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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어 Oct 24. 2021

지구력도 스펙이다

- 무딘 가족

“차 좀 바꾸면 안 돼? 창피해 죽겠어”  


하루에도 딸을 학교로, 레슨 홀로 몇 번씩 데려다주는 게 일상이다. 생방송 원고를 쓰다 말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게 하루 일과가 됐다.


그나마 다행이고, 감사한 일은 프리랜서라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무실에 매인 직장인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는 곳이라 학교 정문이 친근하게 보인다. 그곳에 도착하면 낯익은 차들이 보인다. 대부분 외제차다. 내 차만 국산 준중형 승용차다. 그것도 10년 전에 중고로 산 차다. 


한창 예민할 나이이니 딸이 불평할 만도 하다. 한때는 누가 볼까 봐 학교에 가져가야 할 의상과 소품이 없는 날,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나라고 왜 기죽지 않을까. 하지만 돈 들어갈 곳이 워낙 많다 보니 그동안 차를 바꿀 엄두를 못 냈다. 




딸의 친구 엄마들도 대부분 외제차를 몰고 다닌다. 그런데, 아내는 차가 없어서 마을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한다.


코로나19가 생기기 전, 외부에서 학부모 모임이나 누군가의 생일 파티가 있을 때는 친한 엄마의 차를 얻어 타고 갔다.


그것이 민폐라는 것을 아내도 잘 알기 때문에 택시를 타려고 하면, 굳이 태워주는 엄마들이 있다.


그럴 때는 고맙고,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씁쓸해지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러니 나와 딸보다 기가 더 죽을 사람은 아내다.     


게다가 다른 엄마들은 모두 명품 백을 들고 다니는데, 아내만 명품 백이 하나도 없다. 가짜 샤넬 백이 하나 있기는 있다.


아내가 "이거 가짜야"라고 말해도 엄마들은 농담이겠거니 생각하면서 진짜 샤넬 백으로 안다니 웃픈 일이다. 그동안 아내 생일에 명품 백 한번 사주려고 했지만, 마음뿐이었다.


또, 다른 엄마들은 대부분 골프를 치러 필드에 나간다. 아내는 골프채는커녕 골프 용품 하나 없다. 




다른 엄마들이 아내를 얼마나 가엾게 여길까. 나를 얼마나 찌질한 남편 취급할까. 그런데, 인정할 것을 인정해버리면 그나마 덜 초라해지고, 덜 힘들다. 당당하다 못해 뻔뻔해진다.


"그래, 나 찌질한 사람 맞아. 그래서? 뭐? 어쩌라고?"


누군가한테는 '최악'이자 '극혐'의 캐릭터가 될 수 있겠지만, 이 뻔뻔함은 이 현실을 견디고, 버텨낼 수 있는 '발 연기'인지도 모른다.


아마 웬만한 사람들이면 위화감과 열등감이 심해서 딸을 일반 학교로 전학시켰을 수도 있다.


우리 가족은 예민하지 않고, 무딘 편이라 전학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쪼들리는 삶이 못난 게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를 스스로 못났다고 여긴다.


다른 사람들을 너무 의식하면 한숨만 나오고, 우울해진다. 그것을 알기에 우리는 모든 것을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다행히 아내가 사교적이라 다른 엄마들과 잘 어울린다. 딸도 성격이 밝아서 친구들과 사이가 좋다.


만약, 우리가 너무 예민해서 스스로 기가 죽어 움츠러들었다면.....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피했다면..... 그것은 서럽고, 고달픈 삶을 스스로 자초하는 셀프 연출이 된다.


열등감에 싸여서 남한테 동정을 받기보다는 차라리 당당한 모습으로 험담을 듣는 게 낫지 않을까. 어차피 잘난 사람들도 서로 험담을 할 테니까.....




- “너무 예민하면 감정과 판단이 흐려져서 스스로 무너진다. 때로는 무디고, 당당해져야 현실에 맞서는 지구력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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