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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어 Jan 04. 2019

기억은 늙지 않는다

머리와 가슴, 어깨, 등처럼 모든 신체 부위에는 저마다 특별한 의미가 있다. 겨울이 되면 특히, 등에 얽힌 추억이 떠오른다. 목욕을 하면서 누군가와 서로 등을 밀어줬던, 그 마지막이 언제였던가. 등이 따갑지 않도록 힘을 빼고, 부드럽게 때를 밀어주던 손길... 비록 손에 때타월을 끼었지만, 그 손끝에서는 따뜻한 정이 느껴졌다.


등을 밀어주는 것이 정겨운 추억이라면, 등목을 해주는 것은 흥겨운 추억이다. 한여름, 웃옷을 모두 벗고 수돗가에 엎드렸을 때,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물은 시원하면서도 간지러웠다. 그때 바가지로 등에 물을 부어주던 사람이 장난기가 발동하면 수돗가는 놀이터처럼 떠들썩해졌다. 그가 등에 물을 찔끔찔끔 흘리다가 갑자기 한꺼번에 쏟아부으면 누구든 화들짝 놀라면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머리와 바지가 흠뻑 젖었는데도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그렇게 등목을 할 때 수돗가는 흥겹고, 정이 넘치는 공간이었다.



음식을 먹고 체했을 때, 등을 두드려주는 누군가의 손도 정겨웠다. 토닥토닥 소리를 내며 손바닥이 등줄기를 따라 오르내리면 어느 순간 트림이 나오면서 속이 한결 편안해졌다. 또 힘들고, 지쳤을 때 누군가가 말없이 등을 툭 치면서 그윽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 그의 진심이 전해져서 위로가 됐다. 가족끼리 서로 등을 긁어줄 때는 또 어떤가. 비록, 가려운 부위를 제대로 못 찾고 엉뚱한 곳만 긁어서 핀잔을 들을 때도 있지만, 그 누군가의 손은 분명 ‘효자손’보다 나았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를 등에 업어주거나 누군가의 등에 업혔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누군가를 업어줬을 때, 이 등은 그에게 아랫목처럼 따뜻하고, 아늑한 공간이 됐을 텐데, 왜 나는 등을 내어주지 않았을까. 누군가와 교감했을 때, 등은 훈훈한 부위가 되지만, 누군가에게 등을 돌려버리면, 순식간에 그곳은 차디찬 냉골이 되고, 위압감이 느껴지는 장벽이 된다. 다시 등을 돌려 서로 마주 보는 것도 거북이가 등을 뒤집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세상을 잘못 사는 건지 나이가 들수록 나에게 등을 보이는 사람들이 한 명, 두 명씩 늘어간다. 그 사람들이 다시 돌아서도록 한 발 다가가서 등을 토닥여야 되는데, 나마저 등을 돌려버리게 된다. 한겨울, 그렇게 냉골처럼 느껴지는 누군가의 등은 가슴을 더 시리게 한다. 어쩌면 지금 이 등도 누군가의 가슴을 시리게 할지 모른다. 이 등을... 저 등을... 차갑게 식어버린 우리 등을... 어떻게 하면 다시 따뜻하게 데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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