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강연회에서 있었던 일

내가 프리랜서가 된 이유

by 정재이

한 해의 마무리를 앞둔 12월 30일, 어느덧 7년째 알고 지내는 전 직장 동료의 권유를 받아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진로 강연을 하게 되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업계 현황은 물론 개인적인 이야기도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라 함은 원래 하고 있던 일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향하게 된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구체적인 주문이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강연회가 진행되는 날은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기 이틀 전인 데다가, 이 시기는 10대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학생들이 가장 불안함과 스트레스를 면밀히 느끼는 때이기도 하다. 돌이킬 수 없는 성적, 다가오는 수능, 이미 시작된 내신 상담, 손에 들린 수시 지원 가능 대학 목록, 여기에 아직 뭐가 되고 싶은지 몰라 방황하는 마음이 곁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하고 약 한 달이란 시간을 보냈다. 불규칙적인 마감 일정 때문에 힘들었지만 최선을 다해 강연 준비를 했고, 당일 오후 학생들 앞에 서서 두근거리는 가슴 안고 강연을 시작했다. 직접 만든 영상 시청과 함께 아이스 브레이크 시간을 가졌고 이후 준비해 온 번역가 관련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면서 초롱초롱한 눈빛과 심드렁한 눈빛과 졸린 눈빛과 쑥스러운 눈빛을 마주했다. 전반적인 내용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자 진로를 바꾸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할 때가 다가왔다. 진심의 무게가 느껴지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학교에서 생활하는 교사였습니다. 특히 매일 영단어 시험을 봐서 여러분을 괴롭혔죠. 투정 같은 불만을 잔뜩 들으면서도 성적이 올랐다고 찾아오는 걸 보면 뿌듯했습니다. 더 재밌고 즐겁게 알려줄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며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는데요, 점차 똑같은 일상에 젖어들수록 기뻐하지 못하고 불평만 늘어놓는 제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감사와 긍정이 줄어든 삶에는 짜증이 들어차기 시작했고 정말 이 일이 내가 원하는 일인 걸까 하는 의문도 일곤 했습니다. 혼란스러운 제 마음은 제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어 친절하기 보다 잔소리가 많은 선생님으로 변해 학생들과의 거리는 점점 벌어졌죠. 말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고도 하니까요.

그런데 2014년에 참으로 슬픈 일이 일어났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난 교사와 학생들이 차가운 바닷물에 빠져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사건 발생 당시 저는 안산에 있는 다른 고등학교에 재직 중이었고, 이 사건으로 친한 지인을 잃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제가 사랑하고 또 좋아하는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오랜 시간 지켜봐야 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친구가 사라진 제자들은 패닉에 빠졌고 동료를 잃은 선생님들은 극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여러분은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선생님들은 감정을 추스르고 차분한 모습을 유지하려고 무던히 애썼습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여러분 보호잡니다. 보호자마저 흔들리는 모습을 빈번히 보여선 안 되겠죠. 여러분께는 담담해 보였을지 몰라도 선생님들도 무척 아파하고 많이 우셨습니다. 제가 옆에서 봤고 같이 울었기 때문에 잘 압니다. 그때의 무거운 교무실 공기를 지금도 잊을 수 없네요. 어쨌든,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슬픔이 조금 차분해질 즈음이던 같은 해 9월, 저희 반 아이가 급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고 항암 치료 시작 후 이틀 만에 패혈증으로 사망했습니다. 이미 감사가 사라진 내 모습과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삶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던 저는 다시금 주저 앉아야 했습니다. 열일곱의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뜬 아이의 꿈과, 지금도 이렇게 멀쩡히 하루를 보내는 주제에 즐겁고 감사하게 살지 못하는 제 모습을 비교하니 정말 부끄럽더군요. 거듭된 고민과 혼란에 힘들어 하고, 학생들에게도 사랑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제가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그렇게 어릴 적부터 늘 관심 있게 지켜봐 왔던 번역가라는 직업에 도전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안주하는 삶을 벗어나 새로운 시작으로 스스로를 일깨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사란 직업이 싫어서 버린 것이 아닙니다. 지금이 적절한 시기라고 느꼈고, 이렇게 살아선 안 되며, 이미 매너리즘을 느낀 삶의 범주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해 봐야겠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절대 직종을 바꾼 것에 후회하지 않습니다. 실패하더라도 속 시원하게 해 보고 실패할 망정, 후회는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프리랜서가 되니 참 재밌습니다. 나는 혼자서도 일을 무척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외로움에 사무쳐 슬퍼하는 제 모습을 종종 발견하고, 좋아하던 글쓰기를 통해 전자책 출간 작가라는 타이틀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번역가라는 직함을 달고 여러분 앞에서 강연을 하지만 한 달 뒤엔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어쩌면 몇 년 뒤엔 번역가를 그만두고 회사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죠. 저도 매순간 저를 발견해 나가고 있습니다. 전 지금도 제가 뭐하고 싶은지 모를 때가 많거든요. 물론 특정 학과를 반드시 목표로 해야 하는 순간이 여러분에게 주어져 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또 다른 여정이 있음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단순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최선을 다해 선택한 학과와 대학을 언젠가 뒤집는 일이 생긴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커리어가 변경된다는 사실에 너무 불안해하지 마세요. 진로는 언제든 변경될 수 있습니다. 아, 그런데 이건 여러분이 신중하게 생각하고 고민하여 결정했다는 전제 하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감자탕 집 사장님 어릴 적 꿈이 '감자탕 집 사장'이었단 법이 있나요? 물론 누군가는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주어진 길을 따라 묵묵히 걷다 감자탕 집 사장이라는 지점에 도달했을 겁니다. 돌아서 가야 하는 번거로운 일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돌아갔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강연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문득 '아, 나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가르치는 직업을 거쳐 프리랜서 번역가로 일하는 사람. 더불어 강연을 통해 나는 이러한 사람이라고 선포하면서 이 치열하면서도 좁고 넓은 업계에 은근슬쩍 박아둔 말뚝을 더 세게 밀어넣은 듯한 기분이었다. 다시 말하면 진로 강연회라는 이름을 빌려 더 열심히 살겠다는 선포식을 치른 것 같달까. 긴장 풀린 몸뚱이를 이끌고 뜨끈한 마라탕 한 그릇 흡입한 뒤 집에 들어와 누웠다. 하루 자고 나면 정말로 한해의 마지막 날이 된다. 찰스 핸디가 명명한 대로 최선을 다해 벼룩으로 살겠노라 다짐했다.


https://youtu.be/XrhOA8MoJuA

매일은 아니지만, 아주 바쁠 땐 저러고 지냅니다.



일상에서 느낀 요즘의 생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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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의 일상 @yeonbly_i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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