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찾아가다
상담소는 이해해야 할 것들투성이었다.
내가 예민한 편이라는 것, 생각 이상으로 세속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 자존감이 낮아진 지금의 상태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 등. 몇 가지는 인정할 수 있었고 몇 가지는 인정할 수 없었다.
11월 초 웹사이트를 통해 상담소 문을 처음 두드렸다. 우울하기 좋은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다는 상실감, 갈수록 짧아지는 해, 앙상해진 나뭇가지, 차가운 공기, 꼼짝없이 한 살 더 먹고 말게 될 거라는 두려움, 코로나19가 주는 무력감까지. 이때의 기분을 색깔로 표현한다면 잿빛 섞인 주황 중에서도 거무스레한 느낌을 주는 오묘한 색과 비슷하다. 눈과 귀와 코와 마음으로 계절과 마음의 변화를 느끼고 있던 당시의 나는 노트북 화면에 상담 신청서 페이지를 띄워놓고 한참을 울다가 미친 사람처럼 분노의 타이핑을 시전하며 무언가를 썼다가 갑자기 박차고 일어나 그 자리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제출 버튼 앞에서 몇 번을 망설였다. 요즘처럼 불안 안정제를 먹고 상담을 다니는 일이 흔한 시기도 없을 텐데. 두려웠다. 나는 감정 변화가 심한 사람이라는 걸, 남들 모르게 우울함을 간직한 사람이라는 걸 낯선 이에게 털어놓는 일이 과연 괜찮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어서 그랬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시원해지고 싶은 마음과 평가당하고 말 것이라는 걱정이 공존했다. 상담소의 문턱을 넘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어려웠다. 남들이 상담을 다닌다고 할 때 아무렇지 않은 반응을 보였던 과거의 내가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막상 내 일이 되니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는 주제에.
아직은 무더운 초가을 오후에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2개월이 지나면 상담소에 첫발을 들인 지 1년이 된다. 다만 코로나 감염, 휴가 및 출장 등으로 인해 상담을 매번 가지는 못했고, 얼마 전에 30회 차 상담을 다녀왔으니 상담을 한 기간만 정확히 따지면 약 7개월이 된다. 누군가에 비하면 짧은 기간일 것이다. 별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언 1년간 상담소를 오갔던 나에게는 감회가 새롭다. 추운 겨울에 상담소를 찾아갔다가 눈 깜짝할 새 봄을 맞았고, 꽃 피는 아름다운 세상 풍경과 그렇지 못한 내 마음속 세계를 비교하며 좌절하던 때,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삼복더위를 맞았다. 겨우 더위를 견뎌내고 나니 이제는 단풍 든 나무 아래서 붕어빵 아저씨가 장사를 한다. 여러 계절을 지나는 동안 나는 상담을 통해 힘을 얻었고, 좌절했고, 때론 속상했으며, 어떤 때는 세상을 강하게 비난했다. 코로나로 인해 3주 연속으로 상담을 하지 못하게 된 날에는 오히려 그리워하기도 했다. 마침내 나는 이 혼란스러운 기분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정리했다. 이 행위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렇게나 다양한 감정을 마주했을 리 없다. 그렇게나 꾸준히 그 자리에 나갔을 리 없다. 침 튀기며 내 이야기를 쏟아냈을 리 없고 아픈 사람처럼 울어댔을 리 없다. 어느새 나는 이 시간을 사랑하게 됐다. 상담소를 다녀온 어느 날에는 SNS에 비밀스럽게 #내가사랑한화요일 이란 해시태그를 적은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몇 번의 화요일(매주 상담을 받는 요일이다)을 더 거쳐야 괜찮아질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조금 더 가볍고 단순해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솔직해져 가고 있다. 조급과 불안 속에서 나를 단단히 빚어가고 있다. 물론 아직도 의자에 앉아 나의 이야기를 할 때면 눈물이 난다. 뭐가 그렇게 서러워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울음을 막지 않는다. 코도 푼다. 그러다 또 운다. 약속한 시간이 다 되면 머릿속에 가득한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가지고 문밖을 나선다. 이 과정을 되풀이하는 화요일이, 사랑스럽다.
이곳에 모인 글들은 여러 번의 화요일 거치는 중 있었던 일들을 기록한 일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