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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이 Dec 21. 2018

힘들어 죽겠다고 말하지 않게 된 이유

'말' 시리즈 4 - 누군가의 아픔을 쉽게 빗대지 않도록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여섯 남매를 낳아 키우시고 아홉 명이나 되는 손주들을 살뜰하게 챙기셨다. 시골집에 놀러 갈 때마다 다정다감하게 말도 걸어 주시고 재롱도 봐 주시고, 때가 되면 ‘니들 먹으라’며 고구마에 고춧가루에 배추김치에 잔뜩 실어 보내시곤 했다. 다른 사촌들에 비해 가리는 것 하나 없이 이것저것 잘 먹어대던 나도 많이 예뻐해 주셨다. 특히 나는 할머니 표 총각김치를 좋아했다. 어느 집에서 사 먹어도 할머니만큼 총각김치를 맛있게 하는 곳은 없다고 지금도 단언할 정도니까. 입맛 없는 날이 아니어도 흑미밥에 물 말아 총각김치 하나 아삭하게 씹어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손녀에게 할머니는 총각김치 통을 하나 더 챙겨주시기도 했고, 시골에 갈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말랑말랑하고 새하얀 술떡도 준비해주시곤 했다.


우리 할머니만큼 열심히 살고 자기 가족 챙기던 사람도 없었는데, 그런 할머니에게 큰 병이 찾아왔다. 엄마는 어느 날부턴가 방에서 심각한 목소리로 오래도록 삼촌 그리고 이모와 돌아가며 통화를 했다. 그 후 할머니는 병원 내원 때문에 자주 우리 집에 머무시게 됐다. 집 근처에 꽤 큰 대학 병원이 자리하고 있는 데다 비교적 할머니를 보필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 쪽으로 모시자는 결정이 나면서 지리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그나마 나은 우리 집에 오시게 됐다. 하지만 아프신 노모를 모시는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어른들 사이에서 오갔을 많은 이야기에 대해 다 알지는 못하지만, 곁에서 지켜본 문제의 해결 과정은 순탄치 않았고, 여러 사람을 힘들게 했다는 사실만은 기억하고 있다.


그날도 할머니는 병원 진료 때문에 입원해야 했다. 할머니가 입원하신 병원은 당시 내 직장에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데다 개인적인 일로 한동안 할머니를 잘 뵙지 못했기에 그날만큼은 할머니의 말동무가 되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예상보다 퇴근이 늦어져 저녁도 먹지 못한 채 후다닥 병실에 들어가니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엄마와 삼촌도 계셨는데 따로 얘기할 게 있는지 내가 들어오자마자 자리를 비우셨다. 둘만 남은 병실에서 할머니는 살짝 지친 내 모습을 보며 굳이 뭐하러 왔냐고, 일은 안 힘들고 괜찮냐고 물어보셨는데 그 다정한 모습에 괜히 응석을 부리고 싶어졌는지 나도 모르게 이렇게 답해 버렸다.

“아우, 애들은 말도 안 듣고... 일은 많고. 아주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아요.”

일순간 눈이 동그래진 할머니는 금세 허허거리며 웃어 주셨지만 순간의 침묵으로 나는 내가 무슨 말을 뱉은 건지 깨달았다. 죽음을 앞둔 이의 면전에서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말을 꺼냈다.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모른 척 웃어 주는 할머니 앞에서 나도 머리를 긁적이며 모른 척 그냥 웃어 버렸다.


그날부터 ‘힘들다’는 표현의 과장을 ‘힘들어 죽겠다’로 하지 않게 됐다. 그냥 ‘너무’ 힘들다고 한다. 물론 무의식적으로 뱉어 버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의식할 수 있을 땐 죽겠다는 말을 피하고 본다. 이외에도 무심코 뱉은 나의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단어 선택이 더욱 조심스럽다. 또 내가 겪어 보지 못한 아픔이나 일의 무게에 대해 쉽게 정의해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요즘 세상에서 가장 몰상식한 말이라고 여겨지는 표현은 바로 ‘암 걸릴 것 같다’는 말이다. 대체 누가 처음 썼는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저런 말을 뱉을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 아픔의 크기와 무게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지도 못하면서 일이 뜻대로 안 된다고 뭐에 걸릴 것 같다니. 암 환자를 지켜본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된다. 심지어 성인임을 자처하며 장미꽃 받아든 이십 대 청년부터 애가 둘이나 되는 애 엄마도 이런 말을 쓴다. 내가 실제로 마주 앉아 들었다. 진심으로, 제정신인지 궁금했다. 말은, 누군가의 가장 어둡고 예민하고 아픈 부분을 힘껏 들어 올려 나의 상황을 치켜세우는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겪어 보지 않고는 모른다’는 나름의 인생 철학을 세우게 됐다. 내 삶의 무게를 알지 못한 채 가볍게 뱉는 말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사람의 삶의 무게에 대해 쉽게 판단하지 않기 위해서다. 최근 일 처리를 똑바로 못한다며 비난했던 그 자리에 내가 직접 앉아 실무를 진행해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마음이 비로소 이해가 되고 있다. 쉽게 힐난했던 내가 부끄럽고, 그들에게 미안했다. 이래서 말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는 것인가 보다. 타인을 위해 수고했던 그 사람들의 노력을 한마디로 짓밟아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예민했을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나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말의 힘’에 대해 생각한다.


할머니는 항암치료를 시작했었지만 상의 끝에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치료를 포기한 뒤, 어느 날은 소고기뭇국에 김치를, 어느 날은 순대를 맛있게 먹던 할머니가 엄마에게 그랬단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사다 콱콱 씹어 넘기니 살 것 같다고. 당시 번역가가 되고 싶어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지만, 매일 이 나이 먹어 지금 이러는 게 맞는 걸까 고민이 많았다. 생각 많은 손녀에게 할머니는 짧고 굵게 한마디 하셨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의 시선에서 볼 때는 전혀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을 테니까. 그날 할머니는 내게 ‘너 하고 싶은 거 하고, 먹고 싶은 거 먹고 살어’라고 하셨다.


덧붙여 할머니가 아직 계시다면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까 생각해본다. 언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전전긍긍하는 것, 결혼을 안 한 것(아니, 어쩌면 못한 것), 돈을 생각 보다 많이 벌지 못하고 있는 내가 과연 큰 문제라고 하실까. 잘못 살고 있다고 하실까. 아니, 우리 할머니라면 분명 아프지 말고 밥 잘 챙겨 먹으라는 말을 하셨을 거다. 작업 마친 새벽, 침대 위에 대자로 누운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하루는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에 집중, 현재에 감사.’ 아프지 않고, 오늘의 일용할 양식이 있고, 입을 것이 있고 날 사랑해주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존재하는 지금. 충분히 감사한 환경 속에 있으며 꽤 괜찮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나를 토닥여줘도 괜찮지 않을까. 할머니가 보고 싶다. 오늘은 일을 마치고 들어온 엄마에게 반가움의 백허그를 시도해 봐야겠다.


여름 방학이면 수영복 차림에 튜브를 끼고 할머니 댁이 있는 시골 동네 개울가에서 신나게 헤엄치고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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