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내리며

by 포그니

오전 11시. 삐~ 삐~ 삐~. 포트가 물이 다 끓었다고 소리를 지른다. 뜨거운 물을 마주하고 마치 거룩한 의식을 행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커피를 갈고 거름지를 펴고 드립 컵을 받친다. 끓은 물을 붓자 한라산이 솟아오르는 듯 봉긋하게 올라오는 봉우리. 고소하고 향긋한 냄새가 온몸을 감싼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재차 물을 붓자 품을 알을 내놓듯 초콜릿 빛깔의 물을 조용히 흘려준다. 예쁜 커피잔에 담아 한 모금. '좋다.' 입안에 퍼지는 향을 음미하며 햇살이 눈부신 창밖 바다를 바라보니 도원경이 따로 없다. 그래 이 맛에 내가 여기에 오지. 카페에 출근하면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일상의 루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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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잠시 잠깐 뿐이다. 커피를 한 모금 한 후에는 다시 직장과 다름없는 생활이 반복된다. 손님이 오면 주문을 받고 만드느라, 아무도 없으면 오늘은 공치는 날인가 하는 걱정에 여유 따윈 생각할 겨를도 없다. 출근할 때 느꼈던 커피 한잔의 따스함은 어느새 사라졌다. 일상의 시작이다. 창밖의 햇살도, 태양을 머금은 바닷가의 반짝임도 이제는 남의 일이다. 어제 온 손님이 물었다. "좋겠어요. 이런 멋진 곳에 계시니 행복하시죠"라고. 나름의 칭찬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다. 애써 웃으며 대답한다. "그럼요."

서해에 위치한 카페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오후 5시 안팎이 가장 아름답다. 뉘엿뉘엿 지는 해가 만들어내는 세상은 황홀함 그 자체다. 45도 이하 반사각의 햇살이 비추는 바다는 반짝이는 보석이 춤추는 무대가 되고 일몰 전의 하늘은 황금이 질투할 만큼 붉고 선연한 다이아몬드로 몸단장을 마친다. 이때쯤이면 손님들도 자연이 펼쳐내는 화려한 춤사위에 넋을 잃고 창밖만 바라본다. 다시 한번 커피 한 잔. 하루의 고단함을 녹이는 청량함이 초콜릿색 커피를 타고 몸속을 흐른다. '그래, 오늘도 잘 살았다.'

강화도에서 카페를 시작한 지 벌써 9년. 평일에는 회사에 나오고 주말엔 초지대교를 건너는 루틴이 500회를 넘었다. 이 정도면 제2의 직장이다. 처음에는 손님들을 만나는 것도, 커피를 내리고 음료를 만드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제는 몸에 익어 손이 먼저 나간다. 특별한 건 없다. 시골 장터의 상점 주인 또는 길거리 보따리 장사를 하시는 분이나 카페의 사장이나 업종만 다를 뿐 모두 힘들게 살아가는 소상공이긴 마찬가지다.

30여 년 넘게 기자 생활을 해 오면서 만났던 사람들은 대부분 유명인이거나 정치인, 경제인들이었다. 이들과 부대끼며 기사거리가 될 만한 것을 찾는 것이 기자의 일이다. 평범한 것은 기사가 되지 못한다. 튀는 것, 사람들의 눈길을 휘어잡을 수 있는 것, 사건 사고를 찾아다녔다. 어떻게든 이슈의 인물을 만나 한마디 듣기 위해 '뻗치기(취재 대상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도 수없이 해봤다. 평범한 것은 기자들에게 금기였다. 한 가지 흠이라면 젊은 세대들이 죽고 못 사는 연예인은 만나지 못했다는 것. 연예 기사는 '엘로우 저널리즘'의 대명사라고 배웠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자 신분이 아니면 언제 연예인 한번 볼까 싶기는 하다.

카페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평범한 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사였다. 손님들의 대화는 대부분 이슈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여자는 남자들 이야기를 하고 남자는 여자들에 대한 평가를 하는 흔하디 흔한 것들이 성당수다. 카페를 지키는 노예에게 던지는 질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늘 저녁은 뭘 먹어야 좋을지, 잠은 어느 펜션에서 자는 게 좋을지, 근처에 볼 만한 곳은 어디가 있는지 같은 내용들이다. 지극히 소소하지만 그 속에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가 숨 쉬고 있다. 이 평범함 속에서 흐름을 읽고 어떤 애환과 기쁨을 지니고 삶을 살아가는지 읽어내는 것, 기사란 그런 것이다.

가끔 뜻하지 않은 질문을 받기도 한다. 이때의 느낌은 일본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평범한 일상을 지내던 주인공에게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조카가 갑자기 나타난 것과 같다고나 할까. 1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근처에 낚시 포인트가 어디냐고 물은 적이 있다. 아마도 낚시광이었나 보다. 낚싯대를 딱 두 번 던져본 게 전부인 사람이 뭘 알까. 그래도 성실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게 서비스직의 의무다. 창 밖 한 섬을 가리키며 사람들이 저쪽으로 가곤 하더라고 정보를 건네준다.

이런 순간이 지나가면 다시 보통의 시간이 돌아온다. '나'를 생각하는 무심의 시간이다. 시집 한 권을 꺼냈다. 넘기다 문뜩 눈에 들어온 한 편의 시. '어디서 왔는지 모르면서 나는 왔고/내가 누구인지 모르면서 나는 있고... 사랑할 줄 모르면서 사랑하기 위하여/ 강물을 따라갈 줄 모르면서 강물을 따라간다(정호승 시인 '무심에 관하여').' 깨달았다. 멋있으려 했는데, 그래서 커피도 폼 잡고 마셨는데, 그게 잘 안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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