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의 일상
지혜의 길과 무지의 길이 있다.
두 가지 길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 - 카타 우파니사드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을 만나 사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다들 뱀처럼 지혜롭게 잘 사는데 나만 미련한 곰처럼―관용적으로 썼을 뿐 곰에 대한 개인적 감정은 없다―사는 것 같다는 우울감에 한두 번씩 시달렸다. 사회적으로 번듯한 직장, 마침내 들려온 결혼 소식, 틈새 비집고 시작한 사업의 번창, 고민 끝에 구매한 매물의 집값 상승 등. 나는 평생 이러한 종류의 성공은 따라 해볼 수도 없을 것 같다는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돌아온 날이면 침대에 벌러덩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지금껏 보내온 시간들이 무기력하게 느껴져서, 그리고 나의 지난날들을 쓸모없었다고 순간적으로 치부해 버린 내 자신에게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어서였다.
스물다섯 살에 첫 사회생활을 계약직으로 시작했다. 직장을 타의로 옮겨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존재했으나 계약 기간 동안은 먹고 사는데 걱정이 없었다. 약간의 '지혜'를 더하면 오히려 편히 지낼 수 있는 입장이었을지도. 적당히 일하며 돈을 벌고, 때 되면 짐 꾸려 나와 실업 급여로 수명을 연장하고, 그러다 또 다른 어느 공간에 은근슬쩍 발을 들이밀고,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을 맞이하고. 수반되는 스트레스를 감내하고 스스로 떳떳하다면야 무슨 문제가 있으리오. 하지만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성장해버린 나는 한 번 사는 인생에 후회를 두지 않겠다는 쓸데없는 도전 정신과 내적 안정감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에 결국 그 지혜로운 길을 포기하고 프리랜서로 나섰다.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였기에.
기억 속 어린 시절의 나는 살아가는 데 꽤나 현명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었는데, 한번은 초등학교 입학 전 부모님이 개업한 작은 감자탕집을 홍보하기 위해 색동 한복을 챙겨 입고 동네방네 인사를 전하며 시루떡을 돌린 적이 있다. 맛있게 드시고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기를 바라며 저희 감자탕집도 한 번 와 주십사, 동시에 건강하시라는 영업 멘트도 함께 대접했다. 쬐끄만한 애가 야무지게 한마디 하는 것을 보고 어른들은 꺄르르 즐거워했다. 입을 저렇게 잘 터니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찬사도 받았다. 나는 알아서 살길 잘 찾아가게 생긴 자타공인 지혜로운 아이였다. 그렇다고 해서 틀을 깨는 혁신적인 행동을 벌이거나 여우처럼―역시나 여우에게 나쁜 감정은 없다―교활하게 앞뒤 눈치를 살피며 앞길을 개척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정해진 틀 내에서 은밀한 반칙을 하는 건 즐겼을지 몰라도 틀 밖으로 나가는 것은 무서워했다. 정확히는 틀 안에 잘 머물러 있을 때 주어지는 칭찬과 그에 합당한 지위를 얻으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선을 밟기만 해도 쏟아질 시선들이 두려웠기 때문에 점차 밖으로 나가지 않는 걸 선호했다. 여기에만 잘 머물러 있으면 뭐든 무난하게 마무리할 수 있으니까. 나는 이러한 유형의 지혜와 현명함을 추구하고 싶었다. 주어진 원칙을 잘 지켜 내가 속한 사회에서 올바르다고 여겨지는 형식의 지혜로움. 그렇게만 살아가면 어떤 어려움도 고난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사고는 지혜가 아니라 무지로 비쳐 보일 때가 많았다. 쉬운 방법이 있는데 곧이곧대로 사느라 손해 보는 것 같다는 기분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그래서 어느 부분에서 성공했느냐라고 묻는다면 대답할 게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에 얽매여 살지 않을 거라고 수십 번을 외쳐도, 종종 날아드는 편견과 오해에 지쳐 쓰러지기 일쑤였다. 게다가 더욱 속상한 점은 내가 나 자신을 보는 태도였다. 남들과 다른 패턴의 일상을 보내고 조금 덜 벌어도 지금의 일을 좋아하고 일상을 향한 높은 만족도를 빈번하게 경험한 것에는 변함이 없는데 어째서 지금의 나는 무지의 길을 걷고 있다고 쉽게 침울해져 버리는 걸까. 사는 데 있어 지혜의 길과 무지의 길을 누가 결정한단 말인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라면, 나는 어떠한 기준으로 나의 길이 무지하다고 결정하는 것인가? 무의식적으로 세상이 알려준 기준을 끌어다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조금 더 용기를 냈어야 하는데, 조금 더 다르게 생각했어야 하는데, 조금 더 앞서 나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시간은 흘러 버렸고 나를 둘러싼 일상은 그다지 변한 것이 없으며 통장에 찍히는 액수도 치솟는 법이 없다. 그런데도 소득이 있는 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며 평균 소득의 10% 이상을 가져가는 건강 보험 공단을 보면, 그저 웃프다.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득(所得) 있는 자구나. 오늘의 일용할 양식은 물론,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해 볼 수 있는 젊음과 그것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쥔 사람이구나 싶어서 말이다.
천장을 마주한 채 이런저런 생각에 푹 빠져 있다 보니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날 힘이 생긴다. 지혜의 길이든 무지의 길이든 지금 이 순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서, 결국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며 책상에 앉아 펜을 잡는다. 지난겨울에 음료 쿠폰을 모아 어렵사리 받아낸 카페 다이어리에 이렇게 꾹꾹 눌러 적어 본다. '지금까지 걸어 온 지혜의 길을 무지의 길이라 여기지 말고, 무지로 걸어 온 길이 있다면 지금부터 지혜의 길로 바꿔 나가자. 나에게도 좋은 소식이란 반드시 존재할 것이고, 혹은 이미 존재해 있다. 스스로 그 소식을 '좋은' 소식으로 여겨 타인에게 전할 것인지 말지는 오로지 나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