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말해 줘, 사실을 말해 줘
개인적 취향에 관한 이야기다. 직업 특성상 원하는 시간에 일을 하며 산다. 조금 다르게 말하면, 아무 때나 일을 하며 산다. 다시 구체화하면, 매시간 일을 하며 산다. 계획한 시간에 일을 하려다 늑장 부리기에 성공하는 바람에 자꾸만 다른 시간에 일을 하고 산다. 그래서 정말 단어 뜻 그대로 '매시간' 일을 하며 산다.
주인이 늘 바쁘단 걸 눈치챘는지 스마트폰도 매시간 쉬지 않는다. 각종 광고 알림부터 곧 택배가 도착한다는 안내 문자에 지인들이 보내오는 시시콜콜한 메시지까지 요즘처럼 배터리 닳을 일도 없는데 하루에 1번 이상은 충전을 한다. 아마 틈틈이 SNS를 염탐하고 먹방을 시청하고 뭔가 재밌는 건 없는지 엄지손가락을 바쁘게 놀리는 데 어울려주느라 그랬을 것이다. 그러다가 아주 가끔, 가장 대답하고 싶지 않은 유형의 문자가 오는데, 바로 이름만 불러놓고 내가 답장할 때까지 침묵으로 일관하는 형태의 메시지다.
"승연아." 나는 이렇게 이름만 덩그러니 부르는 메시지가 싫다. 첫째, 쓸데없는 긴장감을 유발한다. 무슨 일이지.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부탁할 게 있나? 혹시 내가 뭘 잘못했나? 그저 화면에 뜬 내 이름을 보았을 뿐인데 온갖 잡생각이 든다. 둘째, 받는 사람이 어떨지 생각하지 않는다. 더불어 내가 너에게 할 말이 있으니 네가 바로 답장을 줄 수 있을 때 대화를 하겠다는 전제가 보인다. 이런 문자를 보내는 사람의 경우 내가 무슨 일이냐고 대답할 때까진 절대 먼저 추가로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다. 내가 언제 답장을 준다는 보장이 없으니―내가 12시간 동안 마감에 매달려 있으면 어쩌려고?―그냥, 누구야. 이러저러해서 이러저러한 상황이 되었어. 이러저러한 사람에게 이러저러한 대답을 들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라고 사정을 남기면 안 되는 걸까? 그렇다면 메시지를 접한 나는 내가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생각할 시간을 벌게 된다. 수락과 거절을 떠나서 이러저러하다는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 게 최고일지를 고민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관련 블로그 포스팅을 찾아다 링크를 공유할 수도 있고, 아는 지인에게 조언을 요청해 더 나은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도 있는데. 게다가 부탁을 하고 싶은 거라면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알려 주어야 부탁을 들어줄 의향도 생기지 않을까. 이러쿵저러쿵 서론을 길게 깔아야 할 정도의 사이라면 부탁 전후로 한두 번 안부 정도는 묻던가. 상대에게 어째서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걸까. 셋째, 첫째 이유와 둘째 이유로 인해 몹시 불쾌하다.
가끔은 이런 메시지가 이메일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어디의 누구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고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는데 참여 가능하신지 궁금합니다. 아래에 진행 일정을 적어 두었으니 확인해 보시고 회신 부탁드립니다. 첨부 파일도 함께 보내드립니다. 의견 들려주시면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꼭 업무 관련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이메일을 쓸 때 안녕하냐는 한 줄만 보내진 않는다. '진짜 안녕하신지 궁금해서 연락드려요'라던가 '안녕하시다면 저와 커피 한잔 어떠세요'라고 연락하는 이유를 밝히게 된다. 하고 싶은 말을 명확하게 전하고 의사를 묻고 답변을 기다린다. 수신 확인 버튼을 여러 번 클릭할지언정 회신을 부탁한다고 말미에 적어 보냈으니 상대에게 충분히 고려할 시간을 주면서 한 말에 책임을 지고 가만히 인내하는데... 이 간단한 소통의 법칙이 참으로 적용되지 않는 세상이다.
다른 듯 비슷한 맥락에서, 한번은 너무 대놓고 원하는 바를 밝힌 메시지를 받은 적도 있었다. 몇 년 전 함께 일했던 사이인데 자기가 받은 이메일의 내용을 잘 모르겠어서 해석을 부탁한다는 갑작스럽고 뜬금 없는 메시지였다. 그는 급하다는 말과 함께 대뜸 장문의 영문 캡처본을 첨부했다. 그의 명확한 메시지 덕분에 21세기 사람들은 다 안다는 AI 번역기를 모르시는 것 같으니 어서 소개해줘야겠다는 판단과 이 사람과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결정을 빠르게 내릴 수 있었다. 자기가 누구인지도 말했고 원하는 바도 밝혔고 친절히 참고 자료까지 보내 줬는데도 아주 무례하다고 느꼈다. 첫째, 급한 것은 그쪽 사정이지 내가 아니다. 둘째, 나는 종이 하나를 내밀면 칼국수 면 뽑듯 그 자리에서 번역을 해 주는 편리한 인간이 아니다. 셋째, 상대를 배려하지 않음이 여실히 드러난 첫째 이유와 둘째 이유로 인해 몹시 불쾌하다.
일상에서 느낀 요즘의 생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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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의 일상 @yeonbly_iam
저서 <런던에서 보낸 일주일> http://www.yes24.com/Product/Goods/75235405?Acode=101
메인 사진 출처 pik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