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집 앞 잡화점에 들렀다. 정말 사야 할 물건이 있었다. 꼭 필요한 물건을 골랐으니 계산대로 가야 할 텐데 발걸음은 습관처럼 다른 곳을 향한다. 후텁지근한 날씨 탓에 쾌적한 에어컨 공기를 더 맛보고 싶었던 듯하다. 천천히 내부 진열 상품을 보던 중 예쁜 액자가 모여 있는 코너 앞에 멈췄다. 새집 인테리어를 고민하고 있던 터라 새하얀 벽에 심플한 액자 하나 걸어둘까 싶었다. 깔끔한 일러스트에 영어 문구가 적혀 있는 액자였는데 문장 구조가 단순하면서도 마음에 큰 울림이 있었다. 좋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한 아름 바구니에 넣었다가 요즘 실천 중인 하우스 디톡스를 위해 내려놓았다. 그럼에도 최근에 마주했던 여러 장면과 가장 연관 있는 문구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지금까지도 생각이 나서 다음번에 들른다면 정말로 사 올 계획이다. 그날 그 문구는 내게 행복을 선택하라(Choose Happy)고 말했다.
최근 읽고 있는 책 중에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하는 책이 있다. 사둔 지 오래되었으나 좀처럼 읽고 있지 못한 책이었는데 죽음을 생각할 용기를 내어 책장을 넘겼다.(여담을 섞자면 작가와의 유머 코드가 잘 맞는지 죽음은커녕 낄낄거리느라 바쁘다) 책을 넘긴 지 얼마 안 되어 이 책은 내게 행복에 관한 사유를 권했고, 잡화점에서 만난 영어 문구를 또다시 떠올리게 했다. 신은 말귀를 못 알아듣는 인간을 위해 알아들을 때까지 여러 사람을 보내고 다양한 상황을 만들어 그 생각과 뜻을 알아채도록 돕는다던데, 이 순간이 바로 그때가 아닌가 싶더라.
행복의 계획은 실로 얼마나 인간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주는가. 우리가 행복이라는 말을 통해 의미하는 것은 대개 잠시의 쾌감에 가까운 것. 행복이란, 온천물에 들어간 후 10초 같은 것. 그러한 느낌은 오래 지속될 수 없기에...(중략)... 따라서 나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이를테면 '왜 만화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는 거지'라고 근심하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서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중에서
우리는 행복을 찾고, 행복을 목표로 한다. 한때 새해 계획에 '행복하기'를 적어 넣은 적도 있다. 가끔 부모님은 우리 가족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자 그렇다면 무엇을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온천물에 들어간 후 10초가 행복한 순간이라면, 1일은 24시간, 24시간은 1440분, 1440분은 86400초라는데, 이 10초의 쾌감을 8640번 반복해야 하루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 다양화를 시도해보자. 먹고 싶은 음식을 입에 한가득 베어 물었을 때, 인스타그래머블한 풍경을 보았을 때, 고가의 무언가를 샀거나 반대로 그러한 것을 받았을 때, 기분 좋은 한마디를 들었을 때, 비행기 티켓을 결제했을 때, 서비스 업그레이드를 받았을 때 등을 끊이지 않게 10초마다 반복하면 된다. 그래도 다행이다. 행복의 계획을 다양하게 세울 수 있어서 지루할 틈은 없겠다. 그런데 우리의 하루는 행복을 보장받겠지만, 어째 좀 피곤하다.
누군가는 죽어서 살 수 없는 오늘을 살아가는 건 행복이라 규정되지 않을 때가 많다. 당연하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니까. 눈을 뜨면 어제와 같은 풍경이, 같은 사람이, 같은 시간이 있다. 오늘을 살겠다며 카르페디엠을 외쳐도 오래가지 못한다. 문제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다가 어느 날 내일이 없을 수도 있다는 선고를 받으면 충격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그러나 잘 알고 있다. 아침마다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 어려우며, 그래서 헤어나오지 못할 충격에 빠진 누군가의 아픔이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크기라는 것을. 행복을 위해 매일을 열심히 살았던 그 사람에게 주어진 결과가 죽음이라는 사실이 개탄스럽지만 다시금 찬찬히 생각해본다. 우리는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이 결정되어 있다. 안 죽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해본다. 어차피 죽을 운명에 처한 우리는 무엇을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
그날은 약속이 있어 대형마트 근처에 갔다가 엄마의 심부름으로 조미료를 사러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사 오라는 물건을 골랐으니 계산대로 향해야 할 텐데 발걸음은 이미 달콤한 과자 코너로 가고 있었다. 마땅히 먹고 싶은 게 없어서 발길을 돌리려던 찰나 꼬마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친 아이는 이내 초콜릿 봉지를 품 안에 꼭 안고 엄마를 향해 가장 다정하고 순진한 눈웃음을 지었다. 몇천 원짜리 초콜릿 봉지 하나로 아이는 세상을 다 가졌다고 말하고 있었다. 엄마와 이모로 보이는 아주머니 두 분이 애 웃는 것 좀 보라며 깔깔댔다. 이 세상의 행복을 거머쥔 자가 바로 내 앞에 있었다.
역시 행복은 선택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선택'순'으로 빨리 행복해질 수 있는 거라면, 늦기 전에 줄을 서는 게 좋지 않으려나.
일상에서 느낀 요즘의 생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블제이 스튜디오 https://blog.naver.com/kk646
프리랜서의 일상 @yeonbly_iam
저서 <런던에서 보낸 일주일> http://www.yes24.com/Product/Goods/75235405?Acode=101
Side Note:
재밌는 책을 읽을 때, 지쳐 있던 순간 예상치 못한 과자 선물을 받았을 때, 시원한 바람 맞으며 TV와 소떡을 즐길 때, 눈을 뜨니 창밖으로 하늘 풍경이 펼쳐졌을 때, 아수라장이던 방을 예쁘게 정리했을 때, 쪽파가 없어 부추를 올린 핸드메이드 초밥을 먹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