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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이 Jan 11. 2019

위화감

단어 시리즈 1

참으로 정신없는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있다. 연말연초의 법칙인 걸까. 연말이니 얼굴 한번 보자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는데, 이 약속을 서로 지키지 못해 결국 연초에 얼굴 한번 보자로 말이 변경되면서 많은 식사 약속 자리가 생겨났다. 더불어 행사도 많다. 좋아하는 화장품 브랜드는 ‘새해’니까 빅세일을 하고, 활동 중인 합창단에서는 ‘새해’라서 회비를 할인해준다. 국가도 ‘새해’라서 일 년 치 자동차 세금을 미리 내면 10퍼센트를 깎아주겠단다. 이번 달은 번역료가 가장 낮은 달인데 참으로 곤혹스럽다.


특히 요새 내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하는 한 가지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새해맞이 단체 엠티를 기획하는 것이다. 추운 겨울에는 펜션 하나를 빌려 보드게임을 하거나 고기를 구워 먹거나 하면 그만이긴 하지만 항상 그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에 매너리즘을 느꼈던 내가 당일치기로 바람이나 쐬자고 제안했다. 단체라고 해도 열 명 정도지만 어떤 형태로 진행할지부터 어디로 갈지, 무엇을 먹고, 어떤 나눔을 하고, 언제쯤 집에 돌아올지를 정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이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진행해도 만족스러울지 묘하게 불편하고, 불안함이 앞선다. 무언가를 기획하는 일 자체를 온전히 처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단체 내에서 나름의 책임을 지고 하는 첫 일이다 보니 왜인지... 좀 그렇다. 


남들 말에 따르면 열심히 잘하려고 해서 그런 기분이 드는 거라고 하는데, 모든 이가 만족하는 결과를 낼 수 없을 거란 건 누구만큼이나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왕 맡은 일이니 잘하고 싶은 건 당연지사 아닌가. 좋은 말로 하면 책임감이 강한 것일 테고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너무 예민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실 성격상 처음부터 이런 자리를 피하고 본다. 신경 안 써도 되니까. 그러나 다가오는 엠티 날짜에 계속해서 묘한 불편함을 느끼던 중 펼쳐 든 책에서 이런 구절을 만났다.


“‘위화감을 소중히 합시다.’”


무릎을 ‘탁’ 쳤다. 책에서 말한 위화감이란 기획자의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었겠지만, 나는 책을 읽는 순간 일상에서 느끼는 ‘묘한 불편함’을 마주하는 일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올해 내 인생에 변화라는 게 존재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위화감이란 조화되지 아니하는 어설픈 느낌이라고 한다. 처음 한다는 것은 새롭게 해본다는 말과 같은 뜻이기 때문에 익숙한 내 일상과 조화를 이루지 않아서 어설픈 느낌이 들도록 만든다. 운동을 해야 하니까 평소보다 게을러질 시간이 줄어드는 것도, 책을 내기 위해 한 달 동안 밤낮으로 쓰는 일에 몰두하는 것도, 그리고 참여자의 입장에서 엠티를 기획하는 위치에 앉게 된 것이 힘들고 불편했던 이유가 바로 위화감 때문이라니. 그렇구나. 새로이 도전하는 모든 일에 이 위화감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면 이 느낌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된다면 참으로 좋지 않을까.


한 미국 회사의 무선 이어폰이 출시됐을 때 다들 이상하다고 비웃었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도 엄청난 거부감이 들어서 구입할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는데, 해당 제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멋지고 세련된’ 위치에 단숨에 올라섰다. 익숙하지도 않고 이상하게 생겨서 별로였던 물건이 이제는 사고 싶은 제품 순위에 올라 있어서 틈틈이 가격도 보고 새 상품 출시일을 눈여겨보고 있을 정도다. 이렇게 위화감을 주던 것이 일상 속 한 장면으로 변화한 과정을 지금부터 내 삶에 적용해본다면 어떨까. 물론 모든 위화감을 소중히 하는 일은 정말 어렵겠지만 적어도 나를 사랑하고 주변을 돌아보는 일 때문에 생기는 위화감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다. 시간 내어 가족과 밥을 먹는 일, 평소 하지 않던 ‘힘내’라는 말을 건네는 일, 고생한 나를 위해 아주 맛있는 저녁을 사주는 일, 바쁘고 지치지만 오늘은 나보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그리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하여 두렵지만 새로운 기회의 문을 두드려보는 일까지. 과정 속에서 느끼는 감정이 조금 어색하고 불편해도 마주하고 났을 때의 쾌감은 생각보다 시원하다. 말은 그럴듯하게 해도 매번 넘어지곤 하지만, 그래도 돌이켜보면 위화감이 드는 그 일을 했을 때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 고백할 수 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기도라는 걸 해보지 않은 사람이 기도를 하겠다고 무릎을 꿇는 순간, 이미 변화가 시작된 것처럼 말이다.


위화감투성이였던 작년 2018년... 올해는 쉴 틈 없이 몰아붙이기보다 위화감에도 느긋한 여유를 선사하고 싶다.(아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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