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그런 생각을 해 봤다. 한국 사람에게는 새해를 맞는 행사가 두 번이나 있다는 생각. 그래서 조금 더 특별한 기분이 든다. 또 힘차게 맞이했던 1월이지만 금세 잊혀버린 갖가지 새해 목표와 긍정적인 기운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새해가 두 번 주어져서 좋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옛날에는 신정을 이만큼 축하하는 느낌이 잘 들지 않았다. 요새는 1월 1일을 새로운 시작점으로 여기고, 그 뒤에 이어지는 설날은 연휴이자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새해 첫 빨간 날, 그리고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 정도로 인식하는 것 같다. 집안 분위기도 한몫하는 것 같다. 우리 집은 지금까지 1월 1일이라고 만둣국이나 떡국을 끓여 먹지는 않았다. 다 같이 해돋이를 가 본 적도 없다. 구정에 할머니네 가서 다 같이 떡만둣국을 먹고 갈비찜도 먹고 잡채도 먹고 술떡도 한 입 베어 물어야 ‘아 내가 진짜 한 살 더 먹었구나’하는 기분이 들곤 했다. 혹시 내가 결혼을 안 해서 그런가도 싶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요새는 연휴 전에 미리 시댁과 친정 방문 미션을 해결한 뒤 해외여행을 가는 신혼부부가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 명절 풍경도 다양하게 변하는 것 같다.
며칠 전에는 캐나다에 거처를 잡고 있는 사촌 오빠를 데리러 인천 공항에 다녀왔다. 어째서 이곳저곳이 사람들로 붐비는 연휴에 오는 것인가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의외로 막히지 않았던 고속도로와 붐비지 않는 게이트 상황을 보며 귀찮아했던 사실이 미안해졌다. 짐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아 간단한 음료를 사 들고 속속 도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했는데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며 투덜거리면서도 게이트 너머 아는 얼굴이 보이자마자 큰 소리로 ‘OO야!’를 외치는 아버님도 계셨고, 진한 포옹을 하며 안부 인사를 전하는 한국 중년 남성과 아프리카 남성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오랜만에 보니 정말 반갑다며 서로를 향해 해맑게 미소 짓는 풍경이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워 보였다. 그곳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재미있는 공간이었다. 다양한 감정이 오고가는 흥미로운 공간, 그곳에서 나는 갑자기 가족들이 그리워졌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설날이 한국인에게 주어지는 재밌는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했듯 잔뜩 세워뒀던 새해 목표와 달리 바쁜 일상과 추운 날씨로 인해 조금은 지쳐 있던 사람들에게 새로이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을 주는 것만 같아서 말이다. 새해 인사랍시고 문자를 돌린 이후로 단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사람들이 대체 몇 명인지. 예전에는 삼촌, 이모, 사촌, 좋아하는 친구들 한 명 한 명에게 정성스레 문자 메시지를 적어서 보내곤 했었는데. ‘사람이 먼저다’를 실천하겠다던 다짐은 어디로 간 걸까. 오늘은 지난달에 적어 두었던 새해 목표를 꺼내어 봐야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던 일들은 무엇이었는지 알아봐야겠다. 이미 벌여둔 일도 있고 해야 할 일도 있어서 지금 이 상황에 새해 목표를 다시 실천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늘을 넘기기 전에 펴 보지 않으면 긍정과 열정의 기운으로 덧입혀진 삐뚤빼뚤한 내 글씨가 이대로 잊힐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혹시라도 이제는 실천할 수 없거나 실천할 마음이 없어졌다고 해도 괜찮다. 그저 오늘은 그 목표들을 잊는 게 아니라 추억하고 싶다. 뭘 썼는지 알지도 못하는 게 아니라, 기억의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어야 진정한 추억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오늘처럼 추억을 마주 하고 싶은 순간에는 따뜻하고 달콤한 카페 모카 한 잔이 잘 어울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