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하늘을 올려다 봤더니
일을 마친 새벽, 불을 끄고 침대 위에 누워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뜬다. 유난히 창밖이 환한 것 같아서 커튼을 치려다 그마저도 그만두기로 한다. 대신 창밖을 아니 정확히는 창문 너머 높은 하늘을 잠시만 바라보기로 한다. 그렇다. 이런 날은 아름답고 은은한 달빛이 내 방을 환하게 비추는 날이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겠지만, 유달리 날씨의 영향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라 해가 화창한 날에는 기분이 좋고 비가 오고 흐린 날에는 차분해진다. 습도 높은 날씨엔 불쾌감을 억누르려 애쓰고 건조한 날에는 미스트와 핸드 크림을 반드시 상비한다.(피부가 건조해서 더욱 예민하다) 그래서 적당한 바람과 햇볕이 있는 봄가을 날씨를 무척 좋아하는데 인간의 손길을 탄 이곳은 그때의 완벽한 간절기 날씨를 돌려줄 생각이 없어 보여 아쉽다. 어쨌든 해를 보지 못하면 괴롭다. 지난 3월 초쯤, 미세먼지의 공습을 직격탄으로 맞아 약 10일 정도 내리쬐는 햇볕을 보지 못해 극심한 우울과 짜증스런 기분에 시달렸다. 국가를 욕하고 타국을 탓할 뿐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그리고 내가 해서 변할 수 있는 일도 없어 무력감에 빠졌다.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을 가리켜도 한 줄기의 햇볕을 봤을 때의 그 기분이란. 과장해서 '살았다'고 느꼈을 정도였다.
그저 맑은 날, 화창한 날, 햇살 가득한 날만 좋아하던 내가 달빛의 매력을 느꼈던 건 지금으로부터 9년 전. 미국 유학 시절 동아리 친구들을 따라 해변에 캠프 파이어를 하러 갔을 때였다. 그때 스모그(smorg: 꼬치에 크래커와 초콜릿, 마시멜로 등을 끼워 불에 구워 먹는 캠프 음식)에 눈을 떴다. 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몰랐던 마시멜로의 참맛을 그때 알았다. 바다 곁에 있어 금세 차가워진 몸을 높은 열량 덩어리로 달래니 살 것 같았다. 그리고 무심코 뒤를 돌았다가, 운면의 만월을 마주했다. 크고, 동그랗고,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처럼 강렬하면서 부드럽게 빛나는 달. 그 빛 아래 잔잔히 물결치는 파도의 움직임이 더해지니 장관이었다. 풍경에 감탄한 내가 감상을 쏟아냈더니 한 미국 친구는 풀문(full moon)은 좀 으스스해서 좋아하지 않는다 했다. 이런. 즉각적인 공감 얻기에 실패했다. 이후 몇몇 친구들도 동조하지 않아서 서양 고전 이야기의 영향인가 싶기도 했다. 아무렴 어떠랴. 나는 그때처럼 아름답고 웅장한 달을 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 그 장면은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깊이 남아 있다.
그때부터 고요한 밤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따사로운 낮의 해만큼 놀라울 정도로 환한 빛을 비춰내는 달이 좋아졌다. 사회생활을 할 때엔 미워하기도 했다. 오늘 아침에도 널 보고 나갔는데 왜 돌아오는 길에도 또 널 봐야하냐면서. 달 보고 나갔다 달 보고 들어오는 삶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어 지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니 그 무엇도 아름답지 않아 괴로웠다. 낭만적인 달도, 마음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니 평온하게 바라볼 수 없었던 그때. 그래도 뭐든 열심히 해보겠다고 흔히 말하는 악바리 근성으로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이던 그때가 문득 떠오른다.
모두가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음을 준비하는 새벽에 가끔 멍하니 달을 바라본다. 요란하지 않고, 으스대지 않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도 않는다. 이목을 집중시키는 자극적인 빛은 아니지만 주변과의 조화를 세심하게 배려한다. 오늘 하루를 달처럼 보낼 수 있다면, 팽팽한 실처럼 날카로운 주변의 공기가 조금은 따뜻하게 풀어질 수 있지 않을까.
차분한 달빛 아래에 앉아 있다 보면 왜인지 속 얘기를 꺼내놓고 싶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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