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나. 아직 살이 빠지기 전이기는 하지만 아들 바보의 눈으로 보면 한없이 사랑스럽다. 사생활 보장을 위해 ...
회사에서 한창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린다. 뒤이어 몇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그 안에 보이는 너무 반갑고 익숙한 얼굴. 눈을 내리 깔고 그렇게 좋아했던 버섯 칼국수를 열심히 먹고 있는 모습. 아들이다. 일본 유학을 떠난 후 넉 달 만에 우리 부부 품으로 돌아온 소중한 존재. “방학 두 달 동안 물고 빨고 해야지.” 그동안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기만 손꼽아 기다렸던 아내의 첫마디다.
‘물고 빨기’는 아내의 주특기다. 결혼 전 연애를 할 때도 종종 입을 벌리고 달려들기 일쑤였다. 처음에는 기겁을 했다. 드라큘라도 아니고 좀비는 더더욱 아닌데 갑자기 이빨을 드러내며 팔을 물어뜯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얼마 안 돼 알았다. 그것이 애정 표현이라는 것을. 반대로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은 손 끝 하나 대지 않는다. 물고 빨고 한다는 말에는 그만큼 보고 싶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지금은 남편에게 달려들지 않는다. 대신 ‘이 웬수’가 됐다. 함께 살면서 ‘그리운 이’에서 ‘웬수’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이 퇴근 후 현관문을 들어서는 아빠를 향해 던진 첫마디는 예상대로 “돌 빼”였다. 일본에 있을 때 아빠가 요로결석으로 병원에 갔었다는 얘기를 듣고 전화를 할 때마다 항상 외쳤던 말이다. 아들 표현대로 ‘아부이’ 몸 안에 있는 돌을 빨리 빼고 건강하게 돌아오라는 표현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만큼 이 아이(27살이나 됐으니 아이라고 부르기는 뭐 하지만 그래도 우리 부부 눈에는 그렇게 비치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돌려하지 못한다. 언제나 직설 화법이다.
사실 아들을 다시 만난 것은 한 달 만이다. 한 달 전 아들 생일 때 생일상 차려 주겠다고 일본으로 날아간 적이 있다. 집을 얻어서 기숙사에 있는 아이를 불러내고 같이 지내길 나흘. 그때는 얼굴을 봤다는 느낌만 있었을 뿐 같이 지낸다는 생각을 별로 들지 않았다. 이국 땅에서 그것도 썩 내키지 않는 나라에서의 만남은 감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번엔 다르다. 비로소 완전체 가족이 됐다는, 하나가 됐다는 기쁨과 안도감이 함께 몰려온다.
아들이 돌아왔다고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엄마와 함께 있을 때는 어떤지 몰라도 내 눈에는 그렇다. 퇴근을 하면 자기 방에서 건성으로 “아빠 왔어” 한마디 툭 던질 뿐 얼굴은 내비치지도 않는다. 예전에는 괘씸했지만 적응이 돼서 그런지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물론 ‘꼰대’라는 소리가 듣기 싫은 탓도 있다. 요즘은 누가 됐든 자기 일에 간섭하거나 일일이 따지면 이런 비아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시대가 변하면 사람도 변해야 하는가 보다.
같이 밥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 식사를 마치면 밥그릇과 수저를 모두 그 자리에 두고 자기 방으로 휑하니 가버린다. 다른 사람이 다 먹을 때까지 자리를 지켜주는 그런 매너 같은 건 기대할 수 없다. 식사를 마치면 각자 맡은 일을 해야 한다. 내가 남은 음식들을 냉장고에 넣고 빈 그릇과 수저 등을 개수대에 갖다 놓으면 아내는 설거지를 한다. 그리고 소리를 한번 지른다. “나와서 식탁 닦아.” 미적미적 거리며 나오는 키 180cm의 청년. 물티슈로 밥 먹은 곳을 한번 쓱 닦고 뒤도 안 돌아보고 다시 자기 방으로 직행한다. 좋은 말로 표현하면 맺고 끊음이 칼 같은 아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걱정도 해주고 감동을 주기도 했다. 아이가 아주 어릴 적 휴가를 떠났을 때의 일이다. 고물이지만 애마를 끌고 산을 넘기 직전 연료 게이지에 빨간 불이 켜지는 것이 아닌가. 주변을 둘러보니 주유소가 보이지 않았다. 아내가 얼마 전부터 기름을 넣고 가자고 했지만 조금 더 가면 나타나겠지 하는 생각에 그냥 달렸다. 산을 하나 넘고 둘 넘었다. 그래도 주유소는 보이지 않았다. 비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 산중에서 차가 선다면 어쩌나, 긴급 출동을 불러도 오기 힘들 텐데, 견인차가 안 오면 내가 차를 밀어야 하는데 아들이나 아내가 도와줄 리 없으니 그걸 어떻게 하나. 온갖 걱정에 눈앞이 아득했다.
그때 저 앞에 주유소 팻말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기뻤는지. “주유소다.” 나도 모르게 외쳤다. 그 순간 갑자기 눈이 번쩍 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아내가 옆에 있던 종이로 남편을 패기 시작했다. “이 인간아. 일찍 일찍 기름을 넣자고 했지. 너무 놀랐잖아.” 얼마나 놀랐는지 눈물까지 그렁그렁했다. 어쩌면 맞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아빠 때리지 마. 아빠 때리지 마.” 뒷좌석에 있던 아이가 엄마에게 울면서 소리치는 것 아닌가. 아내도 나도 피식 웃었다. “그래도 아빠 생각하는 건 아들 밖에 없네.” 수십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 경험이었다. 미안하면서도 고맙고, 안쓰러우면서도 괘씸한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존재가 아들이다.
앞으로 한 달 있으면 다시 헤어져야 한다. 생각 같아선 카페도 뭐고 다 때려치우고 같이 있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아쉬울 뿐이다. 자영업자는 그래서 힘든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