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새 이름
정확히 언제부터 필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내 이름이 좋고, 네이밍 센스가 없다(가장 싫어하는 것이 조별로 이름 짓고 구호 만드는 활동이다. 가뜩이나 못하는데 조원들이 의욕 없이 굴면 더더욱 싫다). 첫 에세이를 전자책으로 낼 때도 필명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다음 책 출간 계획이 없었기에 당연하게 본명을 썼다.
반드시 필명을 갖고 말겠다는 욕심은 없었으나 입에 착 붙고 기억하기도 좋은 이름을 가진 작가들을 부러워하기는 했다. 신기하게도 유명 작가들의 이름은 유난히 작가스럽고 소설 주인공을 떠올리게 한다(세랑, 초엽, 상영, 훈 등).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은 원래 있었고, 이런 마음을 따라 자연스레 내 글을 누군가 좋게 봐줬으면 하는 욕심도 생겼는데, 알게 모르게 예쁜 작가명에까지 욕심이 있었나 보다.
처음으로 필명을 써 본 것은 짤막한 에세이를 써서 제출하는 온라인 클래스를 수강할 때였다. 글 끄트머리에 수줍게 ‘정재이’라고 적어 냈다. 친한 지인이 나랑 식사를 한 뒤 SNS에 J와 밥을 먹었다고 쓴 것이 출발점이었다. 레트로 느낌도 나고ー왜, 노래에도 편지에도 ‘J에게’라는 근사한 제목이 있지 않나ー별명으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기저기에 나를 ‘J’라고만 소개하거나 쓰기에는 어딘가 아쉬워서 J를 ‘제이’라고 써 봤다. 여전히 괜찮긴 한데 알파벳을 병기한 것이 너무 티가 나서 모음을 뒤집어 ‘재이’라고 써 봤다. 그 다음에는 성을 붙여 봤다. ‘정재이’. 괜찮네.
알파벳 소리를 한국어로 둔갑시킨 뒤 SNS 계정에 이름을 바꾸어 적었더니 여기저기서 개명을 했냐고 묻는다. 이 질문을 여러 번 받아서 진짜 개명할까도 싶었다. 요즘은 어느 플랫폼이든 닉네임을 쓰는 란이 있는데 나는 이 부분도 부담스러워서 한참을 생각하곤 한다. TV 속의 유쾌하고 귀엽고 러블리한 드라마 주인공처럼 되고 싶어 공란으로 넘길 수 없는 그 칸에 종종 ‘연블리’라고 썼었는데, 이제 나는 새로운 이름을 통해 색다른 존재가 되었기에 닉네임 칸에 ‘재이타민’을 적고 있다(영어 비타민의 발음 ‘바이타민’의 앞글자만 바꾼 것이다). 나는 정말로 네이밍 센스가 없는데, 새 이름이 알아서 찰떡같이 여기저기 잘 붙어 준다. 느낌이 좋다. 재이를 내 이름으로 하길 잘했다.
지난봄, 첫 작업물 표지에 이름 석 자를 넣어 책으로 만들고 엄마에게 가져다주니 이 이름은 누가 지었냐 묻는다.
‘내가 지었는데.’
‘세상에, 잘도 지었네. 기억하기도 쉽고. 예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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