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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어 Oct 24. 2021

행복을 덜어주었다

- 실은, 그때가 행복한 순간이었다

Never! 절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자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부모... 측은하고, 답답해 보였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나 또한 측은한 인생이 돼버렸다. 


고구마 백 개를 먹은 듯 속이 답답한 날의 연속이었다. 사이다, 콜라, 동치미 국물에 활명수를 원샷해도 체한 듯 답답한 속은 풀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히 딸은 학교생활을 즐거워했다. 이른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학교 수업과 무용 레슨을 하느라 지칠 텐데도 표정이 밝았다. 


방학 때는 오히려 개학이 될 날만을 기다렸다. 이상한 애였다. 친구들이 좋고, 수업도 재미있고, 학교 급식도 너무 맛있다고 했다.


나와 딸의 행복은 그렇게 반비례했다. 




인생이 이대로 허무하게 지나가서 내가 노인이 돼도 좋았다. 그저 딸이 빨리 어른이 되기만을 바랐다. 그것이 위안이자 웃픈 희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을 레슨 홀로 데려다줄 때였다. 딸이 차창 밖을 보며 혼자 배시시 웃고 있었다.    


“뭐, 기분 좋은 일 있어?”    


“오늘, 날씨가 정말 좋잖아”    


하늘을 바라보니 맑은 하늘에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있었다. 그동안 매일 날씨가 어떤지도 모른 채 살고 있었다.


차를 운전하면서 룸미러로 딸의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날따라 딸의 표정이 유난히 해맑고, 행복해 보였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행복이었다. 그 사실을 유행가 가사에나 어울릴만한 뻔하고, 식상한 말로만 생각했다.


‘보물찾기 놀이’는 주로 시시한 보물만 숨겨져 있다. 그런데도 보물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돌아다닐 때는 마음이 설렌다.


마찬가지로 행복 또한 ‘결과’뿐만이 아니라, ‘과정’에도 숨어있었다. 그것을 모르고, 느끼지 못한 채 살았다.




그동안 괜한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서 행복에 무감각하고, 스스로 행복을 외면해버렸다. 피해 의식이 행복을 꼭꼭 숨긴 장애물이었다.


그동안은 '그냥 아빠'였지만, 딸을 위해 노력하는 '진짜 아빠'가 됐다. 딸이 인정해줄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자기만족과 자아도취는 된다.



- "딸이 행복할 수 있도록 헌신하고, 희생할 때가 실은, 행복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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