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이 Oct 05. 2020

연휴란 무엇인가

연휴만 바라던 삶에서 연휴가 자주 없는 삶으로

프리랜서에게 연휴 타령은 새삼스럽다. 조금 더 과장하면 생뚱맞다. 왜냐하면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어차피 연휴란 월요일과 화요일과 수요일 등으로 구성된 것이 아닌가. 프리랜서에게 어느 날은 연휴이기 전에 그냥 월요일이고 마감일이다. 물론 이런 생각엔 개인차가 있다. 다른 프리랜서가 연휴 타령을 해서 나무라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무척이나 사적인 연휴에 관한 단상이다. 



프리랜서의 연휴 타령이 새퉁맞다고 생각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연속으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직장인 시절, '연휴인데도 마감하느라 바쁘다'는 말을 멋있게 여겼기에 그 멋짐을 고수하고 싶다. 왜인지 철없게 느껴지는 이것이 첫 번째 이유. 휴일이 여러 날인데도 감액 없이 정확하게 월급이 나오고 명절 보너스도 받는 회사 소속인들에 비해 나는 받는 게 덜하다. 쉬면 쉬는 대로 수입이 없다. 그래서 연휴 동안 작업이 가능하면 회신 달라는 이메일에 망설임 없이 '매우 그렇다'를 적어 보낸다. 통장 쥔 손에서 짠 내가 나는 이것이 두 번째 이유. 프리랜서이기에 다른 날 쉬어도 괜찮으니 빨간 날에 일을 하게 된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휴일을 쉽게 내어주다 보니 내가 제대로 쉬고 있긴 한 건지 가늠이 안 될 때가 있다. 프리랜서는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으나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것이 세 번째 이유다.



한때 주말에 왜 일을 하느냐, 추석엔 어디 안 가느냐, 설에는 뭘 할 예정이냐는 말이 자기중심적이고 폭력적이라고 느꼈다. '빨간 날에도 노트북 들고 일하러 다니는 나는야 멋진 프리랜서'의 모습을 유지하고 싶은데, 주말과 명절이란 안전한 울타리 밖으로 이렇게까지 내던져질 줄은 몰랐고, 더불어 번역으로 돈 버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업계에 뛰어들고 나서야 알아서, 이런 사정을 어디에도 털어놓기가 어려워져 주변에서 쏟아내는 호기심 어린 질문이 짜증스러웠다. 본인들이야 맘 편히 본가에 가서 잡채 집어 먹고 갈비찜 뜯어 먹고 할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느린 번역 속도와 쏟아지는 피드백에 정신 못 차리던 병아리 번역가는 불안함에 속을 삭힐 수밖에 없었으니까. 새해 달력을 받으면 공휴일이 언젠지, 무슨 요일인지, 몇 박 여행을 갈 수 있는지부터 확인하던 직장인에서 5월 5일은 마감일, 10월 3일도 마감일인 것만 기억하는 프리랜서가 된 것은 오로지 내 선택이었으니 그 누구도 탓할 수 없었다. 아마 누구도 탓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속이 상했던 것 같다. 이럴 줄은 몰랐으니까 말이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내가 퇴사만 하면 무조건 잘 나갈 줄 알았는데, 단단히 대비를 했다 해도 생각보다 거친 레드 오션이 내리치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르니, 당연한 마음의 결과를 얻었던 걸지도.



그럼에도 유난히 북적이는 마트, 양손에 보자기를 들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연휴 맞이 세일을 진행하는 근처 가게들, 조금 들뜬 듯한 거리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런 연휴 고유의 분위기가 메마른 프리랜서들의 마감밭을 은근하게 적신다. 울렁울렁, 싱숭생숭해진다. 괜찮다고 생각해도 남들처럼 송편 하나 입에 털어 넣으며 소파에 누워 실컷 드라마나 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렇기에 연휴에 쉬지도 못한다고 한탄하는 프리랜서를 보면 생뚱맞다고 느끼면서도 격한 동질감을 느낀다. 국민들 보실 연휴 특집 영화에 한글 자막 만드느라, 웹툰과 웹소설 연참 이벤트 일정을 맞춰야 하기에 밤 지새우느라, 직구 사이트의 신상품 업데이트는 멈추지 않기에 상품 상세 정보를 작성하느라 바쁜 동료 번역가들을 보면 안쓰럽고 안쓰럽다. 연휴 동안 이루어지는 손쉬운 시청과 클릭 뒤에 내 동료들이 숨어 있다. 연휴가 대체 뭐길래 이러나. 빨간 날을 잘 버티는 것도 프리랜서의 숙명이라 생각한다. 보장받지 못하는 연휴 속에서 꿋꿋이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자들과 함께 우리는 쉬지도 못하고 이게 뭐냐며 한탄을 했다면, 이제는 내가 함께하고 있으니 우울해하지 말고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더라. 



공원 나들이 즐기는 가족 방문객 속에서 친한 스토리 작가와 편의점 컵라면을 퍼먹은 뒤, 각자 마감을 해야 하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휴에 못 쉬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휴일이라는 것 자체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은 이후의 업무 효율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에 박카스 하나씩 손에 쥐고 헤어졌다. 중간중간 문자로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고 작업 집중에 도움이 되는 유튜브 BGM 링크도 공유하기로 했다. 더불어서 서로를 다이어트 계획으로부터 지켜주기로 했는데 어느 순간 각자가 먹고 있는 간식 사진이 오갔다. 한참을 웃다가 내가 대답했다.


 

이게 연휴지. 우리도 즐깁시다. 먹어요, 먹어.



헤드 이미지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Tteok.jpg

매거진의 이전글 번역은 체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