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1)- 피아노 조율 1호 명장 이종열 씨
연세대는 나와 별 인연이 있는 학교가 아니다. 대학을 선택할 때도 별로 생각해 본 적 없고 좋아하는 대학도 아니었다. 집에서 가까운 적도 없었다. 당연히 찾아갈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 연세대를 지난해 정말 오랜만에 방문했다. 한 30년 만인가. 이유는 딱 하나. 아내가 죽고 못 사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공연 티켓을 어렵게 얻어서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우거진 수풀 속 풀벌레의 합창이 울려 퍼지는 연세대 노천광장으로 갔다. 고요한 숲 속에서 달빛을 받으며, 그 보기 힘든 반딧불이의 무용까지 곁들이며 듣는 쇼팽의 곡들은 클래식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는 ‘클알못’에게도 괜찮은 기회였다.
솔직히 연주 보다 더 뇌리에 박힌 게 있다. 공연 직전 피아노를 점검하기 위해 등장한 조성진은 어딘가 불만스러워 보였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잘 모르겠지만 피아노 때문인 듯했다. 갑자기 과거 인터뷰를 했던 피아노 조율사 이종열 씨의 말이 떠올랐다. 그가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피아노 조율은 민주주의예요. 서로 내가 잘났다고 나서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죠.”
이종열 씨를 만난 건 2년 전 예술의전당에서였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팻말을 무심히 지나치고 들어간 사무실. 책상 위 놓인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온다. 표지는 누렇게 바래고 속지는 떨어져 나가기 일보 직전이다. 일본어로 쓰인 책의 이름은 ‘피아노의 구조· 조율·수리’. 출판 연도를 보니 1954년이라고 찍혀 있다. 처음 만나는 자리의 어색함을 덜기 위해 한마디 던졌다. “정말 오래된 책이네요.” 그때는 몰랐다. 그 말 한마디가 무려 5시간이나 되는 대화의 시발점이 될 줄은.
국가가 인정한 피아노 조율 명장 1호인 그의 이름을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면 모를 리가 없다. 연주회를 하면 단 몇 초 만에 전석 매진을 이루는 조성진은 국내 공연 때면 언제나 그를 찾아오고, 지독한 완벽주의자로 평가받는 크리스티안 지베르만은 연주가 끝난 후 직접 그를 찾아와 손을 붙잡으며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일반인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인물이다.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만 50차례 넘게 진행했고 방송의 유명 토크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얘기만 듣고 보면 굉장히 화려한 인생을 살고 있을 것 같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2년 전 인터뷰를 할 당시까지만 해도 그에게 주어진 공간은 예술의전당 지하 1층에 있는 3평 남짓한 작은 사무실이 전부였다. 유명인 하면 생각나는 넓고 푹신한 소파는 그 어디에도 볼 수 없다. 외로웠던 탓일까. 그는 쉼 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중간중간 질문을 하지 않으면 인터뷰가 이뤄지지 않을 정도였다. 어릴 적 교회에 울리는 풍금소리를 듣고 조율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졌고 논두렁에 앉아 스스로 조율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회고부터, 피아노 조율을 맡긴 학생들의 입소문 덕에 당대 최고의 연주홀인 호암아트홀에 입성했을 때,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피아노 조율을 맡겼을 때의 일들까지 스토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오후 2시가 좀 지나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한다. 그래도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인데 뭔가 그럴듯한 것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슬며시 고개를 쳐든다. 혹시 고기를 먹자고 할까? 아니면 일식집? 별별 상상을 다 해본다. ‘혹시나’ 하는 기대는 ‘역시나’로 끝났다. 그가 들고 온 것은 냉장고 속 인절미 몇 개. 떡 서너 개 집어먹으니 금방 바닥을 드러낸다. 그것으로 식사 끝. 참 소박한 점심이다. “나이 들으니 먹고 싶은 게 별로 없어요. 이렇게 자주 끼니를 때웁니다.” 나 자신도 다르지 않다. 점심 식사를 할 때마다 맛있는 게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늘은 뭘로 때우나 하는 생각뿐이다. 맛이 있든 없든 그냥 알아서 챙겨주는 구내식당이 최고다.
피아노 조율 하면 그냥 음만 정확하게 맞추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성격이 괴팍하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조율사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상상 이상이다. “건반이 약간 저항하는 듯한 느낌이 나도록 해 달라” “고음을 다룰 때 약간 밝은 소리가 났으면 좋겠다.” 일반인이 들으면 무엇을 어떻게 해 달라는 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은 요구사항들이 등장한다. 그래도 맞춰야 한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 게 그의 역할이다.
이 조율사가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청각 보호.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보청기도 끼지 않는다. 생음(生音)을 듣고 다른 음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음은 가장 큰 적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거의 가지 않는다. 한 번은 자식들의 성화로 프로야구를 보러 경기장에 간 적이 있었다. 관중들의 함성소리와 응원가를 들으며 남들은 흥분하고 즐거워했지만 그는 그 자체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고 했다. 결국 경기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이후 단 한 번도 운동장을 찾지 않았다.
그의 최애곡은 무엇일까. 피아노를 다루니 일반인과는 뭔가 다르지 않을까. 모차르트나 베토벤 작품? 아니면 성악곡? 선을 조율하기 위해 건반 앞에 손을 올려놓는다. 너무도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내 입가에는 미소가 돈다. 50대 이상이면 누구나 아는, 1960년대를 한국을 풍미했던 대표곡 중 하나. 묵직한 저음이 매력적인 곡. 트로트곡인 ‘돌아가는 삼각지’다. 80대 중반 어르신이 딱 좋아할 노래라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노래는 뽕짝이 최고예요.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잖아요. 그래서 자주 부르죠.” 역시 음악에서 장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클래식이든 대중음악이든 자신의 삶과 닮고 추억과 위안, 안식을 찾을 수 있는 곡이면 모두 훌륭한 음악이다. 모차르트가 천상의 음악을 만들었다면 돌아가는 삼각지를 부른 배호는 지상의 노래를 부른 예술가라는 되지도 않은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