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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그니 Oct 05. 2023

운수 좋은 날- 시인 나태주의 책이 찾아왔다

나는 카페노예다 <21>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특히 출판 시장이 그렇다. 전자책이 나오고 원하는 웹소설 웹에세어 등 브런치 같은 플랫폼을 통해 많은 글을 읽는 시대다. 종이책 대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독서를 하는 모습이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다. 아니 오히려 훨씬 자연스럽게 보인다. 제조업 기반의 사회가 지식산업 기반 사회로 급변하고 있음을 몸으로 체감한다. 

편하고 쉽게 책을 볼 수 있을만큼 세상이 바뀌었지만 올드 세대가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종이책만이 줄 수 있는 만족감을 전자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탓이다. 책은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다. 책장을 넘길 때 느껴지는 손의 감각과 소리, 특유의 종이 냄새, 자신에게 소중한 문장에 밑줄을 그을 때 느껴지는 쾌감은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이 따라오기 힘들다. 기술이 더 발전해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킨다면 모를까 아직은 종이책을 대체할만한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종이책을 아끼는 이유다. 

본업으로 삼고 있는 직장에서 금요일은 아주 특별한 날이다. 이날 하루만큼은 일주일 간 회사로 들어왔던 신간 중 서평을 쓰기 위해 담당자가 가져가는 책을 빼고 난 다른 서적들을 회사에 나온 사람들이 아무나 가져갈 수 있다. 이날 풀리는 책은 대략 많으면 70권 이상, 적어도 50권은 넘는다. 서점에서 책을 사 본 사람은 안다. 요즘 책값이 얼마나 무서운지. 작가나 출판사가 들으면 서운해 할 지 몰라도 그냥 평범한 일반인의 눈에는 그렇게 비친다. 그런 책을 공짜로 가져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경쟁이 치열하지 않을 리 없다. 오후 6시가 되면 저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서고로 몰린다. 가장 먼저 들어간 사람은 책상 가운데 떡 버티고 서서 그 위에 놓인 책들을 일별하는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권한을 갖는다. 

책이 많기는 하지만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10번을 가서 1권 정도 찾으면 다행이라고나 할까. 이번에는 정말 드문 행운이 찾아왔다. 최애 시인 중 한 명인 나태주 시인이 딸 민애씨가 함께 엮은 동시집 '작고 아름다운 나태주의 동시수업'이 내 손안에 들어왔다. 어릴 적 감성을 되살려주는 동시와 나 시인의 감상글은 정말 포근하고 사랑스럽다. 구상 시인의 '꽃자리'라는 시에 달린 감상글은 내게 희망을 속삭였다.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우리의 생각의 힘은 힘이 셉니다. 가장 불편한 자리도 가장 좋은 자리로 바꿔버릴 수 있습니다.' 고영민 시인의 동시 '풋사과'를 읽고 난 후 '아이들은 별거 아닌 일에도 자지러지게 웃습니다/아이들이 웃으면 선생님도 따라 웃고 싶어집니다/ “웃지 말아요”라고 말하는 건 사실 진심이 아니랍니다'라는 나 시인의 글을 읽으면 어릴 적 선생님만이 아니라 부모님의 마음도 어림잡아 짐작하게 만든다. 


일독을 한 후 카페로 들고 와 주문대 바로 밑 책장 가운데 꽂아두었다. 책이 작고 얇은 탓도 있겠지만 하도 많은 책이 꼽혀 있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랴. 그렇다고 나 시인의 책만 따로 전시해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약간의 편법을 쓰기로 했다. 손님들 중에는 서재에 꼽혀 있는 책들을 유심히 살피는 이들이 종종 눈에 띈다. 원래는 손님들에게 말을 잘 건내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게 하기 위함이다. 이번만은 예외로 하기로 했다. 나도 좋고 손님도 좋은 방법 중 하나로 새로 나온 책이라고 권하기로 했다. 다행히 많은 이들이 나 시인의 책에 시선을 던졌다. 손에 동시집을 들고 자리로 돌아가 삼매경에 빠진 이의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중 한명을 바라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동시를 읽고 쓸 때는 세상이 정해준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어린이의 나라가 있는 지가 중요합니다. " 나 시인의 딸 나민애 서울대 교수께서 책 서문에 쓴 글이다. 이 동시집을 읽는 내 안에는 과연 어린이의 나라가 존재할까.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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