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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이 Oct 05. 2021

번역이 주는 위로

며칠 전 마감한 작업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자신이 나약하다 생각할 때도 있겠지만, 그건 당신의 시선에서 본 내 모습일 뿐. 여러 시련을 견뎌냈듯 잘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글을 만나면 조금 더 애쓰게 된다. 내가 원문으로 받은 감동과 위로를 독자들에게도 잘 전달해야 할 텐데, 라면서. 조사를 이리로 옮겼다 저리로 옮겼다, 이 단어를 넣었다 저 단어를 넣었다, 쉼표를 찍었다 온점을 찍었다, 하면서.



혼자서 실랑이를 벌이다 보면 머리를 탁 치던 순간은 온데간데없고 텀블러에 든 냉수를 들이켜는 내가 있다. 원문을 읽고 마음이 몽글해져 창밖 풍경을 보았다가 지금의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해보고, 이 기운을 담아 문장을 한국어로 옮기려는 순간 이것이 과연 최선일까 싶어 지웠다 썼다를 반복한다.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상이 야속하고 앞서가는 누군가를 보면 어째서 신은 나만 도와주지 않을까 궁금하고 하나 둘 친구의 자리를 떠나가는 이들을 보면 나만 외로이 늙는 할머니가 될 것 같아 속상하다. 어째서 아직 조금 더 번듯하지 못할까. 돈 좀 모았냐 묻던 잘 나가는 숙부의 지난 추석 덕담이 떠오른다.



이런 나에게 그러하듯, 분명 누군가의 삶에는 이 한마디가 참으로 소중할 것이고 고마울 것이고 구원일 것이기 때문에 잘 전달해주고 싶다. 가끔 이럴 때는 좋아하는 친구의 사물함 속에 수신인 없는 편지를 남겨 놓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몰래 훔쳐보던 초등학생 때가 떠오른다. 어느 곳에 사는 이름 모를 그 사람은 번역가의 문장을 읽고 마음에 어떤 감정을 떠올릴까.



번역은 하는 이에게도 위로를 주고, 번역을 건네받은 이에게도 위로를 주니, 역시 좋아할 수밖에 없는 행위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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