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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이 Aug 30. 2019

뜨거웠던 여름이 물러가듯이

그렇게 지나간다


제법 선선해진 바람을 느끼며 생각한다. 결국 지나간다고.



혼이 쏙 빠지게 후텁지근했던 공기가 서늘한 칼날처럼 예리해진 순간,

흘러가는 시간 속에 무기력했던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되고

절대로 저물 것 같지 않던 뜨거운 태양이 어제보다 빠르게 노을로 바뀌는 순간,

하루 끝이 다가오도록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악을 질렀나 돌아보게 되고

에어컨 아래 거실을 점령하던 가족들이 각자의 방으로 문을 닫고 들어가는 순간,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있는가를 짐작하게 된다.



버티라는 말 대신 순리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이 가장 속 편할 것이라고, 조언을 바라는 누군가에게 말하곤 한다. 조언이라는 걸 나서서 하고 싶지는 않지만 상대방이 그것을 원하는 눈치일 때는 조심스럽게 건넨다. 어느 하루는 '시간이 해결해줄 거야'라는 말로, 어느 하루는 비틀즈의 <Let it be>를 감상하며, 어느 하루는 <지친 하루>의 가사를 적어 내려가며, 어느 하루는 과거의 나를 추억하며 오늘을 견딘단다. 그때의 나는 내가 이렇게 성장할 줄은 몰랐으니까, 지금의 나도 앞으로의 내가 얼마나 더 멋지게 자라날지 모르는 거라고 스스로를 토닥여야 불만족스러운 이 상황을 여유롭게 넘길 수 있단다, 라고. 내가 너보다 조금 더 나아서가 아니라, 조금 더 먼저 한 훈련의 결과란다, 라고.



그런데 이 조언 속에는 사람은 순리를 거스를 힘이 없다는 걸 인정하라는 모순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나는야 그저 흘러가는 존재. 나의 노력과 열심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마주했다면, 온몸에 힘을 빼고 파도에 몸을 맡기는 것도 좋은 방책이다. 고유의 리듬에 맞춰 두둥실 흘러가는 물결을 타고 도착한 그곳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혹은 알고 있었지만 깨닫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뜨거웠던 여름이 물러가듯이, 그렇게 지나간다.




일상에서 느낀 요즘의 생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블제이 스튜디오 https://blog.naver.com/kk646

프리랜서의 일상 @yeonbly_iam

저서 <런던에서 보낸 일주일> http://www.yes24.com/Product/Goods/75235405?Acode=101



벌써 8월의 마지막 금요일입니다. 우리 9월도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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