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자의 사회적 거리두기

by 정재이


'야, 지금이랑 다른 게 뭐냐?'



친한 작가 언니에게 메시지가 왔다. 무슨 말인가 싶어 스마트폰 알림 센터의 목록을 살펴보니 3분 전에 시에서 발송한 재난 문자가 있어 내용을 읽어 봤다. 마주 보고 밥 먹지 않기, 출퇴근 길 외 외출 자제하기, 퇴근 후 약속 잡지 않기, 집안 환기 및 개인위생 철저히 지키기. 아무리 봐도 지금 '우리의' 일상과 다를 게 하나도 없지 않냐는 언니의 말에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보통은 컴퓨터 모니터와 마주 밥을 먹고 지내니 일부러 약속을 잡거나 만나자는 연락이 오지 않는 한 마주 볼 일이 없다. 더불어 나의 경우 매일 저녁에 번역 업무가 있으니 퇴근 시간 후 약속은 잡을 수도 없다. 집안 환기와 개인위생이라도 철저히 지키지 않으면 이 좁은 방구석에서 홀로 병들까 겁이 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쾌적한 개인 환경 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지침을 보며 언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것 같다. 언니와 나는 재택근무자다. 나의 경우 재택근무를 한 지 올해로 3년째로, 쭉 이렇게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새로운 사회 현상에 위화감이나 이질감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일상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 덕에 나는 나와 서로를 지킬 줄 아는 시민이 되었다. 안부 연락이 와서 집에서 지내고 있다고 말했을 뿐인데 사회적 거리두기를 잘 실천하고 있다는 칭찬을 받았다. 갑작스레 무급 휴가를 받아 힘든 친구들 사이에서는 불안정한 재정적 고난을 묵묵히 참고 견뎌내는 성인이 되었으며 나의 재택근무가 부러워 미칠 것만 같았던 지인들 사이에선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사람으로 주목받았다. 얼떨떨하다. 프리랜서이자 재택근무자라는 신분을 밝히면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들었던 말이 '좋겠다'였다. 통과의례 같은 한마디랄까. 편하게 일한다는 저들의 생각 반대편에서 은근한 피해 의식을 가지고 지내왔었기에 이런 대접을 받으니 어리둥절하면서도, 이제야 알겠는가 하는 태도로 거드름을 피우고 싶으면서도, 그들과 달리 나의 물리적 거리두기는 직장에 취직을 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옅은 미소로 적당한 감사 인사를 전한다. 갑작스러운 현상 때문이라 할지라도 재택근무자의 사회적 외로움에 모두가 동참한 것 같아 든든하기도 하지만, 언젠가 이 현장에서 하선하는 무리들을 볼 때 느낄 공허함으로 이미 쓸쓸한 기분인 데다, 재택근무를 하는 프리랜서란 결국 평일 낮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무리들로 추억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랄까(이건 SNS에서의 여러 해시태그를 보고 느꼈던 점이다). 이마저도 피해 의식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굳이 사회적으로 거리를 둘 필요도 없어 보이는 재택근무자에게 생긴 변화가 있다면, 가끔 기분 전환의 장소가 되어 주었던 카페에 나가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진 것, 글이 잘 나오지 않을 때 큰 도움을 주었던 공원 산책조차 눈총을 받을까 자제하게 되는 것, 그나마 나를 바깥세상으로 꺼내어 주던 친구들의 '한번 보자'던 말이 '잠잠해지면 보자'로 바뀐 것, 코로나 19로 인해 업무를 중지한 해외 본사에서 업무 재개 이메일이 오지 않아 수입이 삭감된 것, 비대면 직업 종사자로서 이미 사람들과 가지고 있던 물리적 거리는 물론 먹고사는 유일한 수단인 번역 의뢰 이메일과도 사회적으로 멀어져 버린 것, 'Stay safe and well'이라는 말로 끝을 맺은 해외 거래처의 메일을 읽으며 불안한 마음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견뎌내는 것이 아닐지. 같은 프리랜서들과 평소와 별다를 것 없지 않냐는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아도 재택근무자로서 지내는 나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괴로운 이유는 바로 이 변화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정말로 소소한 삶의 흔적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과 더불어 앞서 언급한 공허함과 아쉬움으로 채워질 미래가 상상되어서 말이다.



내일도 나는 변함없이 아침 9시에 눈을 슬쩍 떠 스마트폰으로 급한 내용만 먼저 확인하고 조금 더 잠을 청할 것이다. 늦잠의 여운에 몸부림치다 10시가 되어서야 책상에 앉고, 오후 1시까지 보내달라는 번역문을 보내주고(의뢰가 있다면), 점심을 먹으러 식탁에 잠깐 갔다가 휴식을 위해 식탁 옆 소파에 앉아 바깥 풍경을 멍하니 바라볼 것이다. 쉬는 시간이 끝나면 다시 책상 앞으로 가서 위기를 뒤엎는 자기 계발이랍시고 잔뜩 사다둔 책들을 펴 책상에서 공부를 하고, 공부가 끝나면 노트북을 열어 글이라도 쓰고 있겠지. 그리고 평온해 보이는 이 일과 속에서도 나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계속될 것이다. 달라지지 않은 듯 조금씩 달라져 버린 하루가 어서 돌아오기를 바라며 보통 때와 닮아 있는 이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낼 것이라 토닥인다. 이 와중에 수다라도 떨자며 페이스 타임을 갖자는 모 번역가의 연락을 받고 이런 생각도 해본다. '거리를 두어야 한대서 멀어졌더니, 오히려 가까워지는 듯한 우리의 거리에 모순이 있어 재밌기도 하다'고.




일상에서 느낀 요즘의 생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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