아니다.
세상에 남긴 구조 신호다.
떠나고 싶었던 아이가 아니라, 떠나고 싶지 않은 아이가 남기는 문장이다.


나의 반성문은,

일기보다 절박했고,
변명보다 정직했으며,
침묵보다 오래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