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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 경 Jul 13. 2023

19장 양이의 외모 관리

양이는 아메리칸 숏헤어 종이다. 미국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고양이로서 동물도감에 나오는 전형적인 고양이 모습을 하고 있다. 일반 아메리칸 숏헤어 종과의 차이점은, 양이의 얼굴이 달걀형으로 작고 갸름하며, 길고 두툼한 털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가녀린 얼굴 모습만 보면 고양이계의 아이돌 급이다. 가장 두드러진 매력은 낮에는 올리브색, 밤에는 노랑색으로 변하는 크고 동그란 눈과, 검은색 몸통에 목도리와 배, 다리 부분이 하얀 털로 되어있어 턱시도라고 불리는 흰 부분이다. 가끔 잘 나온 양이 사진을 카톡에 올리면 긴 털을 휘날리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노르웨이숲 종이나 은은한 회색빛 털과 그윽한 눈망울의 러시안 블루 종이냐고 물어보는 친구가 있는데, 순전히 사진빨이다. 굳이 사람에 비유를 해보면, 큰 눈망울에 작고 갸름한 얼굴과 대조적으로 투박하고 칙칙한 몸매를 가졌다고 표현할 수 있다.

 

추정이긴 하지만, 양이는 올해 여섯 살이다. 두 살 무렵에 우리 집에 왔으니 사진을 비교해보면, 양이의 얼굴에도 세월이 묻어난다. 작고 총총한 이미지에서 중년의 느긋함을 머금은 이미지로 달라졌다. 유독 사람 손길을 싫어하는 양이에게 유일하게 규칙적으로 해주는 관리는 털 빗기이다. 고양이는 자기 몸을 혀로 핥아 깨끗이 하는 그루밍을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털을 삼킨다. 삼킨 털이 어느 정도 위에 쌓이면 돌돌 뭉쳐 토해내는 자가정화를 하는데, 뭉친 헤어볼이 커지면 문제가 생기가 쉽다. 오래 전 유명 연예인이 방송에 데리고 나오던 고양이가 헤어볼이 목에 걸려 질식했다는 뉴스를 본 뒤로, 털 빗기에 목숨을 걸게 되었다. 


집사로서 불만스러운 부분은 양이의 털이다. 일반 고양이보다 길고 검은 털이 양이의 동선과 머물던 자리에서 후루룩 날라 다니며 여기저기 휘날리기 때문이다. 집사 초보 시절엔 하루에 서너 번 청소기를 돌리고 끈끈이를 밀고 다니며, 나의 몸 속에 들어간 양이의 털이 상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컸었지만, 지금은 웬만한 털은 모른척하는 수준의 베테랑이 되었다. 보통 고양이들에게 매력 포인트가 되는 윤기 나고 예쁜 색깔의 털이, 양이에게는 치명적으로 외모를 깎아 먹는 포인트이다. 검은색, 브라운색, 회색이 섞여 있어 서양에서 랫이라고 부르는 커다란 쥐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고양이한테 쥐 같다고 하니 좀 우습긴 하지만, 실제로 수리차 방문한 분으로부터 엄청나게 큰 쥐냐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다. 무엇보다 털이 뻣뻣하고 푸석해서 조금만 자라도 장발 머리처럼 떡이 지고 비듬이 생긴다. 강아지와 달리 고양이 미용은 마취상태에서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하여 전문 미용은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분기별로 딸과 함께 양이 털을 자르는 대대적인 행사를 치른다. 한 사람은 간식을 주고 다른 한 사람은 털을 자르는 식인데, 전문적인 지식이나 훈련이 없다 보니 야매식으로 잘라주는 수밖에 없다. 고백하자면, 양이가 털을 자르고 나면 오래된 담요를 여기저기 꿰맨 느낌이 난다. 


멋을 잘 알거나 멋쟁이 외모를 갖고 있지 못하지만, 외모를 잘 가꾼 모습을 좋아한다. 잘 차려 입은 옷차림, 유행에 동떨어지지 않는 꾸밈새, 시즌에 걸맞는 색감과 분위기, 관리된 헤어스타일, 옷차림과 매치되는 신발과 가방 등에서 느껴지는 세련됨과 센스는 따라 하고 싶고 부러운 마음이 든다. 가끔씩 신경 써서 차려입은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면, 자신감과 상큼함이 뿜뿜 솟는다. 좋은 옷, 마음에 드는 신발이 나와 어울린다는 느낌, 잘 하고 나왔다는 생각은 걸음걸이부터 시작해서 태도와 자세, 행동에 자신감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반대로, 후줄거리는 차림새, 잘못 입고 나왔다는 생각, 초라한 느낌은 사람을 위축시키고 자신감을 떨어뜨린다. 


겉모습에 대한 생각은 개인의 인생 철학과 가치,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신을 보기 좋게 나타내고 표현하는 것은 자기를 관리하는 능력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제대로 돌보고 꾸미는 것은 살아가는 데 자가 위로의 역할을 한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것에 관심이 가는지, 해보고 싶은 지를 알고, 그것에 따른 소비와 투자를 하는 것은 허영심과는 다르다. 특별히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욕구나 필요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쓰는 사람일수록, 막상 자신에게는 관대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자신의 원함이나 우선순위는 나중에 알아서 하면 된다는 식으로 챙기지 않는 사람은, 힘든 상황과 맞닥뜨릴 때 허탈감과 자괴감을 느끼기 쉽다. 자신 안에 자기가 너무 없고,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겉모습에 신경을 쓰고 연구를 하고 소비를 하는 것은 무기력이나 우울을 치료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자신을 알아주고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활력을 주기 때문이다. 


취향과 스타일에 맞게 겉모습을 꾸미는 것은, 독서나 명상, 취미 생활로 내면을 가꾸는 것과 동급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겉모습을 잘 하고 다니는 사람에게서는 내면도 탄탄하고 밝은 느낌을 받으며, 일상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지내 볼 것인가, 만나는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릴 것인가, 해야 할 일을 어떻게 잘 마칠 수 있을까 하는 활기찬 생각들이 느껴진다. 


인기 고양이 동영상에서 보게 되는 귀엽고 앙증맞은 분위기와는 다르지만, 양이만의 매력이 있다. 그 매력을 살려주되 지나친 관리로 힘들게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 또한 자신에게, 가족과 친구들에게 상큼하고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괜찮은 겉모습은 보기도 좋지만, 자신을 아껴주고 마음을 쓰고 멋있게 만드는 행동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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