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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어 Oct 24. 2021

까칠해지기로 했다

- 삶에 고분고분하다고 행복을 주는 게 아냐

“제가 또 뭐, 할 건 없어요?”


누군가가 업무 지시나 부탁을 했을 때, 매번 쿨 하게 들어주는 것이 조직 생활을 잘하고, 대인 관계를 좋게 만드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나 역시 그렇게 어리숙했다.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처음에는 상대가 흐뭇해하지만, 나중에는 무리한 지시와 부탁을 하는 것조차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말투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줄래요?"에서 "그렇게 해줘요"로 말끝도 짧고, 강해졌다.


나를 가볍고, 만만하게 여기는 것 같다는 느낌..... 그 느낌과 예감은 결국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때부터 일보다 사람 때문에 힘든 날이 많아졌다.


예체능 학부모가 된 후부터 일이 끊기면 안 된다는 불안감과 강박관념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나보다 나이가 한참 적은 상대가 그 심리를 악용해 꼰대 짓을 해대면, 허탈하고 씁쓸한 기분이 들어서 다시 또 고개가 숙여진다.




나이 많은 사람이 모두 꼰대는 아니다. 나이 많은 사람이 운전하는 택시에 탄 고교생도 꼰대가 될 수 있다. 꼰대는 나이가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의 지배적 계급이다.


누군가에게 항상 고분고분한 것은 예의가 아니고, 미덕도 아니다. 나보다 우위에 있는 상대에게 나를 막 대해도 된다는 암시를 주는 것이다.


인간의 심리가 묘하다. 9번을 잘해주다가 막판에 1번을 잘 못해주면 뒷말이 나온다. 반대로 9번을 잘 못해주다가 마지막에 1번을 잘해주면 평가가 달라진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고분고분한 것보다 까칠한 것이 낫다. 까칠해지면 사람 때문에 힘든 날이라도 줄어든다. 고분고분하다고 평가가 좋고, 까칠하다고 평가가 나쁜 것만도 아니다.     


삶 역시 마찬가지다. 시련 앞에서 한숨 쉬고, 어깨가 처진 건 삶에 고분고분한 태도다. 이제 삶에 주눅 들거나 위축되지 않고, 까칠해지기로 했다. 




- “삶에 고분고분하다고 운명이 행복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고, 까칠하다고 불행을 던져주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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