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아카이브 만들기
SNS는 양날의 검이다. 나의 일상을 기록하는 동시에 남의 일상을 훔쳐보는 공간이고, 나에게 일어난 좋은 일을 공유하는 동시에 사촌이 땅을 샀다는 배 아픈 소식도 공유받아야 하는 곳이다. 사적인 생각을 남기는 곳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싸이월드 일기장이 과연 진짜 나만 보는 ‘일기장’이던가?
나는 브런치, 네이버 블로그, 인스타그램을 하는데 최근 SNS로 인해 힘들어서 ‘오로지 내 것만 보는 이기적인 SNS 활동’을 했다. 정확히는 힘든 감정에 인스타그램이 기름을 쏟아부어서 그랬다. 맞팔을 한 사이라면 서로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러 주는 것이 인지상정일 터. 미안하지만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서 간간히 나의 하루 중 몇 가지 이벤트를 공유하고, 대외적으로 공개되어야 한다고 판단한―이를 테면 누군가에게 받은 선물을 인증해서 상대의 면을 세워 줄 수 있는―몇 가지 소식을 게시물로 올렸다(앞으로도 종종 그럴지도 모르겠다, 흑). 번역 라이프도 평범하게 흘러가고 있으므로 사사건건 포스팅할 필요를 느끼고 있지 못했기에 이대로 지내다가 SNS를 그만둬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다 얼마 전 이런 생각을 뒤집는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바로 매거진 번역과 출판 번역 의뢰를 받은 것인데, 누군가는 이러한 의뢰를 SNS를 통해 아주 오래전부터 받아왔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어서 무척 놀랍고, 신기하고, 즐겁고, 감사했다. 심지어 번역 인생에서 꼭 한번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두 가지를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처럼 받았다. 어떻게 입문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데다 알아도 쉽게 돌파할 수 없어서 그저 ‘언젠가’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최애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가수 박재정 씨가 부른 자작곡 가사처럼 ‘수많은 우연 속에 살짝이라도 하나 틀렸다면’ 과연 내게 이런 기회가 올 수 있었을까!
이 정도로 이 사건(?)들은 내게 감격적이었다. 업로드한 게시물의 조회 수와 좋아요 수가 열 손가락 미만으로 떨어지는 경우 이걸 올린다고, 이걸 기록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 때도 있지만 이 기록들이 하나둘씩 모여 작은 보관소를 건설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특히 패션 관련 포스팅은 5일 정도가 지나야 조회 수 30을 기록할까 말까다). 작업 의뢰를 받고 에디터님과 가슴 떨리는 통화를 마친 순간 생각했다. ‘아, 우리 번역가들 SNS 꼭 해야겠다’고. 번역을 하며 보낸 하루를 기록하고, 하고 있는 작업물에 대한 생각도 남겨 보고(만일 작업물 내용과 이미지가 조금이라도 노출될 경우, 반드시 거래처의 동의를 받을 것!), 번역을 하며 공부하게 된 내용과 사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 것을 추천한다. 파이프라인 형성을 위한 기록으로 여겨도 좋지만 이 목적은 종종 기록을 위한 파이프라인 형성으로 뒤바뀔 수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쉽게 지친다.
번역가의 SNS 활동은 작업 의뢰를 통해 고료를 얼마나 받을 수 있는가의 문제라기보다 새로운 세계로의 입문 가능성을 열어둘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또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어느 번역가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경험 있는 선배 번역가에게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서 지혜를 구할 수도 있고. 번역가들도 브랜딩 했으면 좋겠다. 각자가 선호하는 플랫폼과 방식을 택해서 말이다. 유튜브든, 브런치든, 네이버 블로그든, 트위터든. 참고로 제목에 '인스타그램'을 넣은 이유는, 내가 전부 인스타그램을 통해 의뢰를 받아서이기도 하고, 친한 작가 언니에게 요즘 사람을 찾을 때 회사에서 인스타그램을 활용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반드시 인스타그램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리고 작업 의뢰를 받았다면, 잘해야 한다. 의뢰를 받고 난 뒤,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과 잘 해내야 한다는 중압감에 짓눌려 눈물로 번역을 했지만 어디 사는 누구인지 얼굴 모를 번역가에게 일을 맡긴 그분들의 도전 정신에 보답하고 싶었다. 이름값은 해야 하지 않겠나. 결과적으로 현재 두 건 모두 좋은 평을 받아 감사할 따름이다. 겸손하게 굴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다. 나는 실수가 있는 번역가라 더욱 그렇다. 6월부터 시작할 또 다른 한 건도 꼭 잘 해내고 싶다. 그전에 SNS 잘하는 법을 공부해보고도 싶어 졌다. 이런 종류의 자기계발서는 SNS 가입 및 사용법을 설명하는 데 그치는 그저 그런 책이 너무 많아서 관심도 없었는데, 주말에 도서관에 가서 한번 훑어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