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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이 Sep 25. 2020

집에서 밥을 해 먹었더니 생긴 일

한 끼를 바꾸자 생긴 내 몸과 마음의 변화

8월 말, 본격적인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내게 본격적인 다이어트란 스스로 먹는 것에 딴지 거는 일을 뜻한다. 그리고 이때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시적으로나마 한층 더 강화된 시기라 미리 잡아둔 외식 약속도 줄줄이 취소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자는 제안을 거절하기가 어려워 여기저기 약속을 잡았더니 작업 스케줄도 꼬이고 외식비가 계획된 지출을 넘어 살짝 곤란했었는데, 차라리 이때 돈도 아낄 겸 체력도 다지고 건강하게 살을 빼면 좋지 않을까 싶어 집에서 직접 밥을 해 먹기로 했다. 책장 어딘가에 꽂혀 있던 다이어트 요리책을 집어 들고 재료를 중복해 사용할 수 있는 요리 몇 가지를 선별해 마트로 향했다.



식료품을 살 땐 칼로리와 나트륨, 단백질 함량이 얼마나 되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지방에 민감하게 구는 대신 탄수화물과 나트륨 함량이 너무 높지 않은가에 초점을 맞췄다. 밥은 찰현미로 모두 바꿨고, 요리책에서는 한 끼에 현미밥 60~70g을 기준으로 다양한 요리를 제시했지만 그렇게 먹었다가는 금방 그만둘 것 같아 100g을 먹기로 했다. 단기간에 살을 훅 빼기보다는 식습관 개선을 원했고 살이 잘 찌지 않는 체형을 만들고 싶었다. 식사 대용으로 먹는 셰이크나 다이어트 보조제는 복용하지 않기로 하고, 하루에 최소 한 끼는 책에서 소개한 요리법을 따라 만들어 먹기로 했다. 그러다 아무래도 골격근량을 늘리고 체지방을 줄이려면 닭가슴살 위주의 식단을 병행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한 끼는 다이어터답게, 나머지 한 끼는 간소한 일반식을 먹기로 했다.



그렇게 한 달 뒤, 1.7kg을 감량하고 신이나 특식으로 햄버거를 먹었다. 달콤하고, 부드럽고, 짭조름한 세상의 맛이었다. 동네 단골 디저트 가게에서 새롭게 출시했다는 까눌레도 두어 개 구매했다. 정말 신기한 게, 소화가 안 되더라. 운동을 다녀오느라 오후 2시에 먹었던 햄버거는 저녁 8시가 다 되어 가도 소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한 입 거리밖에 안 되는 까눌레를 반 입 먹었을 뿐인데 심장이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혈당치가 롤러코스터 타듯 훅 증가한 것이다. 한 달간 단맛은 토마토나 꿀 조금으로, 짠맛은 간장 반 숟갈 정도로 조절해 왔기에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껏 내 몸이 이런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져 있었는가를 직접 마주하니 당황스럽고 놀라웠다. 체력이 붙은 이유도 있겠지만, 먹는 것을 바꾼 이후론 이유 없이 피곤하거나 지치지 않았고, 영문을 알 수 없이 자꾸만 나타나는 SNS 속 먹방 동영상이 들이닥쳐도 마음이 울렁이지 않았다. 맛있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예전처럼 구미가 당기지는 않았다. 아는 맛에 괴로이 몸부림치는 일이 사라진 것이다.



내게 좋은 음식을 먹여 준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니 스스로를 아끼고 돌보는 마음도 생겼다. 세상과 싸우느라 고생한 내게 치킨을 주는 것도 좋지만, 가장 깊고 풍부한 맛을 자랑하는 제철 과일과 채소의 건강한 기운을 나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그렇게 토마토로 스튜를 끓이고, 단호박을 쪄서 수프를 만들고, 양배추로 쌈을 싸 먹고, 우유로는 리코타 치즈를, 무화과로는 잼을 만들어 직접 구운 통밀빵에 얹어 먹었다. SNS에서 '오늘 하루 스트레스받아서 친구랑 신나게 파스타 먹고 2차로 크로플에 아이스크림을 얹어 먹었다'는 글과 행복한 얼굴 사진을 볼 땐 입맛을 다시며 '좋아요 버튼'을 누르기는 하지만 나도 먹고 말겠단 불 같은 열정이나 '저런' 맛있는 걸 보상으로 주고 말겠다는 집착이 생기지 않더라. 건강 관련 사업을 하는 전문가 눈에 내 방식은 여전히 부족하겠고, 비록 몸무게는 더디게 빠지고 있다 해도, 직접 느끼는 작은 신체의 변화가 개운함을, 자신감을, 성취감을 두 배로 부어 주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진 속 남이 먹은 맛있는 음식이 부럽지가 않다. 먹는 것으로도 스스로를 사랑해 주기 시작하니 열등감도 조금은 없어졌나 보다. 예전에는  그게 부러웠을까. 나만 못 먹는 것 같으니 지는 기분이 들어서 그랬을까. 그동안  버거운 감정까지 소화하려 드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 예쁜 옷 입고 좋은 사람과 먹는 것은 또 다른 행복감을 불러일으킬 테니 아직 조금 부럽지만 말이다.



요새는 밥을 챙겨 먹으며 아무것도 안 하고 살진 않았구나 라고도 생각한다. 한 해의 끝을 향해 가는 가을의 중간에서, 이 계절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음식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니, 온전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가을은 24시간 중 어둠이 찾아오기 전에 가장 정열적으로 해가 타오르는 저녁 5시 같다. 그렇게 시간이 저물고 해가 저문다. 올해는 모두에게 잃어버린 해와 같을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옷 몇 벌도 다 입어 보지 못한 채 계절이 끝나간다. 그렇지만 다짐한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고 또 흘러가고 있어도, 지금까지 버텨 온 나의 노력과 나은 일상을 위해 고민했던 순간들을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고. 그냥 집에서 밥 조금 해 먹었을 뿐인데 몸도 마음도 단단해진 기분이다. 진정한 다이어트를 하는 기분이랄까. 저녁으로는 고소한 연어를 구워 스테이크로 먹고, 제일 좋아하는 우엉 두부 볶음밥을 해 먹어야겠다. 다시 다가올 봄을 준비하고자 바지런히 먹을 것을 나르는 콘크리트 위 개미들처럼, 그렇게 오늘도 밥을 먹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헤드 이미지 출처: https://pixabay.com/photos/salad-food-italian-tasty-wooden-2068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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