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 [데이터로 보는 한국의 민주주의 1, 2]에서, 언론사와 유권자 모두 후보자 공약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언론사에서 공약을 키워드로 한 기사들을 많이 내었고,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투표 시 공약을 중점적으로 고려했다는 응답이 적지 않았다. 유권자들이 공약을 중심으로 투표했다고 하니, 이번엔 자신이 지지한 후보자의 공약을 제대로 알고 있었는지 확인해 보자.
확인을 위해 선관위에 등록된 후보자의 주요 공약 10개 중 각각 6개씩을 추려, 총 12개의 공약을 무작위로 섞어 응답자들에게 보여준 뒤, 각 공약의 주인이 누구인지 맞추도록 하였다. 설문에 포함된 12개의 공약은 아래와 같다. 여러분도 읽기를 잠깐 멈추고 각 공약의 주인을 찾아보기 바란다. 정답은 다음 글에 게시할 예정이니 기대하시라.
실현가능한 탄소중립과 원전 최강국 건설
어르신, 환자, 장애인, 아동, 영유아 돌봄 국가 책임제를 통한 국민안심 국가 실현
과학기술 5대 강국 실현과 미래인재 양성, 공교육 내실화를 위한 대전환
당당한 외교, 튼튼한 안보
수요에 부응하는 주택 250만 호 이상 공급
과학기술 추격국가에서 원천기술 선도국가로
311만 호 주택공급으로 내 집마련 및 주거안정 실현. 함께 잘 사는 균형 발전
지속 가능한 좋은 일자리 창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보장과 일자리 대전환으로 성장하는 사회 실현
청년이 내일을 꿈꾸고 국민이 공감하는 공정한 사회, 여성가족부 폐지
스마트 강군 건설, 실용외교로 평화안보 실현
문화강국 실현과 미디어산업 혁신 성장
12점 만점으로 환산한 결과는 아래와 같다. 지지후보 별로는 이재명 지지자가, 지역별로는 충청권이, 정치적 태도별로는 진보가, 그리고 매체별로는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 이용자가 더 높은 정답률을 보인다. 차트에서 라디오 이용자의 정답률이 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샘플의 크기가 작아 대표성에는 한계가 있음을 알아두기 바란다.
우선 충청권에 세종시가, 세종시에 정부 관련 업무를 주로 보는 공무원 인구가 많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지역별 차이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대체로 진보 성향의 사람들이 정치적 관여도가 높고, 이들 중 다수가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을 것으로 짐작해 보면, 지지 후보자별, 그리고 정치 성향별 집단 간 차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정치 관련 정보를 주로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얻는 이들 역시, 지상파 이용자들에 비해 미디어를 능동적으로 소비하는 주체로, 정치적 이슈에 대한 관심이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차트를 다시 보자. 차트는, 위의 주관적 해석과는 차원이 다른, 반박불가능한 한국 민주주의의 슬픈 한 단면을 매우 명징하게 보여준다. 그게 무엇일까.
차트에 붉은 점선으로 된 수직선이 정답률 50% 지점인데, 대부분의 막대들이 이를 넘지 못하고 있다. 공약의 주인을 제대로 맞출 확률이 채 50%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각 공약마다 이재명 혹은 윤석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였으니 이는 무작위로 동전의 앞뒷면을 맞출 확률, 즉 단순 “찍기”만도 못한 수치다. 맥주캔으로 올린 탑을 왜 이번 연재글의 이미지로 삼았는지 여러분도 이제 공감하리라 믿는다.
종합해 보면, 유권자들은 공약을 위주로 뽑았다고는 하지만, 정작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공약이 무엇인지는 잘 몰랐다. 공약을 위주로 후보자를 선택했다 하더라도 지지하는 후보가 어떤 공약의 주인인지 모른다면 공약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 여전히 인물을 기준으로 투표에 임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아래 이미지는 지난 22년 8월 이러한 조사 결과를 요약한 기사글이다.
그나마 공약의 중요성, 조금 꼬아서 얘기하자면, ‘공약을 위주로 투표하는 사람처럼 보여야 함’의 중요성은 유권자들이 공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대선을 공약 대결의 장으로 유도하고자 했던 여러 학회와 단체, 미디어의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다음 글에서는 ‘공약으로 투표함’과 ‘인물로 투표함’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 더 생각해 보자.
데이터로 세상을 봅니다
dataRactive Lab
김상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