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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이 Apr 13. 2021

저자의 기준

독립 출판을 한 이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있었다. 다만 그 이야기를 책의 형태로 만들어 전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려면 출판사를 거쳐야겠는데, 출판사는 내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기엔 여유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내가 직접 하기로 했다.



당연한 말일지 모른다. 나 말고도 책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을 테고, 출판사 입장에서 모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는 없을 테고, 더불어 상업적으로 공생할 수 있는 작가가 한정돼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글을 엮어 책으로 내고 싶다는 이 욕망은 어디서 어떻게 해결한단 말인가.



올해 나의 목표는 반드시 '저자'가 된다, 였다. 나는 내가 작가라고 생각하긴 하는데(이건 아마 전자책 출간 경험이 있고, 번역가는 담당 거래처에게 종종 '작가님'이라고 불리기 때문일 것이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종이 책을 내 본 적이 없다는 아쉬움이 늘 있었으므로 이번에는 어느 서점의 매대에 책을 올리는 저자가 반드시 되리라고 격하게 다짐했다. 왜인지 모르게 내 가슴속에는 이러한 열정이 오래도록 꺼지지 않고 은근하게 솟구친다. 이미 전자책을 내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책 쓰기를 해냈는데도 이 열망은 사그라질 줄을 몰랐다. 에세이 원고를 쓰는 중이라든가 출판사와 미팅을 했다든가 하는 지인의 SNS 게시물을 보면 부러움에 몸부림치면서 어째서 나에게는 두 번째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 걸까 고민했다. 브런치 공모전도 마찬가지. 내가 쓴 글은 어디가 어떻게 부족해서 늘 공모전 문턱에도 다가가지 못하는 걸까 궁금하더라. 공모전을 통해 얻은 것이라면 설레는 마음으로 원고를 기획하고 작업 일정표를 만들어 꾸준히 글을 쓰는 일을 하게 되는 것, 이것이 다였다. 공모전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더욱 시간을 내어 글을 쓰고 다듬게 되었으니까.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두겠다는 것은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이다. 우연히 작품이 발탁되어 출간의 기회를 얻고 강연을 하면서 두 번째 작품 계약까지 따내는 스타 작가의 꿈에 과연 누가 관심이 없을까.



새삼스럽지만, 작년 브런치 공모전 안내 게시물을 보면서 심사를 맡은 출판사가 단 10곳뿐임을 깨달았다. 각자의 개성을 가진 출판사 10곳이 원하는 이야기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일치하지 않으면 나는 책을 낼 수 없는 것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니 그렇지 않다는 답변이 나왔다. 꼭 출판사와 같은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만 작가 혹은 저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책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이상 공모전에 목 메지 않기로 했다. 더불어 이 질문을 던지고 오랜 부러움과 질문의 시간을 통과하며 나는 '저자'가 되고 싶어 한다는 걸, 이 창작의 감각을 괴로워하면서도 즐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을 한 번 낸 것에 만족할 수 없었고, 꾸준히 쓰고 싶다는 욕심이 강했다. 그리고 파워블로거나 인플루언서도 아닌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저자로서의 갈망을 부추겼다. 그래서 서투르지만 독립적으로 출판하기로 했다.


 


즐거웠지만 정말 힘들었다. 원고 작성, 책 표지 디자인, 내지 디자인, 교정, 마케팅, 영업, 피킹 앤 패킹(picking & packing), 택배 발송, 재고 보관까지, 모든 걸 혼자 해야 했으니까. 얼마 전 마련한 자취방 겸 작업실은 황토색 박스의 향연에 정신을 못 차리다가 이제야 겨우 사람이 드나들 수 있게 됐다. 분명 아늑하고 깔끔한 공간이었는데 말이다. 게다가 잘 해내고 싶다는 중압감에 얼마나 눌려 있었는지, 책 판매를 개시한 날에는 갑자기 복잡한 감정이 홍수처럼 쏟아져 여러 번 울어 댔다. 열심히 준비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는데 더 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 속상한 마음이 솟구쳐 그랬던 듯하다. 첫 종이 책이라 예쁘게 포장해서 보내 주고 싶어 포장 용품 이것저것을 주문했는데 나의 실수로 잘못 산 것들도 많다. 판매일에 맞춰 급하게 주문을 넣은 탓이다. 이것들은 현재 오도 가도 못한 채 방 한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럼에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독립 서점 두군 데에 입고하는 경험, 내 책이 온라인에서 소개되는 경험, 생판 모르는 남에게 책이 판매되는 경험, 그 생판 모르는 남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받고 나도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경험이, 현재 진행 중에 있다. 물론 보내 오지 않은 질책도 존재하겠지. 내가 만든 책이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고 좋은 책으로 남을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단 한 줄이라도 연필로 밑줄을 긋게 했으면 좋겠다. 만일 이번 책으로 그렇게 할 수 없었다면 다음 책에서는 꼭 그렇게 하고 싶다. 이 말을 쓰고 나니 나는 당분간 출판을 멈추지는 않을 듯하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저자가 될 수 있다.




https://blog.naver.com/kk646/222297408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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