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좋아졌네요. 바이러스가 없어졌어요. 약 이제 그만 처방하겠습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의사의 입에서 흘러나온 세 마디.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지"하고 어리둥절해졌다. '20년 넘게 따라다니던 병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어떻게? 왜?'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렇다고 일일이 물어볼 수는 없는 일. 모두 알다시피 종합병원 진료실은 혼자 시간을 잡아먹고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길어야 2~3분이면 나와야 한다. 숱한 의문 부호들을 뒤로하고 진료실 문을 열고 나섰다.
아내가 보였다. 수십 년간 남편을 간호하고 병원 따라다닌다고 고생한 고맙고 소중한 존재다. "간염 바이러스가 없어졌대." 보자마자 의사가 했던 이야기를 전했다. 갑자기 불꽃이 번쩍했다. 등짝 스매싱. 아내를 돌아봤다. 화가 난 듯했다. 아니 눈가가 붉어졌다. 뒤이어 나온 한 마디. "이 웬수야." 그때 알았다. 말은 안 했지만 그동안 아내가 얼마나 가슴 졸이며 살았을지.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게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시절이었으니 얼마나 겁이 나고 무서웠을까. 당연하다. 집안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는데 그 남편이 자신과 자식만 남겨두고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테니. 미안함이 해일이 되어 밀려왔다.
약 20년 전. 어느 날 어느 순간부터인가 갑자기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배가 고파도 아주 조금만 먹으면 배가 백두산처럼 솟구쳐 올랐다. 도저히 먹을 것을 입에 넣을 수 없었다. 잠은 또 어찌나 오는지. 출입처에 나가면 오전 10시부터 휴게실에서 잠을 청해 오후 3시 넘어 일어났다. 그것도 기사를 써야 했기에 억지로 일어났을 뿐이다. 기사만 마감하면 다시 비몽사몽한 상태로 돌아갔다. 하루에 깨어 있는 시간은 채 6시간도 안 됐던 것 같았다. 후배는 자기 와이프가 의사라며 상담을 한번 해 보라고 한다. 전화를 걸었다. 몇 가지 질문이 오갔고 '역류성 식도염'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병원에 한번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조언까지 곁들여서.
기자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경험상 기자는 특권층이다. 대체로 전화 한 통이면 웬만한 민원은 해결된다. 병원을 알아보는 것도 그랬다. 남들은 몇 달 전에 예약하고 가야 했지만 병원 출입기자를 통하니 반나절도 걸리지 않아 시간을 잡았다는 연락이 왔다. 곧바로 가방을 싸들고 일원동으로 향했다. 한 시간이면 진료를 마치고 돌아올 줄 알았다. 데스크에도 늦어도 5시쯤이면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그게 병원 생활의 일상화로 이어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뭐 하다 이제 왔어! 당장 응급실로 보내." 손으로 배를 두드리던 의사가 갑자기 호통을 쳤다. (우리 부부는 담당의사를 '배치기'라고 불렀다. 진료를 받으러 가면 항상 손가락으로 배를 톡톡 쳤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그냥 배에 가스가 찼던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복수라고 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별 것 아닌 줄 알았는데 응급실이라니. 그냥 진료만 받고 약만 타가면 모든 게 끝인 줄 알았는데 입원해야 한다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아닐 수 없다. 회사에 가야 한다고 했더니 더 한 얘기가 돌아왔다. "죽으려면 뭔 짓을 못해!" 눈앞이 캄캄했다.
일단 회사에 연락했다. 며칠 입원을 해야 한다고.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집에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암담했다. 아내의 아버지, 그러니까 장인어른은 우리가 결혼하기 훨씬 전에 돌아가셨다. 그것도 병원에 입원 중 갑자기. 그 이후 아내는 병원이라면 극심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남들은 다 받는다는 종합검진도 받은 적이 없다. 그런 아내가 남편이 입원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심한 충격을 받을 게 뻔했다. 그렇다고 피할 방법도 없었다. 전화를 걸었다. "나 병원. 입원하래." 핸드폰 저 편에 긴 침묵이 흘렀다. 얼마나 흘렀을까.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야." "병원." "알았어. 갈게 기다려."
그렇게 온 아내의 얼굴은 창백함 그 자체였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지만 내 눈에는 보였다. 지금 얼마나 겁을 내고 있는지. 의사에게 병명을 들었다. '급성 간경화.' 한마디로 간의 대부분이 돌덩이가 돼 제 기능을 못한다는 것이다. 다인실이 없어 1인실로 들어갔다. 20년간의 길고 긴 병원 생활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때부터였다. 내 이름이 '남편'에서 '웬수'로 바뀐 게.
그래도 처음은 좀 나았다. 한 보름 정도 병원에 있다가 퇴원했다. 한 달 정도 지났나. 회사에서 회식이 있었다. 오랜만에 회를 먹으러 노량진 수산물 시장으로 향했다. 몰랐다. 간이 나쁜 사람은 절대 날 것을 먹어선 안된다는 것을. 이튿날부터 갑자기 몸이 안 좋았다. 다시 병원에 갔다. "왜 이래. 뭐 먹었어." 다시 산처럼 솟은 배를 보고 배치기가 놀란 듯 물었다. 다른 건 없고 며칠 전 회를 먹었다라고만 얘기했다. "누가 회를 먹으라고 했어.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당장 입원해."
또 응급실로 향했다. 역시 초만원. 환자가 너무 많아 침상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바닥에 누웠다. 그로부터 침상에 올라가기까지 사흘, 입원실로 가기까지 또 사흘이 걸렸다. 꼬박 일주일을 의사들이 뛰어다니는 소리와 환자들의 신음소리에 갇혀 지낸 셈이다.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의 몸에서 그렇게 많은 복수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2리터짜리 통이 꽉 차는데 한 시간이 채 안 걸렸다. 그렇게 하루에 6통 넘게 뽑아냈다.
사흘 정도 됐을까. 레지던트 한 명이 왔다. 그의 손에는 검사지가 들려 있었다. "간 이식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필 그 얘기를 아내와 함께 들었다. 순간 긴 정적이 흘렀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리고 나니 아내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 어떻게 든 해볼게." 너무 침착했다. 약한 줄로만 알던 아내에게 이런 면도 있구나 하고 놀랐다. 나중에 들었다. 이후 아내가 백방으로 뛰어다녔다는 사실을. "나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살리자"라고 단단히 마음먹었다는 얘기도 나중에 알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좀 나아진 줄 알았다. 착각이라는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증명됐다. 간 수치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어느 날 정기검진을 갔더니 주치의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들렸다. "종양이 있네." 이게 무슨 말일까.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악성인가요." "악성이야." 갑자기 뒤통수를 한대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다. 말이 좋아 종양이지 '암'이라는 얘기다. 그 짧은 대화 속에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지나간다. 의료 기술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암이라는 단어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다행히 아주 초기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배도 가르지 않고 고주파 치료로 가능하다고 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암이라는 얘기가 아내의 일성이 나왔다. '가지가지한다.' 신기하게도 아들도 똑같은 소리를 했다. '가지가지한다.' 그렇게 내 이름은 '웬수'에서 '가지가지'로 바뀌었다.
간경화로 입원하고 있었을 때의 순간이 떠올랐다. 옆에 누워있던 환자에게 간암 초기라는 의사의 진단이 떨어졌다. 당연히 슬퍼하리라 생각했는데 웬 걸.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 아닌가. 환자뿐 아니라 가족도 동참했다. 알고 보니 암 진단이 나오면 보험사에서 10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자신이 가족이 암에 걸렸다고 하는데 기뻐할 수 있을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암에 걸려도 그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확실히 알 수 있다.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3개월 후 암 제거를 위한 시술에 들어갔다. 수술의가 좀 잡아 30센티 넘는 거대한 주사 바늘을 들고 나타났다. 그것을 내 가슴에 꼽는다고 했다. 물론 마취를 하기 때문에 찌를 때 아프지는 않을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시술이 진행되면서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슴속 저 밑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열기. 입을 꼭 다물었지만 나도 모르게 무의식 중 나오는 신음 소리를 막지는 못했다. 지옥 같은 1시간 30분이 지나고 시술실을 빠져나왔을 뺀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축축하고 뜨거운 손을 아내가 잡았다. "수고했어요."
그 후 7년간 정기검진을 위해 3개월 또는 6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갈 때마다 아내는 '희망의 나무'를 찾아갔다. 제발 별 탈 없기를 바라며. 그리고 이제야 간절함의 결과가 나왔다. 완치. 그래도 아내가 부르는 내 이름은 변하지 않는다. '가지가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