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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그니 Jun 08. 2023

정원을 바라보며

    

갑자기 눈이 확 밝아졌다. 우거진 줄기에 주렁주렁 줄지어 달린 담홍색 꽃. 돌 몇 개와 약간의 흙으로 만든 손바닥만 한 정원(?)에 이리 보면 복주머니, 저리 보면 하트를 닮은 것들이 귀엽고 예쁘게 피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 흙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며칠 사이 아무도 몰래 꽃 잔치가 열렸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메마른 흙을 뚫고 나온 금당화는 올해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카페 앞 우리들의 소정원에 핀 금당화. 복주머니는 연상케 하는 꽃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사장님은 식물, 특히 꽃을 무척 좋아한다. 카페를 시작할 때도 꽃과 식물이 가득해 눈 호강을 누렸다. 처음에는 데이지, 수선화 나중에는 장미, 튤립까지 알록달록 화려한 계절의 전령들이 내부부터 입구까지 가득했다. 출입문 앞이 허전하다며 벽돌과 아기 코끼리 화분으로 우리만의 정원을 만들기도 했다. 

늦가을 잎이 시들자 금당화도 자취를 감췄다. 

얼마 전에는 차들이 다니는 도로 옆 비탈에 꽃을 심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라기보다 한 사람이라도 더 카페를 찾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며칠 전에는 사장님이 몸소 삽을 들고나가 두 그루의 꽃나무를 심었다. 그 덕에 다음날 하루 종일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끙끙 앓기도 했지만... 남편이라는 작자가 아픈 아내는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밥을 챙겨 먹고 있더라고 핀잔을 한가득 듣는 사태도 벌어졌지만... 나중에는 뙤약볕에서 20그루 이상을 심기도 했다. 이러다 죽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더웠지만 하소연을 할 곳이 없다. 사장을 시킬 수는 없으니 노예가 할 수밖에.

꽃과 나무가 심어 놓고 갖다 놓기만 하면 저절로 자라는 아이들이라면 좋으련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주말에만 출근하다 보니 꽃들을 관리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물을 주는 것부터가 그렇다. 어떤 것은 최소 사흘에 한 번씩은 밥을 줘야 하지만 우리에게는 불가능했다. 뙤약볕이 쬐는 여름과 북풍한설 몰아치는 겨울이면 더더욱 그렇다. 꽃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마도 온몸이 타들어가거나 온몸이 꽁꽁 얼어붙는 고통을 겪었을 터다. 

그래도 여름은 낫다. 겨울에는 죽지 말라고, 힘들어하지 말라고 식물들을 카페 안으로 들여놓지만 그런다고 어디 한기가 가실까. 할 수 없이 퇴근할 때 나무와 꽃들을 비닐로 꽁꽁 싼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겨울철에 약간이나마 온기를 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난방기는 답이 아니다. 주 5일간 사람도 없는 곳에서 틀어 놓을 경우 전기료 폭탄은 불 보듯 뻔하다. 자칫 과열로 카페 전체가 홀라당 타버릴 수도 있다. 사장님이 아이디어를 냈다. 하긴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장님이었다. 방법은 모기향을 태울 때 쓰는 기구를 사용하는 것. 화분을 비닐로 덮은 덕에 조그맣지만 그 속에서 나오는 열기만으로도 견딜만한 모양이다. 주말이 돼 가보면 촉촉이 물기까지 머금은 채 죽지 않고 버티고 있다.

안에 들여놓은 것들은 그래도 살 수 있지만 밖에 놓인 생명체들은 어찌할 수 없다. 결국 루프탑에 자리 잡은 불두화는 푸르름을 잃은 채 바짝 마른 줄기만 남겨 놓았다. 바람은 또 왜 그렇게 부는지. 꽃대가 긴 식물들은 강풍에 견디지 못하고 허리가 끊기기 일쑤다.

정원을 지키는데 계절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길고양이들도 꽃에겐 치명적이다. 카페 입구는 ‘냥이’들이 좋아하는 통행로다. 토끼나 고라니도 종종 모습을 드러내는 듯하다. 정원에서 본 적은 없지만 카페 앞 우거진 수풀에서 고라니나 토끼를 한 두 번 본 적이 있다. 그들이 거기에만 있었을까. 아마 길 건너편 산에서 내려와 카페 앞을 지나 해변으로 갔을 수도 있다. 꽃들이 뭔가에 짓밟힌 채 널브러진 모습을 보면 야생동물들 때문이구나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이렇게 죽은 식물과 꽃들이 기억하는 것만도 50여 개는 될 듯싶다. 

우리들만의 조그마한 정원. 앞에 보이는 코끼리 화분은 아이들이 특히 좋아한다. 

그래도 꽃 키우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카페는 차를 마시는 곳이자 대화하고 쉬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 장소다. 생명을 함께 하는 것,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은 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카페 폴딩도어를 활짝 열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바다가 아니라 나무다. 눈을 들어 밖을 바라보면 시선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만들어진 공간을 통해 바다로 통한다. 그냥 드넓은 바다를 보는 것과는 차이가 나는 또 다른 매력이다. 

물론 나만의 착각일 수 있다. 사장님과 일부 손님들은 밖의 나무를 잘라내고 바다를 더 잘 볼 수 있게 해라고 조언한다. 좀 좋은 풍광을 보겠다고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라고? 절대 그럴 수 없다. 사장님에게도 저항해 본다. 물론 쌍심지를 켜고 대들지는 못한다. 그저 “저 나무들이 바깥 풍광을 더 예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다. 그래도 직원의 말을 무시하지 않는 사장님 덕에 밖에 있는 나무들은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나무를 베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봄이면 나무 씨와 꽃가루로 카페가 몸살을 앓는다. 늦가을에는 낙엽이 끝도 없이 떨어진다. 루프탑은 청소를 해도 소용이 없다. 돌아서면 다시 쌓이니 포기하는 게 낫다. 그럴 때는 “이것들을 그냥 확!!!” 하는 울컥함이 올라온다. 그래도 한번 참아본다. 겁을 주면서. “얘들아. 너희 그러다가 골로 갈 수 있다. 좀 작작 해라.” 과연 알아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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