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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이 Jul 07. 2020

프리랜서의 휴가

그냥 가고 싶을 때 마음대로 가는 거 아니야?

프리랜서는 어떻게 휴가를 갈까. 대답부터 하자면 휴가를 가는 사람도 있고, 안 가는 사람도 있고, 못 가는 사람도 있다. 주변에 프리랜서라고 얘기하면 무조건적으로 원하는 근무일과 시간을 직접 정하고, 고수입을 올리는 동시에 한 달 중 절반 이상을 쉬면서 호화롭게 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프리랜서의 휴가를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다. 글쎄, 대기업 자회사를 물려받은 드라마 속 재벌 3세라면 이렇게 지낼 수 있을까? 일부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내 주변의 프리랜서 몇몇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라 웃프다. 좀 쉴까 했지만 번역 의뢰를 거절하지 못해 휴가를 뒤로 미루기 일쑤고, 힘든 작업을 해 낸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겠다고 화려하고 비싼 숙소를 찾다가도 결국엔 호텔스컴바인이 추천한 최저가 숙소를 선택하곤 하니까.


프리랜서 번역가인 나는 휴가를 직접 '확보'해야 하는 사람이다. 현재 잡혀 있는 작업 일정을 확인하고, 이맘때 작업 의뢰 시기와 양을 예측한 뒤 직접 휴가를 지정한다. 정한 시기에 휴가를 가기 위해 업체 이곳저곳에 양해 및 공지 메일을 발송하고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뒤로 밀리면 내 휴가도 밀리기 때문에 어떻게든 꾸역꾸역 정해둔 양을 번역한다. 이건 휴가뿐만 아니라 개인 일정이 생긴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고 싶은 콘서트를 가려고, 갑자기 내일 친구와 저녁을 먹으려고, 다음 주 국내 여행을 떠나기 위해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내 마음대로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외칠 수 없다. 그럴 수 있는 경우는 마감이 밀리지 않게 미리 작업을 해 둔 경우뿐이다. 친구들과 물놀이를 가고 싶어서 내일 해도 되는 숙제를 눈에 불을 켜고 미리 해 두었던 유년 시절처럼 말이다. 정리하자면, 자유롭게 쉴 때를 정할 순 있지만, 상생하는 협력 업체와 담당자의 사정을 고려하여 내가 원하는 휴가 일정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고, 숙박비가 솟구치는 성수기를 피해 여행을 갈 수 있어도, 내가 쉬는 동안 발현된 고수입 프로젝트의 기회가 다른 번역가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는 것. 이것의 프리랜서의 휴가가 아닐지.


그래도 아무 때나 휴가를 갈 수 있다는 점은 정말 매력적이다. 한창 힘들게 일하고 있을 때 푸른 동해로 떠난 직장인들의 인스타그램 피드가 쏟아질 때면 속이 쓰리긴 하지만 더 길게, 더 한적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로 위로한다. 7월이 다가오면 직장 통근자들은 본인들의 기준에 따라 넌 이번 여름휴가가 언제냐고 묻는다. 직접 정한 휴가가 아니라 회사에서 암묵적으로 지시한 휴가 선택 기간이 언제냐고 묻는 것이다. 나는 매번 똑같이 대답한다. 스스로 정하기 때문에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실제로 그렇다. 현재는 코로나 19 사태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 있지만, 지금까지 나는 여름휴가를 딱히 간 적이 없다. 7말 8초로 몰리는 휴가 시즌을 따라 덥고 끈적이는 여름날―나는 더위를 많이 탄다―에 사람 많은 곳을 거닐고 싶은 마음이 없으며, 바가지요금을 피하려 눈에 불을 켜고 맛집 리뷰와 사진을 뒤지는 일도 하고 싶지 않다. 거리에 쌓인 플라스틱 음료 컵, 맛보다는 기분으로 비싸게 사 먹는 시장 음식, 악취. 여름휴가는 내게 그런 이미지였기에 나는 주로 봄, 가을, 혹은 1월 즈음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훨씬 느긋한 쉼이 가능하다고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번 여름에는 오랜만에 가족끼리 휴가를 다녀왔다. 휴가 이야기를 꺼내시기에 부모님과 나의 일정을 확인해 보니 내가 최종 납기일보다 이틀 먼저 일을 마치면 3일 동안은 맘 편히 쉬고 오면 좋을 것 같았다. 숙소를 예약하고 곧장 담당자에게 휴가 일정을 공유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약 20일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새로운 단기 프로젝트였기에 자료 조사에 시간이 많이 들어 첫 일주일은 하루 10시간 이상 일을 했는데, 정말 단 하루도 쉴 수가 없었다. 여기서 하루를 쉬면 강원도로 가는 차 안에서 일을 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배배 꼬이는 몸과 정신을 달래 가며 납품을 했던 기억이 난다. 불과 2주 전의 일인데 돌이켜 보니 어떻게 해 냈는지 모르겠다.


좀 극적인 예시이지만, 이런 식으로 쉬는 날을 확보하기 위해 쌓여 있는 일을 미리 처리하느라 나와 지인 번역가는 며칠 밤을 새기도 한다. 회사처럼 내가 비운 자리를 메꾸어 줄 동료가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휴가란 그 기간 동안의 수입을 포기하는 일이다. 그래서 느긋하게 마음을 먹어야 한다. 휴가를 막연히 계획하고 있다가도 업체에서 좋은 조건의 작업을 의뢰하면 많은 생각에 빠진다. 돈을 벌까, 쉼을 가질까 하고. 수락해 버리면 수입을 얻는 대신 쉬지 못하게 된다. 많은 프리랜서가 쉼을 우선시할 거라고 말해도 막상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프리랜서에게 휴가란 갖은 고민과 노력의 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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