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반죽 통밀빵

내 손으로 처음 빚어낸 건강한 빵

by 정재이

다이어트를 위해 직접 밥을 해 먹기로 한 지 약 5일째 되는 날, 처음으로 베이킹에 도전했다. 뭘 해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다이어터들이 주로 호밀빵이나 통밀빵을 먹는 이미지가 퍼뜩 떠올랐는데, 이왕 밥을 해 먹고 있는 중이니까 빵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싶었다. 검색을 통해 블로거들이 많이 쓰는 통밀가루와 드라이 이스트를 주문하고(이상하게 그들이 쓰는 걸 똑같이 따라 쓰고 싶다. 집 앞 슈퍼에서 파는 무염 버터 말고 저 멀리 알프스에서 온 무염 버터라던가...), 생각보다 내 실력이 탁월하여 처음 만드는 데도 파는 것 같은 결과물을 낼 수 있으니 그 순간을 더 멋지게 기념할 나무 도마와 테이블 매트도 주문했다. 결을 살려서 예쁘게 플레이팅 한 다음 SNS에 업로드하면 좋을 것 같았다. #인생첫베이킹, #나쁘지않네, #수제통밀빵, 이런 해시태그도 붙여서 말이다.


알다시피 블로그에서 찾은 레시피는 블로거 개인의 경험담과 마찬가지이기에 재료도, 사용한 도구도, 계량도, 완성된 빵의 양도 제각각이다. 무수히 넘쳐 나는 통밀빵 레시피 앞에 어느 것이 좋은지 감을 잡을 수 없어 재료 수가 가장 적고 만드는 순서가 가장 짧은 레시피를 택했다. 글로 적힌 설명과 유튜브 영상까지 꼼꼼히 챙겨본 뒤 실전에 나섰다. 그리고 처참히 실패했다.


오븐 밖에서 내가 만난 건 빵이 아니라 떡이었다. 단면을 잘라보니 술빵처럼 구멍이 송송 생겼는데 그 크기가 꽤 컸고 만졌을 때의 촉감이 아주 약간 끈적이는 것도 같았다. 그래서 꾹 누르면 다시 돌아오는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뭉쳐 버리는 그런 질감이라, 처음 만든 것치곤 잘했네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도,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결국 나무 도마와 매트를 깔고 성공 기념이 아닌 첫 제빵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눈으로 보기에도 덜 익어서 SNS에 실컷 자랑하기가 좀 그랬다. 만든 책임이 있으므로 떡이 된 빵을 서너 개 욱여넣은 뒤 문제점이 무엇일까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발효가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는 결론을 어머니와 함께 내린 후, 이틀 뒤에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이틀 뒤에 마주한 두 번째 결과물은 빵이 되려다 매우 아쉽게 떡으로 판명된 통밀빵이었다. 어째서일까, 도대체 왜! 슬픈 마음을 형용할 수 없었다. 이 빵들, 또 내가 다 먹어야 하잖아! 다이어트 기간에 건강하게 빵을 즐기고 싶었을 뿐인데 갑자기 빵순이가 될 지경이었다. 잼을 얹은 떡 같은 빵을 입에 넣으며 생각했다. 분명 다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뭐가 문제였을까. 빵 표면이 노릇하게 잘 구워져 나온 걸 보니, 온도나 조리 시간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내가 한 실수는 또다시 발효가 아닐까, 커피를 홀짝이며 생각에 잠겼다. 블로거들의 사진을 다시 보니 따뜻한 물에 넣은 드라이 이스트가 보글보글 거품처럼 올라와 있었고 막걸리처럼 술 냄새가 난다는 말도 적혀 있었다. 내가 넣은 이스트 물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틀린 것 없이 잘한 것 같은데 실패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우기는 내 옆에서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야, 그거 발효 되게 중요해. 이스트 1그램 하나가 엄청 큰 차이를 불러온다던데 다시 똑바로 읽고 제대로 해 봐." 순간, 차가운 물을 컵에 받아 전자레인지에 20초 정도 데우곤 컵이 꽤 따뜻하니 물도 그럴 거라 대강 짐작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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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에서 금기 시 되는 '넘겨 짚기'를 시행했으니 당연히 첫 시도에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수 없었다. 게다가 드라이 이스트가 활발히 움직이는 물의 온도를 지레 짐작해 놓고 발효가 안 된다며 투덜댔으니, 그 고운 입자들이 나의 자만심에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물이 차가워 기지개 한 번 못 폈을 텐데 말이다. 실수 없이 성공해서 SNS에 자랑할 생각만 했지 진지하고 본격적으로 임했던가 하는 의문이 들어서, 씹던 빵과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은 채 반성회를 가졌다. 그 작은 누룩이 빵의 맛과 질감과 모양까지 좌우하는 것처럼 내 맘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사소한 마음가짐과 각오와 행동이 내 일상을 좌우할 거란 생각도 들었다. 이때는 여름 더위에 지쳐 여러 가지에 불평 불만을 일삼고, 뭐 하나 내 뜻대로 흘러가는 것이 없어 속상하고, 나도 힘든데 아무도 나는 돌봐주지 않는 것 같아 외롭다고 느끼던 시기였다. 우울감에서 벗어날 겸 다이어트를 위해서 그 간단하다는 무반죽 통밀빵을 시도했는데 이마저도 실패했단 생각에 좌절할 뻔하다가, 가장 쉽고 간단한 비법을 찾아놓고선 그 비법의 핵심이라는 발효와 계량을 대충했단 사실을 깨닫고 반성에 반성을 거듭했다. 다음부턴 꼭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라고.


세 번째로 시도할 때는 직접 피부로 물의 온도를 확인하고 저울로 드라이 이스트 양을 정확하게 쟀다. 모든 재료와 물을 넣어 날가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모든 걸 섞고 정중히 랩에 싸서 냉장고에 저온 발효를 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두 배로 부푼 데다가 볼에서 반죽을 떼어 내니 반죽이 낫또의 실처럼 길쭉하게 늘어났다. 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게 되는 구나. 예열한 오븐에 반죽을 넣고 수능 시험장 앞을 서성이는 부모의 마음으로 오븐 앞을 서성였다. 40분 뒤 까무잡잡하면서 노릇한 빵이 나왔을 땐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빵을 빚었다니. 채식주의자도 아닌데 버터도 계란도 없는 완벽한 비건 빵을 구워 놓고선 맛있다고 먹는 날 보며 어머니가 피식 웃었다. 앞으로 똑바로 안 해 놓고 잘 안 됐다며 투덜거리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과유불급의 태도로 빵을 굽듯, 일상을 지내야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무반죽 통밀빵에게서 처음으로 적당함의 미학을 배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