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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이 Jan 18. 2019

저 그렇게 착한 사람 아니에요

단어 시리즈 3 - 착하다는 건 뭘까?


얼마 전 소개팅을 했다. 상대는 천진하다는 표현이 꽤나 어울릴 만큼 착하고 순수한 남자였다. 주변 언니들은 착한 사람이 무조건 최고라고 외치셨는데, 그분들은 이미 결혼한 지 시간이 좀 흐른 상태여서 미안하지만 빛이 나는 솔로인 나는 그 말에 온전히 공감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 안에 내재한 의미가 뭔지 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냥 무조건 ‘착해서’ 연애가 성립한 게 아니란 것 또한 알 수 있으니까.



그런데 나는 착한 사람이 힘들다. 더불어 천진한 사람은 더 힘들다. 내게 천진한 사람이란 눈치가 없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순수함으로 공격해오는 그들의 표정과 행동이 날 괴롭게 만든다. 바꾸어 말하면 나의 좁디좁은 관용과 용납의 폭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상황이 싫다. 나라고 항상 졸렬하고 괴팍한 사람으로만 인지되고 싶은 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런 성향을 지닌 사람들과는 아무래도 거리를 두게 되는 편이다. 나도 모르게 ‘픽’하고 뱉어버리는 말로 인해 상처를 주기도 싫고, 이 사람은 답답하다고 판단해 버리는 일은 더더욱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뭐 대단하다고.



그런데 재밌는 것은, 착한 사람들도 본인이 착하다는 말을 듣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내가 아는 착한 언니에게 ‘나는 언니처럼 착하게는 못 살겠다’고 말하면 본인은 하나도 착하지 않다고 늘 대답한다. 언니는 심지어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다.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이타주의의 넘버원이라고 불러주고 싶을 정도로 남을 신경 쓴다. 본인이 한 말로 인해 누군가가 타인에 대해 나쁜 선입견을 갖게 되면 어쩌나 걱정을 한다. 내가 한 말로 인해 남이 나를 어떻게 볼지가 아니라,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볼까 봐 잠을 설치고, 오늘 한 얘기는 꼭 비밀로 해달라며 혹시 내가 한 말 때문에 네가 그분을 나쁘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 카톡을 보낸다. 다 함께 밥 먹을 장소를 정할 때 B대신 A로 여론이 몰리면 사실 괜찮지 않으면서도 괜찮다고 대답을 한다. 나는 싫긴 한데 다들 좋아하는 것 같으니 그냥 내가 참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정말 괜찮다고 해서 결국 A로 가면 먹을 수 있는 게 없어 잘 먹지도 않는다. 그래서 진심으로 화를 낸 적이 있다. 남을 배려하는 건 좋지만, 자기 자신을 억눌러가며 사는 듯한 언니의 태도는 착하다 못해 답답할 지경이어서 정말 힘들 때가 많았다.



그런데 나라고 착한 심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서(?) 이런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늘 괴로워하는 편이다. 나는 왜 이렇게 못 됐을까부터 시작해 이런 친구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나 자신에게 이해심 부족, 배려 부족, 관용 부족, 포용력 부족이라는 선고를 내린다. 그리고 대화의 자리가 생겼을 때 그 사고방식을 이해하려고 무던히 애를 쓴다. 그 과정에서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답답해져서 스트레스를 충만하게 받을 때는 아는 분께 배운 ‘-구나, -겠지’ 방법을 적용한다. ‘저 사람은 저렇구나, 무슨 일이 있겠지’ 등으로 한 번만 생각하고 넘기는 것이다. ‘남을 생각하느라 그랬구나, 아직 잘 몰라서 그랬겠지’처럼. 생각보다 효과가 아주 좋다. 특히 운전을 할 때 효력이 크게 발생한다.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좀 더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처음 만난 날, 천진하신 소개팅남은 내게 다양한 이야기와 질문을 하셨다. 다음 약속 날까지 이어진 카톡에서도 아주 많은 얘기를 해주셨고, 다음 식사 자리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셨다. 정말 궁금해서 물으신 거겠지, 참 순수하시구나라는 마음으로 그분을 바라봤는데, 그 이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내 맘을 잘 모르겠어서 참으로 곤혹스러웠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흐름상 착하시고 순수하신 것 같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분도 자기는 그다지 착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그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간간히 센 말투를 선보이셨고 말이 많은 편도 사실은 아니라고 하셨다. 그래서 당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 것처럼 느끼신 걸까. 언제부터인가 ‘착하다’는 말은 그다지 좋은 말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하긴, 나만 해도 ‘착한 사람하고는 잘 안 맞아’라며 나의 착하지 않음을 선포하고 있으니 말이다.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는 단어의 의미가 무색하게 착하다는 것은 이 험한 세상에서 손해를 보며 사는 사람이자 답답하고 매력 없는 사람이라는 대체 표현으로 쓰이는 것은 아닌지. 착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언니들의 주장과 세상의 정의는 서로 많이 다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날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곰곰이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지금 내 마음은 어떨까. 찬찬히 들여다보니 ‘이 남자에게 이런 면도 있구나?’가 아니라 ‘그래, 이런 거겠지, 이런 걸 거야’라고 생각하려 드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다면 이건 상대에게도 실례다. 좋은 남자를 알아보지 못해 시간만 끌고 있는 나 때문에 그분도 상처를 받으면 안 되니까. 헤어지고 난 뒤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약속 당일에도 작업이 있었던 내게 업무 힘내라는 문자를 주셨는데, 늦은 시간과 맞물려서 나는 따로 답장을 보내지 않았고, 그 문자 이후로 우리는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그분은 착한 분이 맞다. 착한 사람이 최고라는데, 착한 사람이 최고인 거 나도 잘 아는데, 내가 아직 착한 사람이 아니라서 착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거겠지. 큰일이다. 아직도 거듭나야 할 부분이 아주 많은가보다. 여담이지만 운명은 만들어가는 거라던 어느 에세이 문구가 생각난다. 어쩌면 나는 아직 그럴 용기가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착한 사람이 되어 착한 사람을 만나는 그날, 반드시 보고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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