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솔직하기가 어렵다
시간이 지날수록 티 내지 않는 행위에 익숙해지는 자신을 본다. 말하고 싶어도 참고 드러내고 싶어도 가린다. 예를 들면 진행하던 일이 잘 풀릴 것 같아 친한 사람들에게 신나게 터놓고 싶어도 우선 입을 다문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면접을 통과할 것 같은 기분 좋은 설렘이 있어도, 미래를 꿈꾸며 혼자 생각해 본 앞으로의 계획도 함부로 얘기하지 않는다. 함구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입 밖으로 누설한 이야기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민망하기 때문이거나 말한 사람의 의지와 달리 이야기가 널리 퍼지는 것이 싫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혹자는 이야기의 흐름을 타고 이러이러한 것을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가 아차 싶어 나중에 내게 문자로 부탁한다. 아직 확실한 게 아니니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던가 너만 알았으면 한다고 은밀히 의뢰한다. 뭐가 그렇게까지 숨길 일이고 어느 부분이 간청을 할 정도로 두려운 것인지 이해가 안 되다가도 한편으론 공감이 되어 결국엔 나도 입을 다물고 만다.
이 세상에 참으로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많아서, 우리는 속상하다. 그래서 기대감을 삭히는 연습을 한다. 너무 기대하면 실망하니까,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신나고 기쁜 일마저 입을 다무는 마당에 슬프고 속상한 일은 더더욱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아마,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려서 내 마음이 이랬다고 말하는 과정 중에 누군가의 오해를 산 경험이 많아서 일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 했다면 좋았을 텐데라던가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봤어야 한다라던가,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 나름의 방식으로 건넨 위로에 더 큰 상처를 입고 아예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적이 여러 번이기에, 지금의 속상함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작은 믿음 하나 붙잡고 하루하루를 쓰디쓰게 삼켜 왔던 듯하다. 스스로가 못나 보이기도 하고.
나이가 들면서 씁쓸한 현실을 더욱 자주 마주해서 그런지, 일상 속 감정까지 삭히는 데 익숙해져 있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고 외롭기 짝이 없다. 우리는 어째서 말하지 못하나. 누가 입을 다물게 만든 것인가. 최근 다시 감상 중인 오래된 미국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던데 말이다. 극 중 20대 후반인 남녀들은 새로운 사랑을 향한 기대감과 설렘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고 이혼한 부모님을 향한 속상함을 그대로 쏟아낸다. 웃고, 울고. 단순하다. 기대했다가 상처받은 마음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남은 오늘과 다가오는 내일을 맞이한다. 라이프스타일을 향해 무엇이 옳고 그르다 할 수는 없지만, 갈수록 간단하게 살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 '겁쟁이 지름길'을 향해 가는 듯하다. 그리고 대개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기 일쑤다.
외롭다고 말해서 무엇이 달라지나.
좋아해달라고 말해서 무엇이 달라지나.
가슴이 아프다고 말해서 무엇이 달라지나.
외롭다고 말하면 좀 어때서.
좋아해달라고 말하면 좀 어때서.
가슴이 아프다고 말하면 뭐가 좀 어때서.
조금만 더 솔직해지면 될 것을. 참으로 별거 아닌 삶을, 별거 같이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일상에서 느낀 요즘의 생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블제이 스튜디오 https://blog.naver.com/kk646
프리랜서의 일상 @yeonbly_iam
저서 <런던에서 보낸 일주일> http://www.yes24.com/Product/Goods/75235405?Acode=101
Side note:
최근에 지인들을 만나 밥을 먹을 때, 조금 신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더니 근 4-5년 중에 이렇게 즐거워 보이는 것은 오랜만이란 얘길 들었습니다. 무언가 이루어질 것 같다가 문턱에서 좌절한 기억이 한두 번만 생겨도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함부로 말하지 않는 습관이 생기는 듯합니다. 내일 일은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이 맞지만, 소망마저 버리는 것은 안 될 텐데 말이죠. 제가 일하는 업계가 워낙 일이 있다가도 없어지는 일이 빈번해서 무기력에 무뎌지는 때가 많은 것 같아요.
며칠 전 집 근처에서 교통 사고가 났습니다. 원인은 부부 싸움이랍니다.
더위 조심하세요. 무의식적으로 내뱉어지는 뾰족한 말이지만, 의식적으로 한 번 더 사포질 하는 습관을 가져봐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