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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이 Nov 04. 2021

책은 찢어야 맛이다

여행 사진집을 독립 출판하다



새 책을 구상하면서 책의 목적을 정했다. 바로 누군가의 일상에 내 책이 녹아드는 것이다. 아마 이 목적은 앞으로 만들게 될 모든 창작물의 목적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느 책과 다름없이 나도 내 책이 누군가의 하루와 함께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전문 인력 없이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고칠 수 있는 것을 고친다. 다만 글보다 그림이 많은 책은 어떻게 사람의 하루와 함께할 수 있을까.



이번 책의 핵심 키워드는 '프리팬데믹(pre-pandemic) 마지막 해외여행지, #throwback, 미국 한 달 살기'로, 책을 만들게 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네이버에서 '미국 한 달 살기'나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를 검색해서 내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하루에 1명은 반드시 존재한다. 당시의 나는 이 검색 유입어가 무척 의아했다. 미국에 한 달을 살러 가는 여행이 아무리 봐도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지금도 그렇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딘가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에 영감을 받았다.



영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오나 보다. 그맘때쯤 누군가가 인스타그램에 #throwback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옛 여행 사진을 올렸다. 마스크 없이 완성된 온전히 웃고 있는 표정, 이국적인 풍경, 자유로운 분위기가 사진을 통해 고스란히 느껴졌다. 웅장한 랜드마크가 담긴 사진도 있었지만 대개 그곳에서 먹은 음식이라든가 그들이 사는 풍경 등이 업로드되었다. 잡지를 넘겨 보듯 편안하게 사진을 감상하고 그중에서 마음에 든 사진이 있다면 거침없이 스크랩하거나 한 장을 주욱 찢어 벽에 붙이면 근사한 인테리어가 완성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책의 방향이 정해진 순간이었다.



개인의 추억 소품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사진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약간의 텍스트를 적절히 곁들였다. 이런 책의 의도를 잘 설명하고 싶어 과감히 두 페이지에 글을 썼다. 매거진 편집장이 된 기분이었다. 사진 아래 글을 넣을 때는 에세이 작가 겸 도록 편집자가 된 기분이었다. 판매율과 상관없이 이 책도 내게 참 소중한 존재가 될 거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렇게 책 속의 장면들이 바깥으로 튀어나와 공간 곳곳을 장식해주는 꿈을 꾸며 이 책을 만들었기에 몸소 실천해보았다. 찢는 순간, 사람도 책도 능동적인 존재가 되는 걸 느꼈다. 찢긴 페이지는 조금 더 의미 있고 특별한 종이가 되고, 어떠한 결심을 담아 조심스레 책을 찢는 사람은 활자가 담긴 종이를 더욱 애지중지하기 시작한다. 밑줄을 긋고 테이프를 떼어 벽어 붙인 뒤 오래도록 곱씹는다.



헤르만 헤세는 독서의 질을 높이지 않으면 당신의 짧은 인생에서 손해를 보는 것이라 말했다. 데일 카네기는 서문에서부터 적극적으로 밑줄을 그어 가며 책을 읽으라 당부한다. 현재 책이 찢어지기를 바라고 사진이 계속 감상되기를 원하고 있으면서, 지금까지 나는 책을 어떻게 대해왔을까 생각해본다. 한 달에 3권은 읽어야 하는 대상이고, 재미가 없어도 베스트셀러라니까 노력해야 하는 대상이고, 밑줄을 그으면 중고로 팔지 못하는 대상이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어떻게든 깨끗이 쓰고, 책을 둘 곳이 더 이상 없으면서도 온라인 서점을 기웃거리고 , 도서관에 가면 빈손으로 오는 일을 못하는 걸까. 아니, 어쩌면 모든 걸 다 알고 가지고 싶어서, 다만 그에 따른 시간과 노력은 들이기가 귀찮아서, 그저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의 욕심을 그대로 보이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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