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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이 Jul 05. 2019

여행 에세이를 쓰는 이유

태어나서 처음으로 책을 썼습니다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 친구들의 생생한 여행기를 담은 예능 프로그램을 자주 보곤 합니다.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국적인 풍경을 적극적으로 마주하는 그들을 보며 많은 것을 배웁니다. 성숙한 그들의 여행 태도나 개선되어야 할 한국 관광 사회의 문제점, 어깨를 으쓱할 만한 우리의 멋진 명소와 외국인을 향한 부족한 배려까지, 다양한 면모가 낱낱이 드러납니다.


어느 에피소드에서 호주 가족이 등장했습니다. 호주를 떠나 서울에서 지내는 아들을 만나러 아빠와 두 자매가 한국을 처음 방문했습니다. 이때 보았던 한 장면이 매우 인상이 깊어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서울의 여름. 아들의 아빠가 청계천을 따라 홀로 걷습니다. 흐르는 강물, 우거진 녹음, 그늘에 앉아 쉬는 사람들. 여유로운 여름 풍경을 눈에 담은 아빠가 천천히 걸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곳을 쭉 걸으며 네가 여길 걸었을 때를 상상해본다고. 너의 청계천 경험은 어땠을지 궁금하다고요. 제게는 이 두 마디가 이렇게 들렸습니다. 네가 이곳에 언제 왔을지,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누구와 왔을지, 그리고 그때의 네게 비친 이곳의 풍경은 어땠을까 궁금하다고 말이죠.


스튜디오에서 영상을 보던 아들뿐 아니라 시청자의 마음까지 뭉클하게 만든 장면이었습니다. 가슴 따뜻한 장면을 따라 아빠의 편안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흘러들어 옵니다. 이 장면이 제게는 꽤 강렬했습니다. 아들을 향한 아빠의 사랑이 느껴져 코끝이 찡한 동시에, '이런 여행'을 하는 일이 많아진다면 단조로운 일상이 새로운 재미로 가득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런던 여행을 다녀온 지 정확히 한 달 되는 날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에세이를 쓰는 건 좋아해도 '여행 에세이'를 쓴다거나 읽는 일은 적었습니다. 블로그에 여행 관련 포스팅을 꾸준히 해 오고는 있었지만 무엇을 했고 먹었는지에 대한 사실 나열이지 생각과 감정에 초점을 맞춘 글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여행 에세이 출간 작업은 글 쓰는 것 좋아하고 여행을 사랑하는 제게도 무척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해 본 적은 없었으니까요. 밤에 작업을 하는 제게 낮은 휴식과 재충전을 의미합니다. 그 시간을 할애해서 어느 날은 카페에, 방에,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계속 쓰고 고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 안에 존재하는 글쓰기를 향한 열심을 보았고, 그와 반대로 자꾸만 드러나는 실력의 민낯 또한 보았습니다. 이걸 기록함으로써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뭘까, 이 책을 읽는 누군가가 이곳에서 찾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를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이런 여행'이란 뭘까. 제가 본 장면에 의하면 누군가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기억하는 것이겠지요. 옛 선조가 살았다던 생가를 방문하거나 역사적 장소에 들러 당시 상황을 상상해볼 수도 있고, 나보다 먼저 그곳에 가본 사람의 여행 수기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나와 비슷한 상황에 여행을 떠난 이의 이야기라면 더욱 와닿겠지요. 호주인 아빠의 청계천 산책을 목격한 저는, 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나올 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조금 더 풍성한 여행을 선물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출간을 기다렸습니다. 내가 곧 여행할 어느 장소에서 그 사람이 마주했을 풍경과 감정을, 실제로 그곳을 방문했을 때 떠올려 본다면, 그저 스쳐 지나갈 법한 어느 거리에서조차 멋진 추억이 탄생하지 않을까하고요.


<런던에서 보낸 일주일>은 오로지 저만 느낄 수 있었던 이야기를 열심히 눌러 담은 책입니다. 여행을 가면 동행들을 참 많이 만나지요. 저와 어떤 이유에서든지 잠시나마 동행이 된 당신이 런던의 어느 작은 골목에서 애프터눈 티를, 혹은 피시앤칩스를 함께 먹으며 대화한다고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어준다면 고맙겠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헤어졌을 때, 당신은 저의 이야기를 발판 삼아 유명한 베이커리 가게에 들러볼 수도 있고 타워 브리지를 방문했을 때 문득 저와 나눈 대화를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일정이 맞지 않아 다른 길을 갈 수도 있겠지요. 공감한다고 해서 반드시 같은 길을 가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상상하면서 나의 여행을 보다 더 즐겁게 하는 일. 이것이 제가 여행 에세이를 쓴 이유이자 앞으로도 쓰고 읽으려는 이유입니다.


양가감정이 있습니다. '저'라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드러난 글이기도 해서 조심스럽기도 하고, 어린 서른 꼬마의 일기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더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끓어오르며, 인생 버킷리스트였던 '내 책 내기'를 해볼 수 있어 기쁩니다. 이 책을 통해 패션 번역과 런던 풍경, 혼자 여행의 이야기를 조화롭게 아우르려 노력했습니다.



여행은 일상을 살아내도록 힘을 주는 행위라 생각합니다. 다녀와서도 일상을 잘 지내야 여행도 잘하고 온 거라는 나름의 신념을 앞으로도 밀어붙이려 합니다.



일상에서 느낀 요즘의 생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블제이 스튜디오 https://blog.naver.com/kk646

프리랜서의 일상 @yeonbly_iam



https://book.naver.com/bookdb/price.nhn?bid=15074262#ebook_price


발매 당일 예스 24 ebook 건강·취미 분야 112위였던 책이 28위가 되었습니다.

리디/교보/예스24/알라딘 등 ebook 웹사이트에서 구매 가능합니다. :)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식 같은 내 첫 책. 그런데 이 책을 보니 또 떠나고 싶습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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