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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이 Sep 17. 2021

진정으로 마음을 쏟고 있나요?

분주하고 초조한 나의 마음을 다잡게해준인생 속 질문

추석이 다가오니 초조하다. 추석 지나면 1년이 다 간 것이나 마찬가지라 말하던 엄마의 말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9월의 문턱을 넘으면 묘하게 바빠진다. 올해가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실감하면서 아직 다 입지 못한 여름옷, 바닥 한쪽에 쌓아둔 새 책들, 잔뜩 휘갈겨 둔 아이디어 노트 등이 눈에 밟혀 오기 때문이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미뤄둔 일과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은 산더미라서. 아, 그렇다면 다시 말해야겠다. 9월의 문턱을 넘으면 묘하게 마음이 바빠진다.



이런 사정을 뒤로하고 번역 원고 마감부터 지키려 모닝커피를 들고 책상에 앉았다. 글이 잘 안 나와 금세 화가 났다. 약속 일자는 다가오는데 내 문장은 너무나 별로다. 컴퓨터 모니터를 등지고 잠시 다른 곳을 보며 커피나 홀짝인다. 문제가 뭘까. 이유가 뭘까. 어째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기분일까. 나는 매일 이렇게 투쟁하고 부단히 노력하는데 제자리만 걷는 기분은, 정말로 '기분'인 걸까 '현실'인 걸까.



퍼뜩 2011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보낸 봄이 떠오른다. 교환학생이었던 그때의 나는 어느 수업의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3번의 시험으로 전체 성적이 결정되는 이 수업에서 교수는 22년간 영화 속에서만 보던 진정한 미국식 강의를 진행했다. 교과서는 거의 보지 않고 화이보드 하나에 검은 마커를 들고 3시간 내내 떠든다. 그렇다고 교과서 내용을 안 다루는 것은 아니다. 희한하다. 교수의 이야기를 듣다 의문이 든 학생이 손을 들고 꼰 다리를 풀지 않고 검지 손가락과 중지 손가락 사이에 펜을 끼운 채 거침없이 질문을 한다. 교수는 대답을 한다. 혹은 질문에 질문으로 답한다. 150명이 넘는 수강생 앞에서.



내향인 나는 그런 곳에서 고개나 처박고 있다가 D라는 성적을 받게 생겨 이제는 몸이 달아오른 상태였다. 무슨 방법이 필요하다. 여기까지 와서 이 수업의 학점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진짜로 큰일이 나게 생겼다. 몇십 년 더 살아보니 성적표에 D 하나 있다고 큰일이 나지 않는단 걸 잘 알게 되었으나 나는 학교와 성적이 전부였던 20대 초반이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교수의 집무실을 찾아가는 것까지 생각했다. 이것이 최후의 수단인 이유는 자존심 상하게 부족한 영어로 손짓 발짓까지 섞어 가며 고충을 토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시험을 앞둔 어느 날 착잡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데 정시에 교실 문을 연 교수가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오늘 내 오피스에 학생 세 명이 찾아왔습니다. 제 수업만 성적이 잘 안 나와서 큰일이 났다고요. 그러면서 어떤 수업을 듣고 있는지 거기선 성적이 어떻게 나오는지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꺼내놓았습니다. 아, 오해 마세요. 우린 재밌었어요. 알고 보니 저희 모두 농구팬이었거든요.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궁금해져서 그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일주일에 이 수업을 위해 몇 시간 공부하나요, 라고요. 그 학생이 한 3시간 정도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성적이 나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더 해줄 말이 없으니 가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 세 명보다 내가 먼저 교수를 찾아갔다면 이 일화의 주인공은 나였을 것이다. 그리고 서양인의 유쾌한 디스 문화를 견디지 못한 나는 수업 시간에 시뻘건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이 에피소드가 끝나기만을 바랐을 것이고. 속으로 나는 일주일에 이 수업을 위해 몇 시간 공부하는지 세어봤다. 지금까지의 시험 공부법은 중학교 때 익혔던 것으로, 시험 일자가 잡히면 2주 전부터 계획표를 만들어 시험 범위를 암기하듯 훑어보곤 했다. 같은 시험인데 왜 이 방법은 대학에선 먹히지 않을까. 대학교 3학년이라는 사회적 이름표를 달고서야 의문이 들었다.



그날 이후, 기숙사에 돌아오면 녹음 파일을 다시 들으면서 내용을 이해하려 애썼고 필기해둔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해 최소 일주일에 3시간 이상씩 해당 과목을 위해 공부했다. 면목을 지키고 싶었다. 그래도 실패하면 어떡하나 두려웠으나 지금이라도 마음을 다잡았다는 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최종 시험 날에는 23번의 질문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아 아주 큰 용기를 내어 교수를 소환하기도 했다. 가까이 다가와 질문 내용을 다시 풀어 설명해준 그 사람은 생각보다 다정했고 부드러웠다. 나는 재설명을 듣고도 이해하지 못했으나 그 미소에 힘을 얻어 과감히 답을 선택했다.



가끔 갖고 싶고, 얻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그 수업 장면을 떠올린다. 그것을 위해 지금까지의 나는 얼마만큼의 노력을 하고 있는가. 일주일에 몇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가. 오늘은 몇 분을 기꺼이 내어 주었는가. 그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정말로 마음을 주었는가. 글을 잘 쓰고 싶은 만큼 꾸준히 책을 읽었는가. 청명한 하늘이 서글플 정도로 열심히 오늘을 살았는가. 참고로 최종 성적은 C를 받았다. 덕분에 3학점을 인정받아 부전공 증명서를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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