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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이 Jan 11. 2019

톺아보다

단어 시리즈 2

*2018년 11월 15일, 네이버 블로그에 사전 업로드했던 글로, 약간의 수정을 거쳤습니다.



매월 1일, 그리고 15일에 발간되는 잡지 <빅 이슈>를 사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온라인으로 주문하거나 집 근처 서점에서 구입해 읽을 수도 있지만, 지하철역 입구 앞에 서서 오매불망 고객을 기다릴 판매원들에게 직접 사서 보는 것이 더 의미 있겠다는 나름의 신념 때문에 지하철역에서 직접 구매하는 편이다. 참고로 잡지 <빅 이슈>의 판매원들은 안정된 자립 기반 확보를 위해 새 삶을 살기로 결정한 홈리스(주거 취약 계층)며, <빅 이슈>는 이러한 홈리스의 자립을 후원하고 있다.

특히 작년에 발행된 190호의 경우,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플라스틱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어 더더욱 읽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플라스틱 남용에 관한 문제는 내가 요즘 들어 가장 관심 있게 보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환경 단체를 후원하고 가지고 있는 모든 제품을 친환경으로 바꾸는 등의 격렬한(?) 실천 지침을 따르고 있지는 않지만 다회용 컵을 휴대하고, 에코백을 메며, 장바구니를 지참하는 작은 행동이 갇혀 있는 사고를 열어 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그렇게 주요 기사를 읽고 있던 중 태어나 처음 보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바로 '톺아보다'였다. 곧장 초록창에 검색을 했더니 '샅샅이 톺아 나가며 살피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톺다'는 '1. 가파른 곳을 오르려고 매우 힘들여 더듬다 / 2. 틈이 있는 곳마다 모조리 더듬어 뒤지면서 찾다'라는 뜻이다.

달리는 버스 안, 창밖을 바라보며 천천히 소리 내 단어를 읊어 보니 이미 무언가를 톺아본 느낌이 든다.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톺아보며 살았을까.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를 어물쩍 넘기진 않았을까?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었던 순간에, 아픈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코가 석자라며 모른 척 넘겨 오진 않았을까. 엄마 아빠랑 이야기를 나눈 게 언제였더라,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제자들에게 채찍질을 했으면서 정작 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이제 보니 톺아볼 일들이 이렇게 무수히 많다.

자주 가는 아울렛 풍경. 이곳도 연말이란 옷을 입고 있는 중이다.


요즘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시간 참 빨리 간다'다. 2018년 1월에 세웠던 새해 계획은 일부를 제외하고 2019년으로 또다시 이월될 예정이다. 한번 생각하게 된다. 새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했는지 말이다. 누군가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건 아닌지, 문제를 풀어나갈 방법을 알려고 하긴 했었는지, 방법을 알면서도 복잡하고 귀찮다는 이유로 미뤄왔던 것은 아닌지. 이런 나를 보며 내가 좋아하는 책,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의 저자 마스다 무네아키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결국 모르는 것에 본질이 있다면, 그것을 알고자 노력하면 된다"고.

2018년 11월 15일, 오늘 많은 학생들이―어떤 의미에서―매우 고대하던 시험을 마친다. 국가도 간섭하는 대대적인 시험이 곧 종료된다. 결과가 어찌되었던 간에, 수험자는 분명 던져진 주사위를 차분히 안착시키려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올해가 한 달 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니 나도 차분히 톺아보며 앞으로의 미래를 구상해 봐야겠다. 동시에 지나온 순간들을 톺는 일도 마다하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어도 내 의지와 다르게 계획이 자주 어그러지곤 하지만, 원래 삶이란 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작업의 반복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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