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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이 Oct 16. 2020

첫 번째 명함을 만들다

작은 종이에 내 이름이 담길 때


내게도 명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절실히 느낀 순간이 있다. 어느 작가의 북토크에 참여했을 때였는데, 그 작가는 강연을 마친 뒤 떠나는 청중을 배웅하려고 출입문 앞에 섰다. 자연스럽게 눈이 마주쳐 잘 들었다고 인사를 건네자 작가는 내게 명함을 내밀며 와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민 손을 거두지 않았는데, 몇 초가 지나서야 그 행동이 내 명함을 달란 뜻이란 걸 깨달았다. 당황한 나는 아직 명함이 없다고 멋쩍게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당연하게 이뤄지는 교환식일지 모르나 나는 지금껏 명함이 굳이 필요 없는 일을 해 왔고 필요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기에 사회인이 되어서도 만든 적이 없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을 할까 한참 고민하고 있던 때여서 섣불리 만들 수도 없었고. 요즘은 SNS가 명함 그 자체고, 또 명함이 굳이 필요한 세상도 아니다. 그런 면에서 멋쩍어할 필요는 없었는데, 당시에는 상대의 제스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 크나큰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이 세상에 속한 나 자신을 규격 용지 하나로 깔끔하게 규정하고 소개하는 것이 굉장히 멋지다고 느꼈다. 그때 생각했다. '아, 나도 명함 가지고 싶다'고.



명함은 별거 아닌 듯하지만 별거다. 제작 전문 업체에 요청을 하면 쉽게 만들어 준다. 내가 할 일은 이름과 번호와 직함을 오타 없이 정확하게 알려 주는 것. 그러면 몇 시간 만에 시안이 탄생하고 최소 이틀이면 배송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 작은 종이 한 조각이 내가 누구인지를 온전히 담고 있는 기분이 들기에, 업체에서 돈만 주면 쉽게 만들어 주겠다 해도 실천에 옮기자니 주춤한다. 번역 일감을 처음 따낸 뒤엔 나도 이제 번역가로 데뷔했으니 명함 만들 명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망설여졌다. 이러다 세 달 뒤에 힘들다고 일을 그만두면 어쩌나, 나는 어떤 번역가인가, 전문 분야는 무엇인가, 조금 더 공부해서 한국어/영어/일본어를 아우르는 번역가라고 하면 더 멋지지 않을까 등등. 무엇보다도 나는 이러한 사람이라며 명함을 내밀만큼 제 몫을 다 하고 있는가가 의문이었다. 나는 1인분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 사람이던가. 아직 이렇게 실수도 많고 번역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도 드는데. 일단 자리를 잡아가면서 조금 더 번역가 다워졌을 때 만들자고, 그래도 3년 정도는 해 보고 그때 가서 내게 선물로 명함을 주자고 다짐했다.



3년이 흘렀다. 자, 이제 나는 번역가 다워졌는가. 3년이 지났는데도 매일 작업 앞에 무릎을 꿇고 마는 나로선 그러한지 잘 모르겠다. 번역을 하고 있으니 번역가가 맞긴 한데 타인에게 스스로를 번역가라 소개할 때 멈칫하게 된다. 번역이 부끄럽거나 자랑스럽지 못한 일이라서가 절대 아니다. 번역을 한다고 말하는 이가 그 일에 걸맞은 사람인가를 찰나에 가늠하지 못해 그러하다. 나는 내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꿈과 사랑도 가지고 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실은 그렇지 않은 인간임이 들통나버리면 어떡하지. 내가 자질이 있다고 스스로를 속여 온 거라면 어쩌지. 막연히 3년 정도 경력을 쌓으면 내게 선물로 명함을 만들어 주자고 했는데, 역시 아직 이른 걸까. 스스로에게 확신이 설 때에야 명함을 만드는 것이 좋을까. 그런데 확신이 서는 순간은 언제인가? 명함이란 이렇게나 심오한 것이던가? 자의든 타의든, 만들었는데 못 쓰게 되면 기념으로 가지면 그만 아닌가. 그렇게 처음 번역 일을 시작했던 올해 4월쯤 혼자 이러쿵저러쿵하며 시간을 질질 끌다가 결국 이 논란을 종식시키기로 했다.



그렇게 날 위해 네모난 종이 한 장을 만들기로 했다. 웹사이트에서 참고용 명함 이미지를 검색한 뒤 사진 편집 프로그램으로 직접 시안을 만들어 업체와 글씨체 및 위치 등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고, 최종 확인 후 집으로 200매 명함을 받기까지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작은 택배 상자를 열어 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제작 과정은 참 간단했지만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그렇지 않아 더 소중하고 예쁜 내 명함. 친한 지인들 붙잡고 남들 눈에 거기서 거기인 시안 여러 개를 보내며 빨리 더 예쁜 걸 골라보라 재촉하고, SNS 주소는 어떤 걸 넣으면 좋을까, 아이콘은 뭐가 좋을까를 생각했다. 들뜨고 행복한 과정이었지만 번역자가 되기까지의 기억부터, 번역자가 되고 나서 갖게 된 고민과 번뇌 등, 이 종이 한 장 속에 내가 나라는 존재가 담겼다는 기분이 들다니, 명함은 참으로 신비로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내 명함을 만져 본 사람은 종이의 무게와 질감에 놀란다. 책갈피 수준으로 빳빳해서다. 나 또한 직접 받고 이 정도로 두껍고 질이 좋을 줄은 몰랐다. 그런데 여기엔 숨겨진 의미가 있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고 말하는 어느 번역가의 에세이 카피처럼 내 명함은 여러 명함 중에서도 유난히 톡톡하여 '이대로 구겨지지 않을' 예정이다. 한 사람의 명함 지갑 속 가장 튼튼한 명함이라 변색되지도 쭈그러들지도 않는다.

그렇다. 내 번역 라이프, 이대로 구겨질 순 없다. 쓰러지지 않는 프리랜서의 일상을 살아내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 소중한 명함과 함께 오래오래 일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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