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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이 Jul 01. 2021

눈에는 눈, 우울에는 우울

우울에는 우울로 응수한다


우울하다, 우울해. 며칠 전부터 무척 우울하다. 어렴풋이 어떤 이유로 우울한지  것도 같다. 얼마  아는 동생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부러 마트에  밀가루를 사서 더운 날씨 참아가며 오븐에 빵을 구웠는데 동생들이 많이  왔다(시간 되는 사람들 보는 자리여서 참석자가 적을 거라 예상은 했었지만).  그날 동생들을 만나기 전에 미리  두고 싶은  있어서 집을 일찍 나섰는데, 4차선 도로를 타려는 찰나 혹시 같이   있냐는 다른 지인의 전화를 받아 결국 20 늦게 출발해야 했다. 마음도 몸도 조급해져 미친 듯이 엑셀을 밟느라 땀을 뻘뻘 흘린  약속 장소에 도착했는데, 힘들게  장소에 동생들은  뿐이었고, 그중  명은 일이 있어서 가야 한다고 일찍 자리를 떴다. , 이게  뭐람. 혼자 애쓴 꼴이 우스워서 온몸에 기운이  빠진 채로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정말 이것 때문에 이렇게 며칠 동안 우울할 일인가. 여기선 자존심을 세우고 싶으니, ‘  때문은 아닌  같다고 말하겠다.



글이 잘 안 풀려서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기도 하다. 새로운 번역서 작업을 위해 여러 책을 참고하며 문장 스타일을 공부했지만, 키보드에 두 손을 올리는 순간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미칠 노릇이었다. 하루에 완성해야 할 번역 원고 분량을 채우지 못하니 일정이 자꾸 뒤로 밀리고, 그러니까 본래의 계획들이 아주 원대하게 어그러졌다. 기분이 매우 별로였다. 일주일에 최소 이틀은 쉬자고 마음먹었는데 일정이 밀리니까 그럴 수가 없었다. 꾸준히 이틀씩 쉬면 더욱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생겼으니까. 그때부터 잠시라도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한 해의 절반을 보내는 시점에 서 있어서 그런지 요즘 부쩍 생각도 많았다. 잘 하고 있는 걸까, 잘 살고 있는 걸까 뭐 이런 종류의 생각들 말이다. 죽을 때까지 피할 수 없는 고민이라지만 최근 생각의 깊이가 남달라서 조심해야겠다 싶긴 했는데, 며칠 전의 분주하고 상심한 하루 덕분에 맥이 탁 풀려 버린 듯하다. 여기에 장마도 아니고 이상하게 습하고 무더운 날씨까지.


이제 보니 나는 5월에도 허무했었나 보다


무기력 구간에 들어오니 모든  싫다. 힘든  있냐, 맛있는  먹을까, 오락실이라도 가서 스트레스 풀까 등등의 제안이 ~~~ 싫다.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아무 부탁도 하지 말고 아무 말도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을 위해 이러고 사나, 허무하다. 먹고 싶은 것도 없다. 피곤해도 음식을  손으로 만들어 먹고, 정말 바쁠 때는 배달이라도 시켜 일하기 위해 먹고 지냈던 나인데, 이런 내가 먹고 싶은 것이 없어 평소 식사 시간을 훌쩍 넘긴 때에  물에  말아 오이지나 아작 씹고 있다는 것은 진정으로 ‘무기력하다는 뜻이다. 모든 것에 의욕을 잃은 상태이자 무엇을 하려고 해도 효율과 능률이  오르지 않는 상태. 무기력 받고 슬럼프 얹은 격이다. 세상에. 쓰고 나니  최악이잖아?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담. 그냥  우울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재빠르게 일부 업체에 아파서 다음 주부터나 일을   있을  같다고 급하게 양해를 구했다. 거짓말은  했다. 나는 지금 정말 아프니까. 걷다가 눈물이 나면 그냥 울고, 집에 앉아 있다가 눈물이 나면 울고, 먹고 싶지 않으면 먹지 않고, 눕고 싶으면 눕고. 부모님이 무슨 힘든 일 있냐고 묻는 순간에는 무조건 침묵으로 대답 중이다. 하루아침에 애가 바뀌어서 당황스러우실 텐데, 정말 죄송하지만 지금의 나는 힘이 없다. 이러다 잠식당하는  아닌가 약간 걱정이 되지만, 정말로 지금 나는  우울감을 이겨낼 힘이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 생각이 없다 비장하게 글을  놓고선. 하지만 사람의 감정이 손바닥 뒤집듯 이렇게까지 달라질  누가 알았겠는가. 지금의 나는 쪽팔릴 힘도 없다.



하지만 일면에는 나를 향한 믿음이 있다. 조금  시간이 흐르면, 분명히 씩씩한 나의 모습을 회복할 것이란 믿음 말이다. 여기서 씩씩하다는 것은 에너지를 주체할  없어 어쩔  모르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행복을 때때로 즐거워하며 기꺼이 오늘의  걸음을 내딛는 자세다. 몸속에 쌓인 두려움, 분노, 걱정, 감정 피로 등을 흘리지 않은  전진하다 보면   일이   분명하다. 눈물을 흘린 뒤에야 슬픈 감정으로 얼룩진 파란 구슬이 노란 구슬로 변했던 <인사이드 아웃> 라일리의 기억 창고처럼, 아픈 기분을 모른 척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까 우울에는 우울로 응수해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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