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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보다 슬픈, 호러영화보다 무서운
- 감정의 분비물
by
모어
Oct 24. 2021
퇴사!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소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두려운 미래다.
일반 직장인과 프리랜서의 퇴사는 다르다. 프리랜서에게 퇴사라는 말은 어색한 표현이다. 실제로 그 말을 거의 쓰지도 않는다.
사람에 따라 표현이 조금 다르지만, 방송 작가들의 경우, ‘짤렸다’던가 ‘때려 쳤다’던가 ‘쉬게 됐다’고 말한다.
쉬게 됐을 때, 방송 작가들은 퇴직금이 없다. 작년까지만 해도 실업 급여조차 못 받았다. 그러니 백수가 되면 막막해질 수밖에 없다.
개편 때 방송국을 떠나야 되는 서브 작가들이 화장실에서 서럽게 울었다는 말이 종종 들려오고는 했다.
여자 화장실은 똥, 오줌만 배설하는 곳이 아니라, 격한 감정의 분비물까지 배설하는 공간인가 보다.
나 역시 몇 번 쉬게 된 적이 있다. 그 순간마다 자존심이 상했다.
몇 번 경험한 일이라 덤덤해질 만도 하건만 이상하게 그 순간은 적응이 되지를 않았다.
악연인 사람은 매일 봐도 낯설고, 늘 곁에 있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것과 비슷한 걸까.
예체능 학부모가 된 후부터는 그 순간이 공포가 됐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되는 상황에 오히려 고정 수입이 끊겨버리니 겁이 날 수밖에 없다.
몇 년 전에도 그랬다. 일이 없어졌을 때 눈앞이 깜깜했다.
하루라도 쉬면 안 되는데... 빨리 다른 일을 찾아서 당장 시작해야 되는데...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점점 더 불안해지고, 초조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분명히 아무 생각과 감정 없이 양치질을 했건만 뜬금없게도 눈물이 흘러내리니 의아하고, 당황스러웠다.
- “겁이 많아졌다. 돈이 멜로 영화보다 슬프고, 호러 영화보다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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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방송작가, 오늘은 웹소설 작가. 어제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오늘은 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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