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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이 Jul 14. 2022

직접 만든 책이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다

독립출판물이 기성출판물로 이어지다


"내 이름이 적힌 책을 갖고 싶다."


이 마음은 순수한 자아실현보다도 원대한 야망에 가까웠다. 책을 내고, 인기를 얻고, 찬사를 받고, 잘 나가고 싶었다. 흔히 말하는 '성공한 작가'가 되고 싶었다. 글솜씨가 없는 편은 아니니 가망이 있다고 여겼다. 그렇다면 세상에 나를 어떻게 알리면 좋을까. 먼저 출판사에 눈에 띌 수 있도록 열심히 글을 써서 원고를 모아야겠다는 생각에 블로그와 브런치에 홀로 에세이 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일주일에 1편의 글을 써서 업로드하는, 꽤나 당돌하면서도 부담스러운 작업이었는데 놀랍게도 나는 나와의 약속을 7개월 남짓 지켰다. 먹고사는 와중에도 마감을 지키겠다며 애를 썼다. 그만큼 글을 써서 자립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하지만 세상일은 열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법. 비장한 마음으로 응모한 몇 번의 공모전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내 글에도―독자들의 댓글에 따르면―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힘이 있다던데, 왜 나는 입상 근처에도 못 가는 걸까? 왜 내 글엔 관심이 없을까? 이대로 공모전에서도 투고 활동에서도 수확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아무런 답도 내놓을 수 없던 나는 어느 날 이 모든 질문에 마침표를 찍기로 결심했다. '내책내낸', 즉 내 책은 내가 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독립출판물로 만들었던 <2년 만에 비행기 모드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독립출판에 뛰어들었다. 책 만들기 클래스를 통해 만든 첫책은 나의 일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는데, 번역가라는 조금 특이한 직업을 가진 덕분에 소소히 주목받으며 무난히 데뷔를 할 수 있었다. 독립출판계에 있는 많은 작가들에 비하면 아주 소량의 책을 팔았을 뿐이지만, 관심을 가져주고 궁금해하는 이들을 직접 만나며 책 만들길 잘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조금 용기를 얻은 나는 5개월 뒤 두 번째 책을, 그로부터 2개월 뒤 세 번째 책을 만들었다. 두 번째 책은 많은 책방에 입고하지는 못했지만 직접 책을 본 사람들은 정말 잘 만들었다며 칭찬해주었고, 세 번째 책은 실험적인 방식을 적용한 덕분에 목표치 이상의 판매량을 달성했다. '내 아이디어에도 약간의 작품성과 상품성이 있긴 하구나.' 그렇지만 단 한 권의 독립출판물로 스타가 된 어느 작가나 스테디셀러로 살고 있는 또 다른 작가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허무와 불안에 빠져들었다. 그들과 나의 차이점은 뭘까. 내가 부족한 걸까? 그렇다면 내게 부족한 그 2프로는 도대체 뭘까. 이 다음은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어느 날, 나는 말로만 듣던 '독립출판물이 기성출판물로 이어지는 순간'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출판사로부터 이 세 책을 엮어 하나의 새로운 작업물로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듣게 된 것이다.



생각과 달리 각기 다른 방향성을 지닌 작업물 세 개를 하나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실제로 기존 책 내용은 아주 일부만 들어갔기 때문에 새 책을 집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글을 선별하고, 살을 붙이고, 배치를 바꾸고... 글이 내 마음에 꼭 들어도 흐름에 맞지 않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삭제했다. 이메일로 교정본과 편집본이 여러 번 오갔고, 그러면 일하다 말고 갑자기 자리에 앉아 글을 수정하고 확인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신이 나기보다 예민해지는 기분이었지만, 그럼에도 즐거이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 때문이었다. 아직은 조금 더 지속할 수 있겠구나. 기쁘다, 감사하다. 글을 써서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이 외면받지는 않았구나, 하는 마음이랄까. 정말로 모든 걸 혼자하고 있는 독립 출판 제작자라면 어느 순간 한계를 느끼게 된다. 글을 쓸 때든, 디자인을 할 때든 책을 홍보할 때든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힘에 부칠 때가 있는데, 기성 출판물로 변신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함께 힘써주는 편집자, 북디자이너, 마케터 등을 만나 보니 이들의 도움을 받아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열띤 회의를 하면서 이 글이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도록 고심하는 모습을 보니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독립출판이 기성출판으로 이어지는 과정 가운데서 내가 느낀 것은, 이제 나도 유명해지겠구나, 돈 좀 벌겠구나, 사랑 좀 받겠구나 하는 것보다 나에게는 누구 못지 않게 글과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얼마 전 번역했던 어느 예술가의 인터뷰에서 그는 성공을 이렇게 정의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지속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이 일을 통해 멋진 사람들과의 우연한 듯 필연적인 만남을 이어갈 수 있는 상태.' 이번에 신간을 준비하는 과정을 돌아보니 나는 참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비록 야심을 따라 '내책내낸'이라는 작은 공을 쏘아 올렸지만, 덕분에 많이 성장했고, 또 성장해 나갈 것이 분명하니까. 특히 직접 책을 만드는 일을 실천하지 않았다면 이런 즐거운 기회는 절대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ISBN도 없이 불도저처럼 책을 만들어 팔아본 것은 무척이나 행동력 있고 멋진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손댄 책들이 다 잘 됐으면―잘 팔렸으면―좋겠다. 사람들이 많이 사 주고 관심도 가져줬으면 좋겠다. 이번 출간 작업을 통해 더욱 확실해진 것이 있다면 나는 책이 좋고, 글이 좋고, 쓰는 것이 좋고,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것이 좋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나는 이 사실 하나를 스스로 깨우치기 위하여 오늘까지 달려온 걸지도 모르겠다.



여담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누군가가 책을 써 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도 당신의 이야기를 반드시 꺼내어 보라고 말하고 싶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단순해져야 한다. 책을 쓰고 싶다면 원고를 써서 모으자. 남의 글도 많이 읽고 분석해보고 강의도 들으면서 글쓰기 기술을 향상시키고, 끊임없이 쓰고 투고하자. 선택을 기다리는 일이 지치고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직접 만들면 된다. 독립출판물은 기성출판물로도 충분히 이어질 수 있으니까.


출판사 더라인북스를 통해 새롭게 출간된 <2년 만에 비행기 모드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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