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시리즈 1 - 함께 먹은 치킨에서 드러난 진실
너무나 재미있게 들어서 잊혀지지 않는 일화가 있다.
어느 모임에서 가끔 저녁이나 간식으로 치킨을 시켜 먹곤 했는데, 한 여학생이 자꾸 눈치 없이 낼름 닭다리를 쏙쏙 골라가 먹는다는 것이었다. 본인 말고도 닭다리를 먹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은데 늘 치킨을 시켜 먹을 때면 같은 행동을 되풀이 해서,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소리 없는 분노를 사고 있었다. 하지만 다들 그녀가 닭다리를 많이 좋아하는가 보다라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매번 넘어갔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되자 보다못한 화자는 내가 나서서 이야기를 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어느 날, 다시 한 번 치킨을 시켜 먹게 되었다. 그녀는 또 재빠르게 닭다리를 낡아챘고 화가난 화자는 결국 그녀를 밖으로 불러내 얘기를 했단다.
'너 왜 자꾸 너만 닭다리 골라 먹는 거야? 좀 너무 하지 않니? 이건 치킨을 대하는 모두에게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네?.... 전 사실 퍽퍽살을 좋아한단 말이에요! 으아아아아앙.'
사실 그녀가 사랑하는 건 가슴살인데,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가슴살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매번 좋아하는 걸 포기하고 남들이 싫어하는 닭다리를 집어 먹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나 하나 희생해서 남에게 양보해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그녀는 그날 엄청나게 울었다고 한다. 즉, 그녀나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이나 서로 소통 없는 일방적인 배려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가게 정기 휴일로 쉬어야하는 엄마가 새벽같이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아침부터 일찍 나갔다 와야하는데 아빠한테 부탁해서 멀지 않은 곳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할 거라는 얘기가 떠올랐다. 그럼 아빠도 곧 움직이시겠지라는 생각에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깜빡 잠이 들었다 깼는데 엄마가 신발을 신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잠결에 들어보니 신발 신는 소리가 둘이 아니고 하나인 것 같았다. 순간 잠이 깨 문을 열었더니 살짝 짜증 섞인 한숨으로 엄마가 버스 걱정을 하는 혼잣말이 들렸다.
"엄마, 기다려. 내가 데려다 줄게."
"응? 너 일어났어? 아니야 됐어 버스 있을 거야."
"아유 됐어. 기다려 봐."
깜깜한 겨울 아침을 뚫고 엄마를 데려다 드린 후 혼자 돌아오는 길에 생각났다. 맞다. 그 닭다리 일화의 제목이 '대화 없는 배려'였지.
그냥 나 깨웠으면 좋을텐데. 밤새 지 해 보고 싶은 거 해 본다고 새벽까지 안 자는 날 깨우기엔 미안해서 배려하려던 엄마의 행동은 고맙지만, 되려 내 마음이 아주 불편해질 뻔했다.(사실 잠을 깨울만큼 다 들리게 투덜거리시긴 했다.)
아련하면서도 웃픈 이 일화는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이 일화에는 배려 속에 가장 중요한 대화와 소통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 생각이 이러니 너도 그렇겠지. 말 하지 않아도 다 알아라는 식의 태도. 진지하게 대화하고 어깨를 부딪히고 같이 생각을 나누며 서로 다른 점과 같은 점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한 적이 있냐는 거다. 이런 귀찮고 힘든 과정 없이 내 입장에서 생각해 남을 배려하는 건, 이기심과 무관심의 또 다른 얼굴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상대방을 생각해서 한 일인데, 오히려 그 일이 상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비춰질 수 있다. 나도 이런데, 너는 어떻겠느냐라는 식의 생각이 아이러니하게 독이 되는 것이다. 대화 없는 배려는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이기심와 지엽적인 사고의 출발이다.
배려란 좋아하는 걸 해 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란 말도 있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를 외치는 것도 좋지만 때론 '말해 주지 않을래?'를 외쳐야하는 순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