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쓴 김영민 교수는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숙이 "너 언제 취직할 거니?"라고 물으면, "곧 하겠죠, 뭐"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당숙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추석 때라서 일부러 물어보는 거란다"라고 하거든,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엄마가 "너 대체 결혼할 거니 말 거니?"라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거기에 대해 "얘가 미쳤나?"라고 말하면, "제정신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생략)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중에서
아이스커피를 쪽쪽 빨아 마시며 이 글을 읽다가 이내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작은 카페 안에 손님은 나뿐이라 미친 것으로 오해받을까 두려웠지만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대체 추석이란 무엇이기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실을 드러내도록 강요받아야 하는가? 당사자마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불안한 미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소리를 들어도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취직이 늦어지면 결함이 있는 사람인가? 결혼은 그렇다 쳐도 연애도 안 해서 걱정이 된다는 말을 들어도 좋은 날인가? 누가 그래도 된다고 하던가?
추석이란 순우리말로 한가위라고 부르며, 8월 중에서도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고 배웠다. 한자로는 추석(秋夕). 가을 추에 저녁 석자를 써서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 즉 달이 유난히 밝고 좋은 명절이라고 사전에서 정의한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도 있다는데, 어르신들의 말을 따라 정말로 더도 말고 덜도 말았더니 둘러앉은 밥상머리에서 자꾸만 심판대에 세워진다. 얼른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입꼬리를 바짝 올려 웃고만 있다 보면 순서가 조금 더 빨리 지나가기도 한다. 추석을 맞아 방문하는 일도 문제다. 너네 집이 먼저냐 우리 집이 먼저냐로 다투기도 하고, 그러는 동시에 언제 내 집에 가서 쉴 수 있을까를 머릿속으로 계산해보기도 하고. 게다가 빨리 일어나야 애는 언제 낳을 거냐는 질문도 피할 수 있다. 저번 명절에는 애가 아파서 못 내려가겠다고 말한 형님네 덕에 내가 전 다 부치고 송편도 다 빚었는데, 이번에는 과연 올까, 오면 삐죽거리지 말고 인사 잘해야 할 텐데 하는 은근한 마음 소일거리도 생겨난다. 방송국에서 추석 특집으로 편성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로 시월드 폭로와 고부 갈등 다큐멘터리가 빠지지 않는다. 대체 추석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일 년의 한가운데까지 무탈하게 살아 온 지금을 감사하며, 남은 시간도 이제까지처럼 잘 살아보자고 서로를 위로하는 자리가 아니던가.
유난히 만월을 좋아해서 창밖으로 달을 자주 바라보는데, 둥글고 밝은 보름달은 볼 수 있는 걸까.
세월이 변하고 나이를 들면서 명절의 의미도 달라지기 마련이라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아도 되는 내 추석. 그리운 내 추석은 어디로 갔나.
나는 아프지 않고 건강하며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중인데,
결국 '좋은 소식'이 없어 이번 추석에도 죄인인 것인가.
<추석이란 무엇인가> 전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09211922005
일상에서 느낀 요즘의 생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블제이 스튜디오 https://blog.naver.com/kk646
프리랜서의 일상 @yeonbly_iam
저서 <런던에서 보낸 일주일> http://www.yes24.com/Product/Goods/75235405?Acode=101
Side note:
아는 동생과 만나 커피를 마셨습니다. 최근 자신이 느꼈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가 '네가 연애를 안 해서 그렇다'는 판결을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동생은 '문제 있는 사람'이 됐습니다. 연애를 통해 동생이 얻게 될 감정적인 서포트가 분명 존재하겠지만, 좀 더 확실한 것은, 그 동생은 다시는 그들에게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동생이 무슨 이야기를 터놓았는지 저는 정확히 모릅니다.
연애를 하든 안 하든,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취직을 했든 안 했든, 애를 낳았든 안 낳았든, 내 집 하나 있든 없든, 우리 애 성적이 3등급이든 5등급이든, 이번 추석에는 상처 받지 말아요. 여러분의 상처 받지 않는 추석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