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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이 Feb 15. 2019

외국인 친구

단어 시리즈 5 - 만남이란..

처음으로 외국인 친구가 생겼다.



아직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깊은 관계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분을 나만 느낀 건 아니라는 확신이 있다. 실제로 만난 건 딱 한 번. 심지어 함께 보낸 시간은 겨우 여섯 시간 정도인데 이야기를 나눌수록 공통점이 쌓여 가는 걸 보며 우리는 10대 소녀처럼 즐거워했다.



나이도, 키도, 좋아하는 음식도, 심지어 그날의 스타일링까지 비슷했던 우리는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설명하고 싶지만 단어가 잘 생각나지 않는 순간에는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말을 이어나갔다. 일본어로 대화하는 일이 처음은 아니지만, 내가 전달하려는 바를 찰떡같이 알아듣고 또 내가 늘 고민해오던 부분을 콕 짚어 대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는데 동갑내기인 유미가 그랬다. 문자 메시지만으로는 다 말할 수 없었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까르르 웃는 시간이 꽤나 즐거웠다. 한국어와 일본어 공부, 우리 때 인기 있었던 한국 및 일본 아이돌, 드라마, 여행, 30대로서의 고민, 연애, 결혼 이야기까지. 지금은 각자의 바쁜 일상에 다시금 적응하느라 메시지조차 잘 주고받지 못하고 있지만 때때로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어쩜 나와 이렇게나 비슷하고 잘 맞는 사람을 먼 타국에서 만나게 되었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새삼스럽지만, 사람에게 ‘만남’이란 다양한 형태와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이렇게 우연히 다가오는 만남은 예상하지 못했던 정도에 비례해 커다란 여파를 남긴다. 마주하기 어려운 슬픔과 낙망을 안겨주기도 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지루한 일상을 좀 더 살아낼 수 있도록 토닥여주기도 한다. 두 가지 만남 모두 다 갑작스레 찾아온다는 공통점이 있다. 언제 그리고 어디서 일이 이루어질지는 전혀 내다보지 못한 채 요즘을 보내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무능한가 하는 깨달음이 오기도 한다. 만나려고 애를 써도 만나지지 않더니만, 그저 힘을 빼고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렸더니 알아서 찾아오니까 말이다.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얼마 전 책에서 읽은 ‘순리대로 살아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억지로 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대신 오늘 내딛을 수 있는 한걸음을 묵묵하게 걷는 것. 모든 것의 정답은 ‘빼기’에 있다는 말도 가슴에 더욱 와 닿는다.



유미와는 강남역 3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유미가 지하철을 반대 방향으로 타는 바람에 걱정이 되어 개찰구를 나오면 연락 달라고 말한 뒤 그 앞에서 기다렸는데 갑자기 ‘3번 출구로 가고 있다’는 메시지가 왔다. 연락을 주기로 했는데 왜 지나쳐 갔을까 궁금해졌지만(알고 보니 와이파이 연결이 갑자기 끊겼었단다) ‘나는 개찰구 앞에서 널 기다리다가 이제 3번 출구로 가고 있으니 거기서 만나자’고 답장을 보냈다. 답장을 확인한 친구는 춥기도 하고 미안해서인지 다시 역사 안으로 들어오려고 에스컬레이터를 탔는데, 때마침 반대편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나를 발견했다. 스쳐 지나가는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우리는 동시에 ‘어?!’를 외쳤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그것도 이렇게 시트콤처럼 만나는 건 더더욱 처음이었다. 둘이 커피를 마시며 아까 그거 정말 웃겼던 것 같다고 또 까르르댔다. 사랑은 1km 반경에 있다고 하던데―아니 경험에 따르면 꼭 1km 안에 있지도 않더라―, 우정의 경우는 조금 다른가 보다. 1,000km 안에도 존재할 수 있단 걸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좀 더 든든해지는 기분이다. 저기 저 먼 곳 어딘가에서도 날 응원하고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나만의 ‘빽’이 생긴 것 같아서 말이다.



지금부터는 어떤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까.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유미가 가보고 싶다고 해서 덕분에 저도 별마당 도서관에 처음 가 봤어요. 우연히 초청 연주회까지 보면서 둘이 재밌게 놀았답니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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